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지켜내는 것만이 방법인, 노동법 밖의 노동자 '정수기 방문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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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지켜내는 것만이 방법인, 노동법 밖의 노동자 '정수기 방문사원'

2020. 01. 02 14:32 작성
박선우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sw.park@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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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이 제공하는 겹겹의 보호막, 방문사원들에겐 '그림의 떡'

문제 발생 시 개인이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시스템

여전히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있다. 집집마다 방문하는 정수기 방문관리사원(방문사원)들이 대표적이다. 해당 이미지는 특정 사건과 관련 없음. /유튜브 캡처

노동법은 점점 더 '노동자 보호'를 강화하는 추세지만, 여전히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있다. 정수기 관리를 위해 집집마다 방문하는 정수기 방문관리사원(방문사원)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노동을 하지만 법률상 노동자는 아니다. '근로종사자'라 불릴 뿐이다.


방문사원들은 하루에도 십수명씩 고객들을 만난다. 만남의 장소도 고객들 자택이다. 그러다 보니 각종 위험에 처할 확률도 높다. 방문한 곳에서 기르는 개에 물리거나 밀폐된 자택 안에서 성희롱⋅성추행을 당하는 일도 벌어진다. 하지만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노동법은 무용지물이다.


왜 그럴까. 노동 사건 소송 경험이 풍부한 변호사들에게 그 이유와 대책을 들어봤다. 변호사들은 "보호를 받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이들이 법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이유 : '근로자성' 인정 못 받았기 때문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되기 위해선 '근로자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이걸 인정받아야 유급휴가, 퇴직금을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업무와 관련된 사고를 당했을 때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일하다 다쳤으니 산업재해보험의 혜택 등을 받는 것이다.


방문사원들이 노동자가 아닌 이유는 그들이 서류상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이다. 방문사원들은 대부분 실제로 일반 직원과 다를 바 없이 일하지만, 서류상 본사와 위탁계약을 맺고 일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이 터지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사고 발생시 해결 방안 2가지 : ①근로자성 인정 소송 ②개별 손해배상 소송

변호사들은 방문사원이 근무 장소에서 사고를 당했을 경우,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크게 두 가지 있다고 했다.


①근로자성 인정 소송

근본적인 해결책은 이들이 '근로자성'을 인정받는 것이다.


법원은 근로자성을 △업무 내용을 사용자가 정하고 △취업규칙 또는 복무(인사)규정 등의 적용을 받으며 △업무수행과정에서 사용자가 상당한 지휘․감독을 하는지 등을 기준으로 인정한다. 서류가 어떻든 실질적인 의미에서 노동자라면 근로자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엄세연 변호사는 방문사원도 앞으로 근로자성을 인정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방문사원은 외형상으로는 개인사업자의 지위를 갖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사용자에 종속돼 노무를 제공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근로자에 가깝다는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엄 변호사는 "서울중앙지법은 최근 백화점 입점사의 위탁판매원에 대한 근로자성을 인정한 바 있다"며 "이와 유사한 근무환경으로 추측되는 정수기 방문사원에 대해서도 근로자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다산의 김춘희 변호사는 "방문사원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이 인정된다면, 근로기준법 외에도 산재법과 남녀고용평등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인정을 받기 위해선 별도의 소송을 거쳐야 한다. 소송에는 시간과 돈이 들지만, 나와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이 승소했다고 해서 '내 권리'까지 자동으로 보장되는 건 아니다. 동료의 승소 판결문은 나의 소송에 도움이 되겠지만, 근본적으로 별개다. 내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선 '내가 제기한 내 사건'에서 근로자성이 인정돼야 한다.


②개별 손해배상 소송

근로자성 인정 소송과 별개로, 피해자가 직접 받은 피해에 대해 개별 소송하는 방법도 있다. 성희롱을 하거나 상해를 입힌 가해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하는 것이다.


법무법인 법가의 노준선 변호사는 "방문판매사원이 근무 중 고객 등으로부터 성희롱이나 상해 등의 사고를 당했을 때 일차적으로 형사상, 민사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은 가해자"라며 " 방문사원 개인의 자격으로 가해자를 상대로 고소 및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엄세연 변호사도 "근로자성이 부정되는 경우 별도로 보험을 들어놓은 것이 아닌 이상, 개인적으로 민사소송을 통해 위자료를 청구하는 방법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회사가 사고를 무마하려 한다면? 소송 통해 해결할 수밖에

만약 회사가 고객이 정수기 대여를 취소할 것을 우려한 나머지, 사고를 무마하려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엄세연 변호사는 "만약 사업주가 실적 때문에 고객과의 합의를 강요할 경우, 해당 사업주를 강요죄로 고소하는 방법을 고려해볼 수 있다"며 "고객에 대한 고소 또는 소 제기를 방해한다면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방문관리사원이 고객의 가해 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것은 법적으로 정당하다. 하지만 타인의 정당한 행위를 막거나 합의를 강요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우리 형법 제324조(강요)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다면 5년 이하의 징역 등에 처하고 있다.


노준선 변호사는 "고객의 고의·중과실로 발생한 불법행위로 인하여 계약이 해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손해를 방문사원에게 부담하도록 한다면 이는 불공정거래행위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노동자'라는 사실을 '사실'로 인정받기 위한 고행길

결국 방문사원들은 '자신들이 입은 피해'를 입증하기 위해 소송에 나서야 한다. 이 과정에서 '나는 근로자다'라는 사실을 인정받는 것, 그리고 회사가 시끄러워지는 걸 싫어할 경우에도 또 다른 별도 소송의 시작이다.

자기 돈과 자기 시간을 들여서 말이다.


이런 문제는 방문사원들의 '근로자성'을 원칙적으로 부정하고, 예외적으로만 인정하는 현행 법률 탓이 크다. 국회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랫동안 노동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소위 '일할 때는 노동자, 계약서 쓸 땐 사장님'이란 이중구조를 깨기 위한 노력이었다. 하지만 번번이 실제 개정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법률 자문

왼쪽부터 '변호사 엄세연 법률사무소'의 엄세연 변호사, 법무법인 법가의 노준선 변호사, 법무법인 다산의 김춘희 변호사. /로톡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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