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살해 후 김치냉장고에 시신 숨긴 채 1년간 '그녀'로 살았다
연인 살해 후 김치냉장고에 시신 숨긴 채 1년간 '그녀'로 살았다
주식 빚 4천만 원에 연인 살해
피해자 휴대폰으로 1년간 가족과 태연히 대화

지난 9월 30일, 여자친구를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는 A씨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위해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으로 들어가는 모습. /연합뉴스
1년 가까이 딸의 휴대폰 너머에서는 다정한 답장이 돌아왔다. 가족들은 딸이 바쁜 직장 생활을 하며 잘 지내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사이 딸은 싸늘한 주검이 되어 남자친구의 집 김치냉장고에 갇혀 있었다. 피해자의 휴대폰으로 1년간 '살아있는 딸'을 연기한 40대 남성의 위장극은 그의 새 여자친구의 신고로 막을 내렸다.
4천만 원 주식 빚이 부른 참극
1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오윤성 교수에 따르면, 사건은 2024년 10월 21일 전북 군산의 한 빌라에서 발생했다.
40대 남성 A씨는 당시 연인이었던 B씨의 돈 5천만 원으로 주식 단타 매매를 하다 4천만 원의 손실을 봤다. 돈 문제로 시작된 다툼은 비극으로 치달았다. A씨는 B씨를 질식시켜 살해했고, 범행을 숨기기 위해 대형 김치냉장고를 새로 구입해 시신을 은닉했다.
A씨의 범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B씨의 죽음을 완벽하게 숨기기 위한 가상 생활을 연출하기 시작했다. B씨의 휴대폰을 이용해 마치 B씨가 살아있는 것처럼 행세하며 가족들과 1년 가까이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심지어 시신이 보관된 B씨의 월셋집 계약을 유지하기 위해, B씨의 카드로 월세를 꼬박꼬박 납부하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무너진 완전범죄, 두 개의 신고
A씨의 완전범죄 시도는 두 갈래의 길에서 균열이 생겼다. 먼저 B씨의 여동생이 "언니와 메신저 연락만 되고 다른 연락은 닿지 않는다"며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결정적인 제보는 A씨의 새 여자친구 C씨에게서 나왔다. 오윤성 교수는 "경찰이 실종 수사를 위해 B씨의 번호로 연락하자, A씨가 C씨에게 대신 전화를 받도록 시켰다"고 설명했다.
C씨가 "바빠서 출석할 수 없다"고 둘러대자 경찰은 본격적인 실종 수사를 예고했다. 이에 압박감을 느낀 A씨는 결국 C씨에게 범행을 실토했고, 충격에 빠진 C씨가 지인을 통해 경찰에 신고하면서 1년간의 끔찍한 위장극이 발각됐다.
왜 김치냉장고였나…고난도 은폐의 속내
오 교수는 A씨가 시신을 야산에 매장하거나 강에 유기하는 일반적인 방식 대신 김치냉장고를 택한 이유에 대해 "시신을 직접 처리할 자신이 없었거나, 발각 가능성이 더 낮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시신이 부패하지 않게 보관하며 범행 발각 시점을 최대한 늦추려 한 계산된 행동이라는 것이다.
이는 주민등록조차 되지 않아 사회적 존재가 없던 영아를 냉동고에 유기했던 '서래마을 영아 살해 사건'과는 차원이 다른 범죄다. 오 교수는 "성인은 가족, 친구 등 사회적 관계망이 존재하기에, 그가 살아있는 것처럼 가상의 삶을 계속 연출해야 하는 고난도 은폐가 필요했다"고 지적했다.
A씨가 B씨의 사회적 고립 상태를 악용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오 교수는 "범인이 피해자의 가족 간 소통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을 간파하고, 메신저만으로도 완전범죄가 가능하다고 믿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A씨는 살인 및 사체은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질 예정이다. 새 여자친구 C씨의 범행 가담 여부에 대해서는 B씨 가족과의 문자 연락 등에 얼마나 깊이 개입했는지에 따라 추가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고 오 교수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