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재판장님" 다 보는 앞에서 판사 들이받은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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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재판장님" 다 보는 앞에서 판사 들이받은 검사

2019. 11. 22 19:06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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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park@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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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간 진행된 국민참여재판 중단시킨 판사⋯대체 왜?

재판 내내 당당했던 검사, 판사의 중단 선언에 "처음부터 그랬어야 했다"

지난 11월 15일 수원지방법원에서 '횡령' 혐의를 받는 최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 이날 재판은 7시간 동안 진행됐지만 재판장의 판단에 따라 중단됐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지난 15일 수원지방법원 국민참여재판.


"죄송합니다."


죄를 뉘우치는 피고인의 말이 아니다. 재판장의 사과였다. 그 한 마디에 7시간을 달려온 재판이 중단됐다.


이날 재판장은 국민참여재판을 중단하는 '첫 경험'을 했다. 변호인 역시 처음이라 했다. 여기에서 중단은 '오늘 못한 재판을 내일 다시 이어가자'는 의미가 아니다. 통상절차(일반 형사 재판)로의 전환이었다.


사건이 지나치게 복잡해 국민참여재판으로 판단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이유였다. 재판장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며 고민 끝에 내린 결단임을 강조했다. 7명의 배심원 중 3명은 끝까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하자고 주장했다. 피고인도 강한 어조로 국민참여재판을 계속 받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유독 다른 반응을 보인 이가 있었다. 검사였다. 검사는 "(나는) 처음부터 국민참여재판이 아닌 통상절차로 하자고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그는 재판장에게 거침없이 의견을 내놓는 등 재판 내내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검사가 보인 긴장감과 재판장의 사과. 그날의 재판을 되짚어봤다.


장면 1. 판사에 목소리 높인 검사 "주장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이날 다뤄진 '횡령' 사건은 과자와 같은 제과류가 유통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지난 2014년 L제과 리테일매니저(RM)로 입사한 피고인 최모(31)씨는 L제과와 계약한 매장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았다. 편의점이 L제과에 과자류를 주문해 공급받고 이에 대한 대금 지급이 제대로 이뤄지는지 관리했다. 문제는 최씨가 다른 일도 했다는 점에 있었다.


지난 11월 14일 수원지방법원 301호 법정에서 '횡령' 혐의를 받는 최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 이날 재판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 도중 재판장의 판단에 따라 통상절차 진행이 결정됐다. /박선우 기자
지난 11월 15일 수원지방법원 301호 법정에서 '횡령' 혐의를 받는 최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 이날 재판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 도중 재판장의 판단에 따라 통상절차 진행이 결정됐다. /박선우 기자


그가 받고 있는 혐의는 8억3000만원 상당의 과자를 회사가 지정한 적 없는 거래처에 넘겼다는 내용이었다. 2년간 203회에 걸쳐 이런 일을 하면서 과자 대금도 직접 받았다. 검사는 "최씨는 편의점에 과자를 판매하거나 편의점 점주로부터 과자 대금을 직접 받을 권한이 없다"고 주장했다. 최씨 직무 범위는 과자와 돈의 흐름을 관리하는 것에 그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최씨 측은 "리테일 사원들은 관례상 영업사원처럼 일했고, 회사도 묵인했다"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회사가 영업실적을 올려야 한다"고 부추겨서 어쩔 수 없이 '밀어내기'식으로 과자를 납품했다고 말했다. 실적을 위해 거래처에서 받을 수 있는 대금보다 싼 값에 과자를 넘겼고 사비로 나머지 금액을 채웠다고도 했다.


제과업계의 유통구조와 관습, 영업 압박과 지시 관계에 대한 복잡한 이야기가 오갔다.


검사는 최씨와 증인의 진술을 종합해 사건 유통구조를 제시하려고 했다. 정상적인 구조가 인정돼야 '여기에서 벗어난 피고인의 행동은 횡령'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검사가 배심원들에게 "이해를 위해 유통구조를 설명하겠다"고 말한 그 순간, 첫번째 불꽃이 튀겼다.


재판장이 검사의 말을 자르고 "검사의 주장이란 것을 알고 들어주세요"라며 배심원들에게 말한 것이다.


검사는 즉각 반발했다. "주장이 아닙니다. 유통구조는 주장이 아니라 사실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본 사건에서는 구조가 중요합니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판사는 이에 "계속 진행하시라"고 물러섰다.


장면 2. 의욕 넘쳤던 검사, 증인 소개도 건너뛰고 신문하다 '지적'

이날 공판검사로 출석한 강현욱 검사는 재판이 진행되는 내내 크고 우렁찬 목소리로 주장을 펼쳤다. 말투는 빨랐고 표현도 단정적이었다. 그러다 재판부로부터 절차를 지켜달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보통 재판에 출석한 증인이 증인석에 앉으면 검사는 증인 소개를 하고 신문을 시작한다. 특히 국민참여재판의 경우 배심원들에게 소개를 하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한다.


그러나 강 검사는 이날 종종 이러한 과정을 생략했다. 검사 측 증인 2명 모두 누구인지 모른 채 신문이 시작되고 말았다. 재판장이 "소개를 해주세요"라고 하자 그제야 검사는 증인이 누구인지, 사건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등을 설명했다.


장면 3. "부당한데 왜 계속했냐" 집요하게 증인에 따져 물은 검사

피고인이 부른 증인은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동료였다. 똑같이 리테일 매니저로 근무하면서 피고인과 비슷한 경험을 했고, 그로 인해 다른 법원에서 재판을 받는 상황이었다.


증인은 피고인이 ① 회사의 실적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일이며 회사는 이를 묵인했다. ② 관리자가 아닌 사실상 영업사원으로 일했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취지의 증언을 했다.


하지만 검사의 증인신문은 집요했다. 증인은 '횡령'의 배경엔 회사의 부당함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검사는 이에 대해 "(부당했다면) 멈추면 되지 않았느냐. 회사 고충감사실이나 형사고소 등의 방식으로 항의할 수 있지 않았냐"며 증인을 몰아세웠다. "범행을 반복하게 만든 게 회사"라고 말하는 증인의 주장을 따졌다.


리테일 매니저(RM)로 입사한 피고인은 8억3000만원 상당의 과자를 회사가 지정한 적 없는 거래처에 넘겼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해당 사진은 사건과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코리아
리테일 매니저(RM)로 입사한 피고인은 8억3000만원 상당의 과자를 회사가 지정한 적 없는 거래처에 넘겼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해당 사진은 사건과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코리아


증인이 입사 초반부터 회사가 강요했다는 취지로 증언하자 "그런 부담을 왜 떠안느냐"며 따지듯 묻기도 했다. 증인은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증인 신문 직후 재판부는 배심원들에게 "잠시 얘기를 하자"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장면 4. "처음부터 국민참여재판 하면 안 됐다" 거침없이 말하던 검사

다시 재판정으로 들어온 재판장의 말투는 차분했고 조심스러웠다.


재판장은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 제11조(통상절차 회부)를 들어 국민참여재판을 중단하겠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이 재판은 통상절차로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통상절차 전환
해당 조항은 국민참여재판을 계속 진행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국민참여재판이 아닌 통상절차로 심판할 수 있도록 한다. 이 결정을 내리기 전에 검사와 피고인 또는 변호인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사실 변호인과 피고인은 국민참여재판으로 계속하길 원했다. 변호인은 "우리는 초반부터 국민참여재판으로 하자고 했다"며 "사건의 사실관계를 설명하기 어렵지만 간결하게 설명하려 했고 핵심적인 쟁점은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피고인 역시 "전문적 지식이 없다면 당사자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흐름은 이해할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검사는 달랐다. 앞서 횡령죄와 유통구조를 설명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한 그는 통상절차로 전환하는 데 수긍했다.


검사는 "(이번 사건은) 법리적인 판단과 이해가 있어야 심리가 가능하다"며 "오늘 처음 법을 접하거나 재산·횡령 등을 숙지하지 않은 상태에서 거래 구조를 이해하고 심리하는 게 쉽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짧은 시간에 국민들이 다 판단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어 통상의 절차로 하자고 했다"며 처음부터 국민참여재판을 원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렇게 수원지방법원 제15형사부(재판장 송승용 부장판사)는 재판을 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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