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성범죄 전담 재판부' 재판 방청해보니⋯강제추행 재판 2분, 준강제추행 재판 1분
국내 최대'성범죄 전담 재판부' 재판 방청해보니⋯강제추행 재판 2분, 준강제추행 재판 1분
성범죄에 대한 '솜방망이' 판결이 n번방 사건을 낳았다는 비판 여론
실제 성범죄 전담 재판부의 재판 30건 방청해봤더니 '회전문 재판'

너무도 버젓이 일어난 성착취 범죄들. 그 이면엔 가볍고 관대한 판결들이 있었다는 비판이 많다. 이 판결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지 4월 넷째 주 서울중앙지법 성범죄 전담 재판부 다섯 곳을 모두 방청해봤다. /게티이미지코리아⋅그래픽 편집=엄보운 기자
"'n번방'은 판결을 먹고 자랐다."
너무나도 버젓이 일어난 성착취 범죄들. 그 단초를 제공한 건, 가해자들의 삐뚤어진 '욕구'만이 아니었다. 법원의 '솜방망이 판결'이 가해자들에게 더 큰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용기'를 줬다.
가해자 중심의, '성인지 감수성'이 결여된 재판이 솜방망이 처벌로 이어진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이것이 악랄한 성범죄가 양산되는 토대를 만들었다는 지적이 크다.
전 세계 최대⋅최악의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인 '웰컴 투 비디오'를 운영한 손정우도 징역 1년 6개월 형에 그쳤다. 미국이었다면 징역 1000년 이상도 나올 수 있는 범죄였다.
정의를 구현하지 못하는 우리의 재판. 그 모습은 어떨까. 가볍고 관대한 판결은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오는지 4월 넷째 주 서울중앙지법 성범죄 전담 재판부 다섯 곳을 모두 방청했다.
일주일의 시간을 투자해 직접 방청한 재판은 모두 30건. 피 튀기는 설전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법정 영화를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무미건조한 재판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재판부의 태도는 형식적이었고, 검사나 변호인, 심지어 피고인까지 기계적이었다. 무엇보다 10분 이상 재판을 이끌어가는 경우가 드물었다.
가장 큰 이유는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이다. 심도 있는 논의를 하기는커녕 밀려드는 사건을 처리하기 급급했다. 마치 빠르게 회전하는 회전문을 통과하듯 새로운 피고인이 수없이 재판정을 들어오고 나갔다.
"XXXX호(사건 번호 일부), OOO씨(피고인)!"
재판장은 몇 분에 한 번씩 다음 재판 번호를 외치며 해당 피고인을 큰 소리로 호명했다. 재판정 안의 사람들은 기자만 빼고 촌각을 다투고 있었다.
판사 : (증인을) 4명 부르면 1시간 넘겠네요?
변호인 : 최대한 빨리하겠습니다. 물어볼 내용은 거의 비슷하니까 최대한 10~15분 정도 예상합니다.
판사는 다음 재판에서 이뤄질 증인신문 시간을 줄이려 했고, 변호인은 빨리하겠다며 시간 확보를 요청했다.
시간 확보는 이들에게 사활이 걸린 문제로 보였다. 판사는 밀려드는 재판이 쌓이지 않게끔 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반면 변호인은 자신이 맡은 사건이 법원의 충분한 심리를 받고 정확한 판결을 받길 원했다. 대개 판사의 의중이 반영됐다.
이러다 보니 성범죄 '전담' 재판부의 재판은 빨리 회전시키는 데 주력하는 '회전문 재판'이 됐다.
성범죄 전담 재판부의 판사가 하루에 맡은 재판은 많게는 37건이었다. △ A 판사 37건, △ B 판사 29건, △ C 판사 23건 등이다. 게다가 모두 성범죄 사건인 것도 아니었다. 사기, 공무집행방해 등 다른 형사사건이 더 많았다. 제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갖춘 판사여도 이렇게 밀려들어 오는 재판을 모두 성심성의껏 처리하기에는 버거운 양이었다.
하루라는 제한된 시간에 이 재판이 모두 끝나야 하니, 각 재판에 할당되는 시간은 자연히 얼마 되지 않는다. 재판 하나당 시간은 짧게는 1분, 길게는 30분에 불과했다. 대부분 5분에서 10분이었다. 재판장이 피고인을 호명해서 신원을 확인하고, 다음 기일을 선고하느라 재판을 종결하는 절차를 제외하면 실제로는 더 짧다고 봐야 한다.
한 강제추행 사건의 경우, 판사가 한 일이라고는 검사의 공소사실에 대해 질문 하나를 한 것뿐이었다. 그 재판은 그렇게 끝났다.
예를 들어 검사가 "O월 O일, XX에서 피해자에게 (강제로) 입을 맞춘 적이 있나요?"라고 피고인에게 물으면, 피고인은 "네"라고 대답하고 재판이 끝나는 식이다. 이 재판에 걸린 시간은 총 2분이었다.
그보다 짧은 1분 재판. 준강제추행 혐의를 다투는 재판이었다. 이때는 피해자의 합의 여부와 구형 형량 등을 이야기한 뒤 마무리됐다.
이런 재판에서 피해자 개개인의 상처를 보듬고, 가해자의 피해자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와 반성을 기대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보다 재판의 '형식'이라는 고정된 틀에 맞춰 피해자와 피고인을 욱여넣는 것에 가까워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