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근 교수 에세이 (52)] 변호사님! 할 말이 있습니다
[정형근 교수 에세이 (52)] 변호사님! 할 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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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한 의뢰인이 찾아왔다. 도박장을 만들어 도박꾼들을 모아서 도박을 하도록 한 혐의로 수배 중이라서 자수를 하고 싶다고 했다. 해당 이미지는 기사와 관련 없는 참고용 이미지. /셔터스톡
어느 날 조폭이거나 그런 곳에서 몸담고 지내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찾아왔다. 그는 모텔 같은 숙박업소를 돌면서 도박꾼들을 모이게 하여 도박을 하도록 해주고, 도박자금도 빌려주면서 고리로 이자도 받아내고 그런 일을 해왔다. 그는 도박죄 전과도 있고, 폭력 전과도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 번도 직장에 들어가서 출·퇴근을 하면서 월급을 받았던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오로지 한탕하여 큰돈을 만질 그런 일만 찾아다니는 모습으로 여겨졌다.
그는 도박장을 만들어 도박꾼들을 모아서 도박을 하도록 한 혐의로 수배 중이라서 자수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지 않고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는 당시에는 도박방조죄로 집행유예 기간 중에 있었다. 도박죄 사건에 대한 변론은 피해자가 없어서 누구하고 합의를 한다거나 하여 유리한 양형자료도 만들기 쉽지 않았다. 그 피의자가 검찰에 자수를 하니 당연히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 나는 피의자가 과거의 어두운 삶을 청산하고자 자수하게 된 사정 등을 고려하여 불구속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내용의 변론을 하였다. 피의자가 자수하였고, 반성하고 있으며, 나의 간절한 변론 때문이었는지 구속영장은 기각되었다.
그런데 며칠 후 검사가 다시 구속영장을 청구하였다. 동종 전과도 많고 집행유예 기간 중이라 도망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였다. 그러자 피의자는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힘드니까 도망할까 고민을 한다고 했다. 나에게도 도망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두 번째 구속영장 발부에 관한 재판은 다른 판사가 맡았다. 몇 시간 후 구속영장이 발부되었고, 구속된 상태로 재판을 받았다. 보통 불구속 상태에서 구속이 되면 변호사에게 원망을 쏟아놓는다. 그런데 그 피고인은 교도소에서 접견을 할 때 별다른 불만을 하지 않고 묵묵히 있었다. 그런 태도에 호감이 간 나는 피고인이 벌금형을 선고받고 석방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변호인의견서도 정성스럽게 작성하고 정상참작 자료도 많이 제출했다.
그 후 선고기일에 재판장은 자수를 한 점 등을 고려하여 몇천만 원의 벌금을 선고했다. 며칠 후 교도소에서 석방된 그 사람이 찾아왔다. 나에게 그간 수고 많았으니까 점심을 사겠다면서 했다. 조폭 같은 느낌이 드는 지인도 함께 왔다. 평소 나는 의뢰인과는 식사를 하지 않았다. 식사하는 동안 자신의 사건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없었다. 음식 먹는 시간도 업무의 연속과 같았기 때문에 의뢰인과는 식사를 피해 온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별다른 생각이 없이 의뢰인이 운전하는 차에 올랐다. 차는 시내를 벗어나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갔다. 갈수록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괜히 따라 나섰구나' 하는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정말 깊은 산속에 낯선 식당이 있었다. 우리는 별다른 말이 없이 점심을 했다. 식사를 마친 의뢰인이 나에게 한마디 했다.
"그런데 변호사님! 할 말이 있습니다."
"아, 예! 무슨 말이십니까?"
뭔가 불길한 기운이 감쌌다. 좀 더 얼굴이 굳어진 의뢰인은 본론을 내뱉었다.
"제가 수배 중일 때 자수를 하면 구속영장을 기각시켜 주고, 불구속상태에서 재판을 받아 벌금 받도록 해주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말을 믿고 자수했는데, 50일이나 구속되어 고생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말이었지만, 나는 묵묵히 듣고 있어야 했다. 그 으슥한 장소에서 "내가 언제 당신에게 그랬냐?"면서 다툴 수 없었다.
"내가 선고받은 벌금 2000만원, 변호사님이 내주십시오."
그와 함께 온 의뢰인의 지인도 거들었다.
"변호사가 책임지지 못 할 일은 애초에 맡지를 말아야지요!"
완전히 계획하고 나를 깊은 산 속으로 유인한 후에 협박을 하고 있었다. 비로소 그들의 계획을 알게 되었다. 나도 대꾸했다.
"아! 이런 말 하려고 나를 이곳까지 오자고 했군요. 그런 말이라면 내 사무실에서 말해도 될 것인데, 알았으니 갑시다."
곧바로 일어나 상의를 입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않은 도박사건은 수임하지 말자는 평소의 생각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이 밀려왔다. 그리고 의뢰인과 별다른 생각 없이 식사 자리에 따라나선 것도 후회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