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무비] 사법의 역할, 정치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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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사법의 역할, 정치의 역할

2022. 07. 29 13:42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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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 de movie]

가족의 나라 (かぞくのくに), 2012 양영희 감독

16살에 북한으로 건너가 25년 만에 돌아온 아들 성호(이우라 아라타 연기)를 마주한 어머니(미야자키 요시코 연기)는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다. / Star Sands

​​일제 식민지를 계기로 일본에 살게 된 조선인과 그들의 후손이 재일 조선‧한국인이다. 재일 조선‧한국인을 재일(在日)의 일본어 발음인 자이니치라고도 부른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일본은 1947년 5월 2일 쇼와 천황의 마지막 칙령으로 외국인등록령을 발표했다. 골자는 "조선인은 당분간 외국인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칙령인 이유는 다음 날인 5월 3일 일본국헌법이 발효되기 때문이다. 애초 연합군 사령부(GHQ)가 작성한 일본국헌법 초안은 '우리 일본국 인민(我等日本国人民)'으로 시작한다. '우리 미국 인민(We the People of the United States)'으로 시작하는 미국 헌법과 같다.


하지만 일본은 인민 대신 국민을 헌법의 주어로 만들었다. 초안에 있던 '인민(人民)'을 '국민(国民)'으로 만들기 위해 GHQ를 속이기도 했다. 이 헌법이 기본권의 주체를 국적자로 한정한 세계 최초의 헌법이다. '당분간 외국인으로 간주'되던 재일 조선인은 1952년 4월 24일 완전하게 외국인이 됐다. 형식은 법무성 민사국장 명의의 통달이다. 통달은 법령도 아니고 일종의 회람이다. 이렇게 조선인에게 기본권을 주지 않으려 일본국적을 박탈하고, 국민으로 시작하는 헌법도 만들었다. 일본과 달리 다른 식민지 종주국은 식민지 출신자의 국적을 빼앗지 않았다. 1955년 독일은 오스트리아가 분리되면서 이듬해 특별법으로 국적을 선택하게 했고, 1960년 프랑스는 알제리가 독립하면서 마찬가지로 국적 선택권을 줬다.


이제 일본은 재일 조선인이 국민이 아니라며 거의 모든 사회보장법에서 제외했다. 국민건강보험법, 주택금융공고법, 공영주택법, 주택도시정비공단법, 지방주택공급공사법, 국민연금법, 아동부양수당법, 특별아동부양수당법, 아동수당법 등에서 국적을 요구했다. 국민건강보험이 재일 조선·한국인에게 적용된 것은 1965년 한일법적지위협정 이후이고, 공단주택, 공영주택, 주택금융공고 대상자가 된 것은 일본이 국제인권규약을 비준한 1980년 이후이다. 이러한 경제적 어려움 탓에, 일본에서 북한으로 떠나는 사람이 속출했다.


해방 이후 일본에 남아 살다가 북한으로 간 자이니치가 1959~1984년 25년 동안 9만 3339명, 2만 8410세대에 이른다. 이 무렵 자이니치 약 60만 명 가운데 10만 명이 북한으로 이주한 셈이다. 그런데 자이니치는 대부분 한반도 남쪽 출신이다. 북한 이주가 한창이던 1964년 통계를 보면 경상남도 본적이 38.3%, 경상북도가 25.2%, 제주도 14.9%, 전라남도 10.2%다. 이 지역만 88.6%다. 조선의 남쪽에서 일본으로 갔던 사람들이, 살아본 적이 없는 반도 북쪽으로 다시 이동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자이니치에게는 멀든 가깝든 남한과 북한에 모두 친척이 생기게 된다.


영화 <가족의 나라>는 16살에 북한으로 간 성호(이우라 아라타 연기)가 뇌종양 수술을 받기 위해 25년 만에 일본에 돌아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북한으로 갔다가 다시 일본에 돌아오는 일은 몹시 어렵다는 자막이 먼저 보인다. 치료를 위해 일본에 돌아온 아들은 여동생과 어머니, 아버지를 만난다. 왜 16살 아이가 혼자 북한으로 갔는지 드러나지 않다가, 조선총련의 간부인 아버지가 조직의 명령에 따라 아들은 보낸 것으로 나온다. 25년 전 일본 니가타에서 함경북도 청진항으로 가는 배를 타기 전에 아들은 작은아버지에게 물었다. "내가 북조선으로 가지 않으면 아버지가 곤란해지는 것이겠죠."


자신의 생활 기반이기도 한 조선총련이란 조직을 위해 아들을 북한에 보내고 나니, 아버지는 조선총련에 메인다. 부인이 부업을 해서 적지 않은 돈을 북한으로 송금하면서 산다. 그래서 북한이 '가족의 나라'이다.


25년 만에 만난 오빠에게 여동생 리애(안도 사쿠라 연기)는 간첩 활동을 제안받는다. 여동생이 울면서 오빠에게 하는 말은, 자신이 25년 전 니가타항에서 작은아버지에게 했던 말과 같다. "내가 거절하면 오빠에게 문제가 생기는 거야? 내가 받아들이면 오빠에게 공이 되는 거고?" 이 대화를 우연히 들은 아버지는 아들을 불러 "임무를 수행하러 온 것이냐?"라며, 나도 조직에 속한 사람이지만 여동생은 포섭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자 아들은 "나한테 할 얘기가 그것뿐입니까. 그런 말 말고는 할 얘기가 없느냐"고 화를 내며 나가버린다.


성호는 뇌종양 수술을 받기 위해 일본의 가족에게 왔지만, 북한에서 파견된 양 동지(제일 오른쪽 뒤에 선 사람‧양익준 연기)의 쉼 없는 감시를 받는다. / Star Sands


아들은 수술받지 못한 채 갑자기 북한으로 돌아간다. 3개월 기한으로 일본에 돌아왔지만, 북한 당국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귀국하라고 명령한다. 이유는 없다. 가족들은 당황하지만, 아들은 북한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라고 덤덤하게 말한다. 그러면서도 여동생에게는 그 나라에서 이유 따위 생각하다가는 머리가 돌아버린다고 한다. 오빠는 일본에 머무르는 동안 여동생에게 여행 가방을 사주고 싶어 했다. 값이 비싸 사주지는 못했지만 이런 가방을 들고 세계를 다니는 사람이 되라고 했다. 마지막 날 떠나는 오빠를 울면서 붙잡던 여동생은, 오빠가 떠나고 오빠가 사주려던 여행 가방을 사서 가게에서 나온다. 그렇게 영화는 끝이 난다.


여동생을 비롯해 가족은 이른바 조선적이다. 1947년 일본이 재일조선인의 일본 국적을 박탈하면서 외국인등록 문서에 이들의 국적을 뭐라고 적을지 애매했다. 당시는 대한민국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생기기 전이었다. 그래서 이들 출신지가 조선반도라는 뜻에서 조선으로 적었고, 그래서 조선적이 됐다. 이후 일본 관청에 하는 외국인등록을 조선적으로 유지하는 사람과 한국적으로 바꾸는 사람으로 나뉘었다. 미승인 국가인 북한으로는 지금도 바꾸지 못한다.


조선적이 다른 나라를 여행하려면 일본 정부가 재입국을 보증하는 문서를 받아 출국한다. 무슨 일이 생기면 일본으로 돌려보내라는 이 문서가 없으면 상대국에서 입국시키지 않는다. 조선적 가운데는 재입국증명서 대신 조선총련에서 발급하는 북한 여권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도 해외여행이 쉽지는 않다. 영화 속 여동생은 여행 가방을 사면서 조선적을 버렸을 것이다. 역사의 산물이자 증인의 표지이지만 거주이전의 자유를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는 조선적 대신 한국적이나 일본국적으로 바꿨을 것이다. 자유롭게 살라는 오빠의 말도 조선적을 더는 고집하지 말라는 뜻이었을 테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여동생의 직장 동료가 서울 본사로 가게 됐다며 서울로 놀러 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여동생은 동료에게 나는 한국에 가지 못한다면서 말없이 돌아선다. 조선적은 왜 한국에 입국하지 못하는 것일까. 한국 정부는 1990년대부터 조선적 자이니치를 여행증명서로 입국시켰다. 그러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조선적에게 여행증명서를 발급하지 않기 시작했다. 2007년에는 여행증명서 신청 건수가 2229건이었고 거부 건수는 0건이었다. 그러다 2008년 이후로 발급 건수가 계속 줄어 2010년 176건, 2011년 25건, 2012년 20건이 됐다.


성호는 여동생 리에(안도 사쿠라 연기)에게 여행 가방을 사주고 싶어 한다. 이런 가방을 들고 세계를 다니는 사람이 되라고 한다. / Star Sands


여행증명서 발급이 거부된 조선적 역사학자 정영환이 소를 제기했다. 2009년 서울행정법원은 거부 처분을 취소하라고 했고, 2010년 서울고등법원은 거부가 정당하다고 했다. 1‧2심 결론은 다르지만 조선적을 무국적 재외동포라고 판단한 점에서는 같았다. 여행증명서 발급 문제에서 무국적 재외동포를 국민으로 봐야 한다는 게 1심이고, 북한 주민으로 봐야 한다는 게 2심이다. 그래서 1심은 국민이 대상인 여권법을 적용해 특별한 사유가 없는 이상 발급을 거부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와 달리 2심은 북한 주민이 대상인 남북교류협력법을 적용해, 입국 비자처럼 발급 거부가 가능하다고 했다. 이렇게 결론은 다르지만 조선적이 무국적 재외동포라는 판단은 같았다.


그런데 대법원에서 정영환은 조선적은 무국적이 아니라 한국적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무국적 재외동포는 국민이 아니어서 여행증명서를 엄격히 발급해야 한다는 항소심의 논리도 부당하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1996년 대법원은 '조선적은 한국적'이라고 밝혔다. 한국의 국적법은 한국인은 부모가 한국인인 사람이라고 하면서도 최초의 한국인을 정하지 않았다. 이 문제를 1996년 대법원이 해결했다. '조선인을 부친으로 하여 출생한 자는 남조선과도정부법률 제11호 국적에 관한 임시 조례의 규정에 따라 조선 국적을 취득했다가 제헌 헌법의 공포와 동시에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고 했다.


정영환은 한국적인 자신에게 특별한 문제가 없으므로 여행증명서 발급을 거부하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2013년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했다. 그러면서도 별다른 설명은 하지 않았다. 판결은 단 한 문장이다. "일본의 1947년 외국인등록령에 따라 국적 등의 표시를 조선으로 했다가 그 후 일본국적을 취득하지도 않고 국적 등의 표기를 대한민국으로 변경하지도 않고 있는 조선적 재일동포는 구 남북교류법상 여행 증명서를 소지해야 대한민국에 왕래할 수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 정영환은 대법원에 자신이 한국적이라 주장했고 근거는 대법원의 판례였다. 하지만 대법원은 한국적이라도 출입국이 차별된다는 결론을 내리면서도 이유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자이니치 가운데 조선적을 유지하는 사람의 이유는 다양하다. 배상받지 못한 식민지배의 증거라는 사람도 있고, 북한을 지지해서 한국적을 망설이는 사람도 있다. 게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복잡한 입장들이 생겼다. 북한 지지자이면서 해외여행 등을 이유로 한국적으로 바꾼 사람도 많고, 국적은 한국이지만 평균적인 일본인보다 한국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조선적을 유지하는 자이니치들이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내가 진짜 간첩이라면 진즉에 한국적으로 바꿨다." 대법원 판결 이후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 조선적을 모두 입국시켰다. 보수야당도 별달리 반대하지 않았다. 정치도 예술도 감당하는 역사의 무게를 재판은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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