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자 수사 기록 돌려본 경찰…"항의했더니 돌아온 건 '속 좁은 사람' 취급"

글자 크기 설정

미리보기

더 이상 어렵지 않은 법을 위한 인터넷 신문 로톡뉴스를 만나보세요. 법 전문가들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생생히 전달합니다.

성폭력 피해자 수사 기록 돌려본 경찰…"항의했더니 돌아온 건 '속 좁은 사람' 취급"

2021. 12. 03 18:07 작성2021. 12. 06 17:47 수정
안세연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sy.ahn@lawtalknews.co.kr

글자 크기 설정

미리보기

더 이상 어렵지 않은 법을 위한 인터넷 신문 로톡뉴스를 만나보세요. 법 전문가들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생생히 전달합니다.

피해자 측 변호사가 문제 제기하자⋯"같은 경찰인데 무슨 문제냐"

형사사건 경험 풍부한 변호사들 "성폭력처벌법 위반 소지 있다"

조사받으러 온 성폭력 피해자 앞에서 담당 수사관이 다른 부서 수사관과 수사 기록을 돌려본 사실이 알려진 가운데 해당 사건의 피해자 측 변호사는 "해당 부분을 문제 삼자, 경찰은 사과는커녕 '뭐가 문제냐’는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편집=조소혜 디자이너

지난달 25일, 성폭력 피해를 본 20살 여성 A씨가 용기를 내 경찰서를 찾았다. 담당 수사관 앞에서 피해자 진술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조사 시작 2분 만에 갑자기 조사실 문이 덜컥 열렸다. 낯선 사람의 정체는 수사와 무관한 다른 부서의 남성 수사관이었다.


그런데도 담당 수사관은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건을 판단해달라"며 사건 기록을 피해자 앞에서 다른 수사관에게 건넸고, 이 수사관은 조사실 밖 간이 책상에서 수사 기록을 열람하기 시작했다.


피해자 측 변호사가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기 전까지 '수사 기록 돌려보기'가 이어졌다. 여기엔 A씨의 인적 사항뿐 아니라 범죄 피해 사실 등 내밀한 내용이 가득 적혀 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A씨 눈앞에서 수사 기록을 돌려보면서도 미리 양해를 구하거나, 설명하지 않았다.


피해자 변호사가 항의했지만⋯"뭐가 문제냐" 반응

피해자 측 법률대리를 맡은 배인순 변호사. /JY 법률사무소 제공
피해자 측 법률대리를 맡은 배인순 변호사. /JY 법률사무소 제공

피해자 측 법률대리를 맡은 배인순 변호사(JY 법률사무소)는 3일 로톡뉴스와 통화에서 "당시 너무 화가 났다"며 "조사 중단 요청⋅항의를 했지만 돌아온 건 '속 좁은 사람' 취급이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사과할 줄 알았던 담당 수사관은 사과 대신 '같은 경찰인데 뭐가 문제냐'는 반문을 했다"며 "'선배 수사관에게 조언을 구한 것'이라는 식의 입장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이러한 경찰의 입장에 대해 배 변호사는 "납득하기 어렵다"며 "같은 부서(여성청소년과)도 아니고, 사건을 아예 모르던 다른 팀 수사관에 조언을 구하려고 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담당 수사관의 행동, 성폭력처벌법 제24조 위반 여지 있어

로톡뉴스는 형사사건 경험이 풍부한 다른 변호사들에게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는지, 이러한 경찰의 '수사 기록 돌려보기'가 현행법을 어긴 것은 아닌지 등을 물었다.


우선, 변호사들도 "이례적인 사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담당 수사관의 행동은 성폭력처벌법 제24조(피해자의 신원과 사생활 비밀 누설 금지) 제1항 위반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해당 조항은 성폭력 범죄 수사관이 피해자의 인적 사항과 사생활에 관한 비밀을 공개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법률 자문
에스제이파트너스의 옥민석 변호사, 법무법인 새서울의 민고은 변호사, 법무법인 로베리의 박원연 변호사. /로톡DB⋅로톡뉴스DB
에스제이파트너스의 옥민석 변호사, 법무법인 새서울의 민고은 변호사, 법무법인 로베리의 박원연 변호사. /로톡DB⋅로톡뉴스DB


에스제이파트너스의 옥민석 변호사는 "같은 팀도 아닌 다른 팀 수사관에게 수사 기록을 공유하는 건 (내 경우엔) 처음 본다"고 했다.


법무법인 새서울의 민고은 변호사도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면서도 "경우에 따라 해당 수사관에게 성폭력처벌법 위반에 대한 책임이 인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경찰 측 주장대로 조언을 얻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게 사실이라면 문제 삼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했다.


법무법인 로베리의 박원연 변호사 의견도 비슷했다. "실제 수사의 조력을 받고자 하는 의도였다면 형사처벌까진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박 변호사는 "직속상관 또는 같은 부서도 아닌 다른 수사관에게 수사 기록을 넘겨주는 행위 자체는 이 법 위반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고 봤다. 이어 "(해당 행위가) 형사처벌 대상으로 보기는 어렵더라도, 피해자가 겪은 정신적 고통에 대해 경찰을 상대로 민사상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논란이 일자, 담당 수사관이 소속돼 있는 충남 아산경찰서는 "징계할 만한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해 구두로 주의만 줬다"며 "피해자와 신뢰 관계가 무너진 것으로 판단하고 담당 수사관을 교체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사건을 맡은 배 변호사는 "해당 문제가 불거진 지 일주일이 넘게 지난 현재까지 경찰로부터 담당 수사관이 교체됐다는 안내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이 기사는 로톡뉴스의 윤리강령에 부합하는 사실 확인을 거쳤습니다.

독자와의 약속

나만 모르는 일상 법률 상식, 매일 아침 배달해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