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성추행 혐의' 로스쿨생의 무죄 주장 근거 "피해자에게 페미니즘 성향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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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성추행 혐의' 로스쿨생의 무죄 주장 근거 "피해자에게 페미니즘 성향 있다"

2021. 05. 31 14:34 작성2021. 05. 31 15:1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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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ahn@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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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에서 준강제추행 혐의로 징역 8개월 실형 선고

2심에서 전관 변호사 선임해 '무죄' 주장 "피해자에게 페미니즘 성향 있다"

2심 재판부 "설령 그런 성향 있어도 '무고' 동기로 보기 어려워⋯반성 없다"며 항소 기각

만취한 피해자를 성추행한 혐의(준강제추행)로 1심에서 징역 8개월 실형을 선고받은 A씨. 그는 2심에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피해자가 페미니즘 성향이 있어 미투 운동에 참여하고 싶어 한 허위고소"라고 주장했다. /연합뉴스⋅게티이미지코리아⋅편집=조소혜 디자이너

"피해자에게 페미니즘 성향과 미투 운동에 동참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만취한 피해자를 성추행한 혐의(준강제추행)로 1심에서 징역 8개월 실형을 선고받은 A씨. 그는 2심에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위와 같이 말했다. "허위 사실로 고소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그 이유로 '페미니즘 성향'을 언급한 것이다.


이어 1심과 달리 20년 판사 경력의 전관 변호사를 선임했다. A씨가 이렇게 총력으로 나선 이유, A씨가 로스쿨 재학생 신분이라는 점도 있었다. 1심에서 나온 징역 8개월이 그대로 확정된다면 변호사가 되는데 큰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 변호사법(제5조)은 변호사가 될 수 없는 '결격사유' 중 하나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이 끝난 뒤 5년이 지나지 않은 자"를 열거하고 있다. 결과를 뒤집지 못하면 출소 이후 최소 5년 동안은 변호사 시험에 응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만취한 피해자 추행한 혐의⋯"재워줬을 뿐"이라고 했지만 징역 8개월 실형

사건은 지난 2016년 1월, 서울에 위치한 A씨의 집에서 벌어졌다. 동기들과 술자리를 가진 날이었다. 피해자는 택시에서 구토할 정도로 만취했고, 그러자 A씨는 피해자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이후 A씨가 침대에서 잠에 든 피해자를 성추행했다고 검찰은 봤다.


재판에 넘겨진 A씨는 "집으로 데려가 재워줬을 뿐, 추행한 사실은 없다"고 했지만, 지난 2018년 11월 1심을 맡은 서울서부지법 제12형사부(재판장 김성대 부장판사)는 징역 8개월 실형을 선고했다.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 명령도 함께였다.


재판부가 A씨의 주장을 배척하고, 피해자의 손을 들어준 결정적인 근거는 'A씨의 사과'에 있었다. 당시 A씨는 피해자가 사과를 요구한 지 불과 4분 만에 "잘못한 부분을 인정하고 미안하다"며 전화로 사과했다. 약 1시간 뒤에는 자필 사과문까지 작성해 사진으로 전송했다. '술에 취한 너를 집으로 데려가 옷을 벗기고 신체를 만졌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뒤에도 A씨는 여러 차례 피해자에게 "주의하며 행동하고, 문제의식을 지니는 법조인이 되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피해자가 "사람들 보는 눈도 있을 거고 (주위 사람들 생각해) SNS에 따로 안 올린다"고 하자, A씨는 "배려해줘서 너무 고맙다"는 내용의 답장까지 보냈다.


사실상 자백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랬던 A씨는 재판을 받게 되자 "거짓으로 사과했던 것"이며 "범행을 인정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을 바꿨다. 피해자가 SNS에 허위의 사실을 올릴까 우려 해 우선 사과를 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2년이 지나 고소한 것을 두고도 문제 삼았다.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낮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사과했다는 주장에 대해서 김 부장판사는 "상당 시간에 걸쳐 구체적인 내용과 진심 어린 표현으로 잘못을 인정하는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던 점을 봤을 때 두려운 마음에 사과하게 된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했다. 이어 뒤늦게 고소한 것에 대해서도 "(범행을 당한 뒤 스스로를 탓하던) 피해자가 미투 운동을 계기로 용기를 냈다며 고소 동기를 밝혔고, 피고인(A씨)을 무고할 이유도 없어 보인다"고 봤다.


"피해자에게 페미니즘 성향 있다", "피해자가 피해자스럽지 않다" 주장⋯2심, 항소 기각

실형을 받자 2심에서 전관 변호사를 선임해 다시 한번 무죄를 주장한 A씨. A씨 측은 새로운 무죄 주장의 근거를 대거 마련해왔다. 이에 2심 판결문 분량(15쪽)이 1심 판결문 분량(8쪽)보다 2배 가까이 길어졌다.


먼저, A씨 측은 "①피해자가 남성 적대적인 페미니즘 성향과 미투 운동에 동참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다"며 "당시의 기억을 왜곡해 허위로 고소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또 "②사건 이후 피해자가 자신의 SNS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른 적도 있고 피해자가 생일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보낸 적도 있다"며 "놀이공원도 함게 가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전형적인 '피해자가 피해자스럽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이어 ③피해자가 사과를 하지 않으면 SNS에 관련 내용을 올리거나 고소하겠다는 취지로 말해 위협을 느꼈다고 했다. 덧붙여 SNS에 이 내용이 게시되면 허위라고 하더라도, 사회 분위기상 자신의 명예가 쉽게 회복될 수 없을 거라는 판단해 했던 사과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보낸 자필 사과문은 허위자백이며, 증거로서 활용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양형에 유리할 수 있는 각종 자료(④)도 대거 제출했다. 대학교 성적증명서와 장학금 수혜 확인서, 봉사활동 인증서, 법학전문대학원 학업 우등상 수상내역과 장학금 수혜 확인서 등이었다.


하지만 법원은 이 모든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 2019년 8월 서울고등법원 제11형사부(재판장 성지용 부장판사)는 A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설령 피고인 주장대로 피해자에게 페미니즘 성향 등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게 피고인을 무고할 만한 동기라고 보기 어렵고(①), 고소 전까지 피해사실을 잊으려고 노력했던 점을 보면 피고인의 SNS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른 정도가 강제추행 피해자라면 도저히 보일 수 없는 행동이라고는 볼 수 없다(②)"고 판단했다.


또한 위협을 느껴 사과를 했다는 주장(③)도 기각했다. 피해자가 보낸 사과 요구 메시지에 SNS에 공개하겠다는 내용이 없고 공격적인 표현 등을 사용하지 않았던 점, 그리고 A씨는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은 채 범행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한 메시지를 여러 차례 보냈던 점을 보면 이 사과가 허위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양형에 유리하도록 제출한 자료(④)에 대해서도 법원은 "성실하게 생활해온 것으로 보인다"고 하긴 했다. 하지만 "범행을 계속 부인하며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있다"며 A씨 항소를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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