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00만원 빚 때문에 자해한 20대 여성 홀로 둔 룸메이트, 숱한 의문 남긴 채 무죄
4700만원 빚 때문에 자해한 20대 여성 홀로 둔 룸메이트, 숱한 의문 남긴 채 무죄
검찰 "빚 문제로 다투다 흉기 찌르고 방화" vs 피고인 "보험금 노린 자해"
상급심 "합리적 의심 배제 못 해" 무죄 확정

화재 현장에서 목에 상처를 입고 숨진 20대 여성 사건에서 룸메이트로 지목된 피고인이 최종 무죄를 확정받았다. /셔터스톡
불길 속에서 목이 찔린 채 발견된 20대 여성. 범인으로 지목된 룸메이트는 결국 무죄를 확정받았다.
2012년 서울 강남의 한 빌라에서 20대 여성 A씨가 화재 현장에서 목 부위에 날카로운 것에 찔린 상처를 입은 채 발견됐다.
보름여 만에 숨진 A씨 사건을 두고 검찰은 함께 살던 직장 동료이자 룸메이트인 B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해 살인미수와 방화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20일 YTN 라디오 '이원화 변호사의 사건X파일'에서는 1심과 대법원의 판단이 완전히 엇갈려 '한국판 아만다 녹스' 사건이라 불린 이 비극의 전말을 다뤘다.
4700만 원 빚과 엇갈린 주장
사건의 가장 큰 쟁점은 4700만 원 빚의 존재 여부였다.
피고인 B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피해자가 스스로 자해하고 불을 낸 것"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로엘 법무법인 김강호 변호사는 방송에서 "B씨는 피해자가 자신에게 약 4700만 원의 빚을 지고 있었고, 갚을 능력이 없자 '내가 죽으면 보험금이 나오니 그 돈으로 빚을 갚으라'며 스스로 흉기를 들었다고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B씨는 자해를 말리다 상처가 났고 지혈까지 해줬으나, A씨가 강도 사건처럼 꾸미자며 거부해 집을 떠났다고 덧붙였다.
반면 검찰은 이를 은폐를 위한 조작으로 의심했다.
A씨가 주변에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한 적이 일절 없고, 철저한 성격의 B씨가 정작 4700만 원이라는 큰돈에 대해 아무런 차용증이나 통장 내역을 남기지 않은 점을 꼬집었다.
또한, 검찰은 A씨 휴대전화에서 가족에게 발송된 거액의 빚 관련 문자 메시지 역시 B씨가 가장해 보낸 것으로 판단했다.
치명적 자상 입고 시너 주문? 극명히 갈린 법원 판단
피해자 A씨의 목에 남은 상처도 치열한 공방 대상이었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검찰은 "일반적인 자해에서 나타나는 주저흔(자해 전 망설인 흔적)이 없었고, 두 상처 깊이도 비슷해 타인이 흉기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또한, 목을 찔려 치명상을 입은 A씨가 이후 40분이나 문자를 주고받고, 시너와 라이터 기름을 배달 주문했다는 피고인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1심 재판부는 검찰의 손을 들어 피고인 B씨에게 징역 18년을 선고했다. 피해자의 혈액에서 수면 유발 약물이 검출된 점, 피고인의 진술 번복 등을 종합할 때 유죄가 인정된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항소심과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이들은 1심 판결을 뒤집고 B씨에게 최종 '무죄'를 선고했다.
김 변호사는 상급심이 무죄를 선고한 이유에 대해 "실제 채무가 없었다고 단정할 수 없고, 피해자가 자해하다 흉기에 찔렸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았다"며 "상처가 크지 않아 그날 밤 있었던 행동들을 피해자가 직접 했을 가능성을 합리적으로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B씨 옷에 불에 그을린 흔적이 없다는 점도 고려됐다.
피 흘리는 룸메이트 방치해도 무죄인 이유
그렇다면 피를 흘리는 룸메이트를 홀로 두고 떠난 행위 자체는 처벌할 수 없을까.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법적 책임은 묻기 힘들다. 김강호 변호사는 "이 사건 피고인은 법률이나 계약상 피해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는 자에 해당하지 않아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분석했다.
이른바 '착한 사마리아인 법'도 우리나라는 응급의료법상 면책 조항만 있을 뿐, 구조 의무를 직접 부과하지는 않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처벌이 어렵다.
결국 숱한 의문만을 남긴 채, 증거재판주의 원칙에 따라 이 사건은 무죄로 마침표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