장난으로 쓴 혼인신고서에 유부남 된 남자⋯안타까워도 혼인무효, 혼인취소 모두 안 됩니다
장난으로 쓴 혼인신고서에 유부남 된 남자⋯안타까워도 혼인무효, 혼인취소 모두 안 됩니다
"장난으로 쓴 혼인신고서도 법적 효력 있다" 판결
혼인 무효·취소 소송, 2009년부터 매년 900건 이상 발생

결혼을 준비하기 위해 서류를 떼던 A씨의 동공이 흔들렸다. 자기도 모르게 서류상 이미 '결혼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제가 이미 유부남이라고요?"
결혼을 준비하기 위해 서류를 떼던 A씨의 동공이 흔들렸다. 자기도 모르게 서류상 이미 '결혼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2년 전 교제했던 전 여자친구가 어렴풋이 기억났다. 사랑을 확인한답시고 장난으로 써준 혼인신고서가 화근이었다.
당시의 철없던 행동으로 A씨는 졸지에 유부남이 됐다. 이로 인해 현 여자친구와의 결혼은 깨져버렸다. A씨는 가족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전 여자친구에게 연락했다.
전 여자친구도 결혼할 남자가 있었기 때문에 "협의이혼 절차를 밟자"는 의사를 표했다. 하지만 정식으로 결혼식도 안 했는데 바로 이혼남이 되는 건 억울했다.
A씨와 전 여자친구의 혼인은 '처음부터 없던 일'이 될 수 있을까. 가능한지 법적으로 살펴봤다.
혼인을 처음부터 없던 일로 하려면 혼인무효소송을 해야 한다. 아쉽게도 간단한 혼인 절차에 비해 혼인 자체를 무효로 하는 것은 어렵다. 우리 법은 혼인무효소송을 굉장히 엄격하게 결정하고 있다.
혼인무효소송은 우리 민법 제815조 혼인무효사유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적용된다. 혼인의 무효사유는 다음 4가지가 있다.
① 당사자 간에 혼인의 합의가 없을 때
② 혼인이 제809조 제1항의 규정을 위반할 때 (근친 간의 혼인)
③ 당사자 간에 직계인척관계가 있거나 있었던 때
④ 당사자 간에 양부모계의 직계혈족관계가 있었을 때
이 중 A씨가 속할 수 있는 상황은 ①이 된다. 이때는 무효를 이해할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A씨는 실제 재판을 받았다. 1⋅2심 재판부 모두 "혼인 무효가 아니다"라는 판결을 내렸다. 아무리 장난이었다고 해도 신고가 정상적으로 이뤄진 이상 두 사람 사이의 '혼인 합의가 없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이유다. 대법원에서도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이와 같이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의 사법연계 통계자료에 따르면 혼인의 무효⋅취소 소송 건은 2009년부터 2018년까지 매년 900건이 넘게 발생했다.
'노경희 법률사무소'의 노경희 변호사는 "위 사례처럼 장난으로 혼인신고서를 절대 쓰면 안 된다"며 장난으로 쓴 혼인신고서도 법적으로 효력이 있음을 경고했다. 또한 "혼인신고 시에는 충분히 양쪽 당사자들 간의 합의하에 하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혼인무효 말고 다른 방법은 없을까. 혼인취소도 있긴 하다. 우리 법은 혼인에 강압 등이 있었다면 혼인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법무법인 평화의 박현우 변호사는 "겁을 주어 강제로 혼인신고를 한 경우 취소 사유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A씨는 이 방법을 택할 수도 있었던 것일까. 그건 아니다. 혼인취소는 기록부터 없애는 혼인무효와 다르다. 그래서 혼인취소가 된다 한들 결혼 이력이 깨끗하게 지워지지 않는다. 이력이 남는다는 점에서만큼은 이혼과 비슷하다.
다시 말해 A씨가 혼인취소를 받아냈다 하더라도 '장난치기 이전 단계'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유일한 방법은 A씨가 선택한 혼인무효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