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저희 강아지 좀 찾아봐도 될까요?" 낯선 이웃의 방문에서 시작된 끔찍한 12시간
[단독] "저희 강아지 좀 찾아봐도 될까요?" 낯선 이웃의 방문에서 시작된 끔찍한 12시간
동물 키우던 피해자에게 강아지 핑계로 접근⋯성폭행하고 강제로 마약 투약
재판 내내 혐의 부인 "성관계는 피해자의 제안에 따른 것"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 전혀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징역 12년 확정
![[단독] "저희 강아지 좀 찾아봐도 될까요?" 낯선 이웃의 방문에서 시작된 끔찍한 12시간 기사 관련이미지](https://d2ilb6aov9ebgm.cloudfront.net/1607595228386865.jpg?q=80&s=832x832)
이웃이 동물을 키운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이용해 성폭행을 저지른 남성에 대한 판결이 나왔다. 그는 12시간 이상 피해자를 감금하고 마약을 투약하기도 했지만 이 모든 것이 "피해자가 원했던 것"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이어갔다. /그래픽=조소혜 디자이너
A씨는 고양이를 집에서 몰래 키웠다. 반려동물을 키우면 안 되는 오피스텔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조심한다고 했지만 고양이와 함께 있는 모습을 같은 층 이웃집 남성에게 한 번 들킨 적 있었다. 하지만 2주가 지나도 별다른 문제가 생기진 않았다.
오히려 A씨는 그 남성도 '자신과 같은 처지'라고 생각할만한 부분이 있었다. 그 남성이 집에 찾아왔을 때만 해도 그랬다.
"키우던 강아지가 베란다를 통해 그쪽으로 넘어간 것 같은데 확인 좀 해도 될까요?"
그 남성도 이 오피스텔에서 강아지를 몰래 키우는 처지였던 것. A씨는 이 말을 굳게 믿었다. 그렇게 현관문이 열렸다.
하지만 남성 B씨는 강아지를 찾으려던 게 아니었다. 처음부터 목적은 따로 있었다. 성폭행이었다.
지난해 6월 서울 강남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벌어진 '성폭행 및 12시간 감금'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피해자가 문을 열어주자마자 남성 B씨는 옷 안에 숨겼던 가위를 들이밀었고 실제 성폭행을 시도했다. "이 건물에서 내가 강간한 여자만 4명 있다"며, 온몸에 새긴 문신까지 보여주면서 위협했다.
성폭행에 실패했던 건 B씨가 마음을 고쳐먹어서가 아니었다. 순전히 B씨의 신체 문제였다. 하지만 B씨는 이 문제를 피해자에게 '마약을 투약하는 것'으로 해결하려 했다.
총 3차례 '강제 마약 투약'이 그렇게 이뤄졌다. 피해자는 당시 복용 부작용으로 다리 마비 증상을 보였지만, B씨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약효가 떨어지자 피해자에게 반복 투약했다고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적었다.
12시간 이상을 감금되며 범행을 당한 피해자는 이 사건으로 최소 8개월 이상의 치료가 필요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었다. 하지만 B씨는 3번의 재판 내내 혐의를 부인했다. "성관계는 피해자의 제안에 따른 것이고, 필로폰 등은 피해자가 스스로 투약한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대법원까지 올라갔던 이 사건은 결국 지난 9월에서야 확정됐다. 사건 발생 1년 3개월 만이었다.
실제 판결문 전체에는 피고인 B씨의 주장과,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재판부의 근거가 비중 있게 실렸다.
자신에게 적용된 모든 혐의에 대해 B씨가 치열하게 무죄를 다퉜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심 법원은 B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주장① : "성관계는 피해자의 제안에 따라 시도한 것이다"
법원은 먼저 "성관계는 피해자가 제안한 것"이라는 B씨의 주장을 배척했다.
"사건 발생 전 CC(폐쇄회로)TV 장면에서 두 사람이 인사를 하거나 아는 체를 하는 장면을 찾을 수 없고, 이러한 개인적인 친분조차 없는데도 '피해자가 성관계를 먼저 제안했다'는 주장은 수긍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강아지를 찾아보겠다"며 집에 들어온 B씨의 집에서 강아지를 키운 흔적이 발견되지 않은 점 역시 B씨 진술의 신빙성을 낮췄다.
반면, 피해자는 사건 이후 4시간 만에 B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이때 지인에게 "신고하기 무섭다. 혹시 잘못될까 봐 몰라서 적어놓는다"며 자신의 집 비밀번호를 보내놓은 점도 "성폭행 피해를 당했다"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높였다.
주장② : "마약도 피해자가 스스로 투약했다"
"필로폰 등을 피해자 스스로 투약했다"는 B씨의 주장 역시 법원은 배척했다. 피해자의 '휴대전화 검색 결과'가 결정적인 근거였다.
실제 피해자는 당시 '필로폰 부작용', '의도치 않은 마약투여 및 성폭행', '필로폰 몰래 먹여 성폭행한 조폭 검거' 등을 검색했었다.
이에 재판부는 "B씨의 주장대로 피해자가 스스로 필로폰을 투약했다면 이와 같은 검색어로 검색할 이유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또한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했을 때, 성폭행 피해뿐 아니라 자신의 마약 투약 사실까지 함께 밝힌 점도 판단의 근거가 됐다. 피해자가 스스로 투약했다면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을 스스로 밝히지 않았을 것이라는 취지였다.
주장③ : "피해자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
B씨는 '피해자의 진술'에 대해서도 "신빙성이 낮다"고 주장했다. 피해자가 '범행 도구인 가위를 B씨가 어디에서 꺼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이 역시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해자의 법정 진술을 근거로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며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오랜 시간 겁을 먹은 상태에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피해자가 시간이 지날수록 범행 내용을 추가하거나 특별히 과장한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이를 근거로 지난해 12월 서울중앙지법 정문성 부장판사는 B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다. 7년간의 신상공개와 7년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및 장애인복지시설 취업제한도 명령했다.
하지만, B씨와 검찰 양측 모두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했다.
지난 7월 서울고등법원(재판장 한규현 부장판사)이 맡은 2심에서는 형량이 12년으로 4년 더 올라갔다.
피해자의 8개월짜리 상해진단서가 추가로 제출됐기 때문이었다. 피해자는 매우 심각한 수준의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를 판정받았는데 "해당 사건의 기여도가 100%에 해당한다"는 소견을 받았다.
그 결과 1심에서 인정된 혐의(주거침입강간죄 등)보다 최소 형량이 5년 더 무거운(범행 당시 기준), 성폭력처벌법상 강간등치상죄가 적용됐다.
하지만, 이러한 법 적용을 막기 위해 B씨는 "진단서의 신빙성이 매우 의심스럽다"며 "임상적 추정에 불과하다"며 물고 늘어졌다. 피해자가 진료받은 경찰병원의 의사가 퇴직한 점도 문제 삼았다. 피해자의 초진(첫 진료) 당시 상태 확인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2심을 맡은 한규현 부장판사는 "그렇게 볼 수 없다"며 해당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특히 "피고인의 범행은 매우 가학적⋅변태적이고 비인간적이어서 그 죄질이 극히 무겁다"며 "피해자는 성적으로 철저하게 착취당하고 유린당하여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성조차 짓밟혔다"고 꾸짖었다.
덧붙여 "피해자에게 법정에 나와 기억하고 싶지 않은 피해사실을 진술하게 해 2차적인 고통을 받게 했다"며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B씨는 또다시 불복해 사건을 대법원으로 가져갔다. 이번에도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지난 9월 대법원(주심 박상옥 대법관)은 원심(2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보고 이를 확정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