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삼성보다 월급 많이 주며 동고동락한 40년지기 친구가 내 뒤통수를 쳤다

글자 크기 설정

미리보기

더 이상 어렵지 않은 법을 위한 인터넷 신문 로톡뉴스를 만나보세요. 법 전문가들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생생히 전달합니다.

[단독] 삼성보다 월급 많이 주며 동고동락한 40년지기 친구가 내 뒤통수를 쳤다

2019. 10. 26 16:17 작성
안세연 인턴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sy.ahn@lawtalknews.co.kr

글자 크기 설정

미리보기

더 이상 어렵지 않은 법을 위한 인터넷 신문 로톡뉴스를 만나보세요. 법 전문가들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생생히 전달합니다.

친구 회사에서 20년 넘게 일하며 '횡령'⋯파악된 금액만 5억 넘어

"범행 수법 단순, 눈치 못 챈 경영진 책임도 있다" 변호인은 주장했지만⋯

40년지기 친구 고소한 피해자의 씁쓸한 한마디 “이제 아무도 못 믿겠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다] 경리부장으로 있던 40년지기 친구가 10년 넘게 최소 5억원을 빼돌렸다. 피해를 입은 사장은 "이젠 아무도 믿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지난 23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 사건명은 횡령이었다. 타인의 재물을 빼돌려 사적으로 사용했을 때 적용되는 혐의다. 그런데 ‘특정경제가중처벌법(특경법) 위반'이 붙었다. 최소 피해금액이 5억원 이상이라는 소리다. 동네 슈퍼마켓이 아니라 규모가 있는 기업 자금에 손을 댄 사건이었다.


재판장인 제12형사부 오상용 부장판사가 재판 시작을 알리자, 검사가 공소사실을 밝힌다. 경리부장의 51회에 걸친 회삿돈 5억 218만원 횡령. 심지어 공소시효 10년이 지나 처벌이 불가한 금액은 제외됐다. 드러난 피해금액만 5억원이다. 피해자는 해당 회사의 대표이사다. 26년간 전적으로 피고인을 믿고 관련 업무를 맡겼었다.


이 때문에 법정 분위기는 사나울 것으로 예상됐다. 비슷한 사건에서는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의 감정이 증오로 번지는 일이 잦다. ‘내 돈 내놓아라' ‘빼돌린 돈 다 어디다 썼냐' ‘이놈, 저놈’ 소란이 벌어진다.


그런데 이날 법정 분위기는 달랐다. 돈이 문제가 된 사건인데 피해자는 처음부터 “돈이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피고인에겐 눈길도 건네지 않았다. 범행을 알아차린 뒤 이날 증인으로 나와 피고인을 처음 본다고 전했다. 2년만이었다. 둘은 20대 초반부터 만난 40년지기 친구다. 밥도 자주 먹고 당구장 모임도 정기적으로 같이 했다.


검사가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피해자는 법정에서 증인으로서 담담하게 할 말을 이어갔다. 피고인석에는 옛 친구가 앉았다.



40년지기 고소한 사장의 씁쓸한 웃음 "이제 아무도 못 믿겠다"

검사는 먼저 “어쩌다 고소하게 된 거냐”고 질문했다.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은 게 너무 싫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어 “돈이 문제가 아니라 이제 아무도 믿지를 못하겠다는 게 문제”라고 했다.


“횡령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됐냐”는 질문에는 “그날 느낌이 이상했다”며 “갑자기 피고인이 티셔츠부터 바지, 신발을 모두 새 거로 빼입고왔는데 지나치게 좋은 옷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날 밤 급하게 회사 장부를 뒤져보니 5억원이 비어 있었다”고 말했다.


“갑자기 피고인의 돈 씀씀이가 달라지지 않았냐”는 질문에도 “맞다”고 했다. “갑자기 나한테 밥과 술을 사기 시작하더라. 의아했지만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 돈이 횡령한 회삿돈이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 피해자는 씁쓸하게 헛웃음을 지었다. 이어 “(피고인에게) 그때 당시 삼성보다 급여를 많이 줬다"며 “이미 정이 다 떨어졌고, 남은 건 배신감 뿐”이라고 전했다. “피해가 변제될 가능성은 이미 마음을 접었고, 처벌만을 원한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서울남부지법에서는 이모씨에 대한 재판이 국민참여재판 형식으로 였렸다. 국민참여재판은 일반 국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재판을 말한다. 단 배심원이 유·무죄에 대해 내리는 평결은 법적 구속력은 없다. 재판부가 참고만 한다. /안세연 기자




횡령 사실 모두 인정⋯ '선처' 사유가 있는가에 재판 초점

결국 피해자인 대표이사 신씨는 특경법상 횡령 혐의로 경리부장 이모(62)씨를 고소했다. 처음부터 고소를 생각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범행을 들통난 이씨가 “횡령 금액을 반환하겠다"고 했지만 연락이 두절되자 소송을 시작했다.


이날 재판은 범행 자체에 대해서는 다툼이 없었다. 이씨는 앞서 모든 사실을 인정하며 자백했다. 이 때문에 재판의 쟁점은 이씨에게 선처를 내려줄 만한 참작사유가 있는지 여부로 집중됐다.


이씨에게 유리한 정황은 ① 동종 전과가 없는 점 ② 자백했고 반성하고 있는 점 ③ 횡령 금액 일부인 1500만원을 변제한 점 ④ 현재 건강상태가 안 좋은 점 등이 있었다.


다만 ① 범죄로 인한 피해금액이 5억원이 넘고 ② 여전히 피해 대부분이 회복되지 않은 점 이에 따라 신씨가 “40년지기 친구를 잃었다”며 “사람 자체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고 말하는 등 ③ 피해자가 강력한 처벌을 원하고 있다는 점 등이 이씨에게 불리했다.


하지만 만약 신씨의 주장과 달리 회사가 악덕 사업주였거나, 이씨가 횡령을 할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사정이 재판에서 밝혀진다면 이씨에게도 반전의 기회는 남아있었다.



975만원에 '1' 하나 붙여 1975만원으로⋯ 단순한 수법으로 10년간 뒷돈

이씨의 범행 수법은 단순했다.


먼저 지출결의서에 ‘975만원’을 적어 신씨에게 결재를 받는다. 그다음 숫자 앞자리에 1을 허위기입하여 실제로는 ‘1975만원’을 인출한 뒤 1000만원을 본인 계좌로 빼돌리는 식이었다. 또는 회사 지출결의서 금액에서 조금씩 부풀린 은행 예금청구서를 작성하여 과다 인출한 뒤 빼돌렸다.


이런 식으로 횡령한 금액은 8년간 51회에 걸쳐 5억 218만원에 이르렀다. 2009년 3월부터 2017년 10월까지의 범행이었다. 실제로는 “10년 넘게 빼돌렸다”고 자백했지만, 공소시효가 지난 부분은 혐의에서 빠졌다. 2010년부터는 매달 1000만원씩을 횡령했다.



변호사의 반격 "경영진이 관리·감독 제대로 안 한 문제도 있다"

배심원 앞에 선 변호인은 자신을 “국선 전담 변호사입니다”라고 소개한 뒤 “경제형편이 안 좋은 분들을 주로 대변하고 있다”며 변론을 시작했다. 피고인 이씨의 열악한 경제사정을 강조하는 말이었다.


처음부터 변호인은 이씨의 범행 수법이 단순한 점을 파고들어 선처를 부탁했다. 변호인은 “평범한 회사였다면 금방 들통났을 수법”이라며 “악랄하거나 죄질이 나쁜 수법은 아니다”라고 했다. 단순한 수법을 10년간 눈치채지 못한 경영진에게도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는 논리였다.


여기서 배심원들은 이씨 측에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냐”고 질문했다. 변호인은 “해당 회사의 세무사 역시 이씨⋅신씨와 마찬가지로 친구 사이”라며 “이 때문에 지출결의서와 통장 잔액을 허술하게 대조했다”고 주장했다. “범행기간동안 감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변호인은 “2005년부터 회사의 사정이 급격하게 어려워지며 이씨의 급여가 대폭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또한 “해당 시기는 이씨의 자녀 두 명이 대학진학을 앞두고 있어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상황이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해당 회사는 2005년까지 유명 일본담배 수입 총판 업무를 맡았으나, 이후 해당 사업을 그만두고 임대업으로 업종을 바꿨다. 이때를 기점으로 이씨의 급여도 400만~500만원에서 180만원으로 떨어졌다.


또한 변호인 측은 “이씨가 범행사실이 드러나기 전에 1500만원을 변제했다”며 “이는 이씨가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재판이 열리기 전 “매달 100만원씩 갚아가겠다”고 합의를 제안한 점 역시 강조했다.


변호인은 “이씨가 반년 전에 탈장 수술을 하여 건강상태가 나쁜 점, 동종 전과가 없고, 현재 잘못을 인정하고 있는 점 등도 고려해달라”며 변론을 마쳤다.



검사 "자녀 학비와 용돈까지 지원해줬는데, 신의 저버린 중대한 범죄"

공판검사를 맡은 서울남부지검 윤경 검사는 배심원 측에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렁찬 소리가 법정에서 울려퍼졌다. “배심원 여러분! 형사재판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가치가 무엇입니까? 저는 공정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어 “국민참여재판이라는 점을 이용한 이씨의 감정 호소에 재판 결과가 달라져서는 안 된다”고 당부한 뒤 변호인 측의 변론을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부정했다.


공판검사를 맡은 윤경 검사는 "피고인은 친구의 신의를 저버린 중대 범죄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게티이미지


윤 검사는 “변호인 측은 이씨의 수법이 단순하다고 했지만, 사실은 10년간 매일 새로운 죄가 반복됐다”라며 “이걸 초범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또한 “세무사와 친구 모두 자신을 믿어준 점을 악용해 한달에 1000만원을 그냥 가져갔다”며 “신의를 저버린 중대한 범죄”라고 강조했다.


또한 “대표이사와 사원의 빈부격차는 있을 수밖에 없다”며 “그런 이유로 범죄를 저질렀다는 말은 성실하게 살아가는 소시민들을 욕보이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이어 “신씨가 이씨의 자녀 두 명이 대학에 들어갈 무렵 학비와 용돈을 지원해준 점, 회사가 어려워진 까닭에 월급은 많이 못 줬지만, 계속 이씨를 직접고용하고 있었던 점 등도 봐달라”고 밝혔다.


윤 검사는 범행사실이 들키기 전 이씨가 변제한 금액 1500만원에 대해서도 “죄책감 때문이 아니라 횡령사실을 은폐하기 위함이었다”라며 말했다. 그 근거로 “횡령으로 인해 월급날에 직원들에게 줄 자금까지 떨어지자 들키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행동”이라고 말했다.


이씨도 이를 수사기관에서부터 “맞다”고 인정했다. 법정에서도 부인하지 않았다.


이씨의 건강상태에 대해서는 “이 나이에 이 정도는 다들 아프다”고 했고, 반성에 대해서도 “피해회복이 거의 되지 않았다”고 부정했다. 오히려 “수형소에 있으면 술이나 도박, 담배도 못할테니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윤 검사는 피고인이 주장한 모든 사정을 부정한 뒤 징역 5년을 구형했다.



"반성하고 있다" 괴로워했지만⋯재판정 분위기는 이미 넘어갔다

이씨는 시종일관 담담한 모습이었다. 주로 바닥을 응시하다가, 질문이 나오면 그제서야 고개를 들고 대부분 짤막하게 답했다.


검사가 물었다. “어쩌다 횡령을 하게 됐는가.” 이씨는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며 “소액이었다”고 했다. 이어 “하다보니 점점 금액이 늘더라”고 말했다.


“발각이 될 것 같지 않았냐”는 검사의 질문에는 “금방 메꿀 수 있을 줄 알았다”고 했다. “알고 지내던 형님이 경마를 다니면 일확천금이라고 그랬다”며 “그 말을 믿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검사는 “신씨에게 미안하지는 않냐”고 물었다. “많이 그렇다”고 했다. “죄인 된 마음으로 살고 있다”며 “신씨에게 문자를 몇 번 보냈는데 신씨가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질문이 끝난 뒤 최후진술이 이어졌다. 이씨는 한참을 바닥만 바라봤다. 책상을 짚고 있더니 몇 분 뒤 “반성하고 있습니다”라며 이마를 짚었다.


지난 23일 재판이 열린 서울남부지법 406호 대법정 모습. /안세연 기자



배신의 결말⋯배심원단 7명 전원 만장일치 '유죄'

재판장은 이날 배심원들과 평의에 들어가기 전 변호인 측에 “잠시 후 선고할 때 변호사 두 분 중 적어도 한 분은 이씨와 함께 있어줬으면 좋겠다”며 “두 분 함께 있으시냐”고 물었다. 변호사들은 “둘 다 함께 있겠다”고 답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1시간 반 정도가 걸렸다. 법정 앞에서 이씨와 변호사들은 앉지도 않고 기다렸다. 변호사 중 한 명은 이씨에게 “마음의 준비 하시라”고 위로하기도 했다.


드디어 오후 5시 30분. 선고 결과가 나왔다. 재판부는 일단 “검사의 공소사실이 모두 유죄로 인정된다”며 “배심원 7명 모두 만장일치로 유죄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어 “책임에 해당하는 벌이 불가피하다”라며 “피해금액이 5억원이 넘고, 여전히 그 대부분이 회복되지 않았으며, 피해자도 처벌을 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장이 주문했다. “피고인은 징역 3년에 처한다. 또한 실형을 선고하는 이상 도망갈 염려가 있다고 판단하여 피고인에 대한 구속영장을 집행한다.”


선고를 듣던 법원 관계자 두 명이 이씨의 양팔을 붙잡았다. 이씨는 무거운 표정으로 관계자에 이끌려 법정 구속됐다.



나만 모르는 일상 법률 상식, 매일 아침 배달해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