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드 흡입' 전과 19범…판사는 실형 대신 벌금을 택했다, 이 '세 가지'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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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드 흡입' 전과 19범…판사는 실형 대신 벌금을 택했다, 이 '세 가지' 이유로

2023. 01. 21 10:57 작성
안세연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sy.ahn@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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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교도소와 치료시설 들락거린 '본드 흡입' 중독자

재판부 "징역 선고가 맞지만, 벌금형 선고"

세 가지 이유 들어, 양형 이유 설명했다

약 50년 인생에서 24년을 교도소와 치료감호시설에서 보낸 남성. 출소할 때마다 4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본드에 다시 손을 댔다. 그런데 이번에 A씨 사건을 맡은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징역형이 아닌 벌금형을 선고했다. 어떤 이유였을까. /셔터스톡·게티이미지코리아·편집=조소혜 디자이너

50대 남성 A씨는 '평생' 본드 흡입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 동종 전과만 해도 19회. 그는 53년 인생에서 24년을 교도소와 치료감호시설에서 보냈다. 출소할 때마다 4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본드에 다시 손을 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A씨는 지난 2021년 6월, 2년간 복역 후 출소한 지 4개월 만에 다시 본드에 손을 대 또다시 법정에 섰다. 사실 판사 입장에선 어려운 사건이 아니었다. 본인의 자백과 숱한 전과. 그간 처벌됐던 것처럼 징역 2~3년을 선고하면 되는 간단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A씨 사건을 맡은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징역형이 아닌 벌금형을 선고했다. 그러면서 약 3000자의 긴 양형이유를 남기며, A씨를 향한 기대를 드러냈다.


"피고인(A씨)이 가족의 사랑에 보답하며 범죄자 혹은 환자에서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거듭날 것을 법원은 조심스럽게 기대한다."


실형 선고해야 하지만⋯벌금형으로 선처

지난해 11월, 수원지법 성남지원에서 나온 해당 판결. A씨는 화학물질관리법 위반 혐의로 법정에 섰다. 이 법은 "누구든지 환각 등을 일으키는 화학물질을 흡입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고, 위반 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고 있다(제22조·제59조).


수원지법 성남지원 재판부 역시 A씨에게 이번에도 실형을 선고하는 게 타당해 보인다고 하긴 했다. 재판부는 "A씨는 지금까지 본드 흡입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수감자가 되기를 번번이 반복했다"며 "누범임을 고려하면 직전 판결과 비슷한 수준(징역 2년)의 징역형에 처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단, "여러 사정들을 참작해 이번에 한하여 징역형이 아닌 벌금형을 선고하기로 한다"고 결론지었다. 벌금 1500만원이었다. 이러한 결론을 내리기까지 재판부는 크게 세 가지를 검토했다.


①사법시스템도 문제 해결에 실패했다

우선, 재판부는 "A씨에 대한 형벌의 목적과 결과를 반성적으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고 운을 뗐다. 24년간 감옥과 치료감호시설을 보내길 반복했는데도 개선되지 않았다면, 이는 우리 사법시스템에도 문제가 있다는 취지였다.


"지난 24년이 피고인 개인에게 무수한 실패의 반복의 시간이었다면, 동시에 사법기관과 교정기관을 포함한 우리 사회 또한 피고인의 문제 앞에 무수한 실패를 반복해왔다고 볼 수 있다."


재판부는 "피고인과 같은 약물중독 환자들은 판결 확정과 함께 사회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단절된다"며 "이러한 단절은 유사 범행의 유혹에 다시 노출되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했다. 이어 "피고인이 건강한 사회 구성원이 되어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사회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②가족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재판부는 A씨의 '가족'에도 주목했다. A씨의 배우자는 A씨를 위해 마약 퇴치 관련 상담⋅강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또한, A씨와 함께 치료 모임⋅상담에 참여하고 있었다. 또한 A씨 본인도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외래진료를 받고, 동생이 운영하는 통신설비업체에서 설치기사로 일을 시작했다. 신앙생활을 시작하기도 했다. 가족들의 관심 속에서 그는 점점 중독에서 멀어지고 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실제 A씨의 치료를 담당한 병원도 A씨의 치료 경과에 대해 긍정적인 소견을 밝혔다. 해당 병원 측은 A씨에 대해 "비록 재발했지만 (그 이후엔) 반복되지 않았다"며 "가족들의 지지도 매우 좋아 지속적인 치료가 이뤄진다면 예후(어떤 병의 경과)가 매우 좋은 편"이라고 밝혔다.


③스스로 멈춘 본드 흡입⋯최장기간 버텨냈다

결정적으로, 이러한 가족의 뒷받침 덕분에 A씨는 직전 범행 이후 재판을 받아온 1년 4개월 동안 재범을 저지르지 않았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법원은 재판을 진행하며 피고인의 태도와 변화 의지를 점검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진 출소 후 4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재범했지만, 이번엔 1년 4개월 동안 정기적으로 치료와 상담을 받으며 성실히 재판에 임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했다. 1년 4개월은 A씨가 성인이 된 후 본드 흡입을 멈추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지속한 최장기간이었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벌금 내며 반성해라"

물론 재판부도 "피고인이 환각물질의 유혹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고인에 대한 '따듯한 기대'로 판결문의 끝을 맺었다.


"적어도 피고인이 스스로 땀 흘려 생계를 위해 노력하고, 가족구성원들에 대한 사랑의 소중함과 그 사랑에 대한 책임을 이해하며, 그 사랑에서 오는 행복과 만족이 환각물질에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것임을 조금씩 체감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위와 같은 여러 사정들을 참작해 이번에 한하여 피고인에게 징역형이 아닌 벌금형을 선고하기로 한다.


기초생활수급자인 피고인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적지 않은 벌금을 납입하고, 꾸준한 치료가 곧 진정한 반성임을 몸소 보여줌으로써 가족의 사랑에 보답하며, '범죄자' 혹은 '환자'에서 이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거듭날 것을 바라는 이 법원의 조심스러운 기대가 담겨 있음을 덧붙여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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