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뜯어보자" 무심코 넘긴 법원 등기…400만원 빚이 1293만원으로 불어났다
"나중에 뜯어보자" 무심코 넘긴 법원 등기…400만원 빚이 1293만원으로 불어났다
지급명령 받고 2주 안에 이의신청 안 해
400만원 빚이 1293만원으로 확정돼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A씨는 2년간 함께 장사했던 전 여자친구 B씨와 헤어지면서 그간의 기여분을 1000만원으로 정산해주기로 약속했다.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A씨는 매달 조금씩 돈을 보내 600만원가량을 갚았다.
A씨는 “가게를 정리해 목돈이 생기면 나머지 400만원을 한 번에 갚겠다”고 B씨에게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B씨는 “말이 바뀔 수 있으니 내용증명을 보내겠다”며 A씨의 주민등록번호와 주소를 요구했고, A씨는 별다른 의심 없이 알려주었다.
몇 주 뒤, 집배원은 붉은 글씨가 찍힌 법원 등기우편물을 건넸다. A씨는 'B씨가 보낸다던 내용증명이겠거니' 짐작만 했다. '나중에 뜯어보자.' 무심코 서류를 책상 위에 던져둔 그 순간이 모든 것을 바꿔놓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달 초, A씨는 자신의 은행 통장 두 개가 압류되고 일부 돈이 빠져나간 사실을 알게 됐다. 뒤늦게 법원 서류를 열어본 그는 망연자실했다. 서류에는 갚아야 할 돈이 남은 400만원이 아닌 1293만원으로 적혀 있었다.
2주 골든타임 놓치자, 400만원 빚이 1293만원으로
A씨가 받은 서류의 정체는 ‘지급명령’이었다. 지급명령은 법원이 채권자의 서류만 보고 채무자에게 돈을 갚으라고 명령하는 간이 독촉 절차다.
채무자가 이 명령서를 받고 2주 안에 이의신청을 하지 않으면, 별도 소송 없이도 확정판결과 똑같은 효력이 생긴다. 법원은 A씨에게 “지급명령을 받고 2주 안에 이의신청을 하지 않아 판결이 확정됐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윈앤파트너스 법률사무소 한장헌 변호사는 “A씨가 이의신청을 하지 않아 현재는 1293만원 청구액이 확정판결된 상태”라며 “상대방은 이를 근거로 은행계좌 압류 및 추심을 진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청구이의의 소'라는 반격 카드
모든 길이 막힌 것은 아니다. 변호사들은 '청구이의의 소'를 최우선 해법으로 제시했다. 확정된 지급명령의 효력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는 별도의 소송이다.
법무법인 어진 신영준 변호사는 "청구이의의 소(민사집행법 제44조)는 원래 채무는 1000만원이었고 600만원은 이미 갚았으니, 1293만원 집행은 부당하다고 법원에 다시 판단을 구하는 절차"라고 설명했다.
다만 소송이 진행되는 중에도 압류는 계속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한 '집행정지' 신청이 반드시 함께 이뤄져야 한다. 신 변호사는 "청구이의의 소와 집행정지 신청은 한 세트"라며 "이를 통해 추가적인 재산 피해를 막고 통장 압류를 풀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돈 보냈다는 통장 기록, 판 뒤집을 결정적 증거
소송의 열쇠는 단연 증거다. A씨는 B씨에게 1000만원을 주기로 합의한 사실과 600만원을 변제한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법무법인 명륜 오지영 변호사는 “당시의 합의 내용과 입금 내역, 문자나 녹취 등 관련 증거가 중요하게 작용한다”며 입증 책임을 강조했다.
다행히 지급명령은 일반 판결과 달리 ‘기판력(확정된 판결에 대해 다시 다툴 수 없게 하는 힘)’이 없어, 청구이의의 소에서 채권의 존재 자체를 다툴 수 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이 경우 채권자인 B씨가 1293만원 채권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므로 A씨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다수 변호사는 소송과 함께 채권자와의 협상을 병행하라고 조언했다. 법무법인 창세 김정묵 변호사는 “현실적으로는 채권자와 협상을 통해 합의금을 조정하거나 변제계획을 제시해 압류 해제를 유도하는 방법이 가장 실효적”이라고 말했다.
소송을 통해 법적 권리를 확보하면서도, B씨와 직접 대화해 남은 채무 400만원에 대한 변제 계획을 세우고 압류를 푸는 것이 가장 빠른 해결책일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