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설탕 가격 미친 듯 폭등시킨 10조 담합... 형사 처벌은 벌금 2억이 한계?
밀가루·설탕 가격 미친 듯 폭등시킨 10조 담합... 형사 처벌은 벌금 2억이 한계?
검찰, 역사상 유례없는 '초대형 담합' 52명 줄기소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의 밀가루 판매대 모습. /연합뉴스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직장인들의 푸념은 단순한 느낌이 아니었다. 칼국수 한 그릇, 빵 한 조각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때, 그 뒤에는 기업들의 은밀하고 거대한 '검은 손'이 작동하고 있었다.
검찰이 밀가루, 설탕, 전기 설비 등 국민 생활과 직결된 분야에서 무려 10조 원대에 달하는 담합 행위를 적발해 52명을 줄기소했다. 이는 공정거래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초대형 카르텔이다.
하지만 법조계의 시선은 환호보다 우려에 쏠려 있다. 수천억 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이들에게 내려질 형사 처벌이 고작 벌금 몇 억 원에 그칠 수 있다는 법적 한계 때문이다.
밀가루… '빅3'가 정하면 법이었다
"가격 올립시다." 시장점유율 75%를 쥔 메이저 3사가 신호를 보내면, 나머지 4개 사는 군말 없이 따랐다. 2020년부터 약 5년 9개월간 이어진 이 담합으로 밀가루 가격은 최대 42.4%나 폭등했다.
법조계 분석에 따르면, 대한제분, 사조동아원, 삼양사 등 6개 제분사가 물어야 할 행정적 제재인 과징금은 총 5,691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매출액의 10%까지 부과 가능한 기준을 적용했을 때, '빅3' 업체는 각각 약 1,500억 원의 과징금 폭탄을 맞을 수 있다.
하지만 형사 처벌은 초라하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법인이 낼 수 있는 벌금의 상한선은 2억 원에 불과하다. 6조 원에 육박하는 담합 규모 에 비하면 '껌값' 수준이다. 담합을 주도한 대표이사들도 실형보다는 징역 1년~1년 6개월에 집행유예를 선고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법조계의 냉정한 관측이다.
설탕 "이번이 세 번째"... 상습범의 배짱
설탕 업계의 담합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두 차례나 적발됐음에도 CJ제일제당, 삼양사 등 제당 3사는 또다시 뭉쳤다. 이들은 원당 가격이 떨어져도 제품 가격은 천천히, 조금만 내리기로 입을 맞췄고, 그 결과 설탕 가격은 최고 66.7%까지 치솟았다.
세 번째 적발인 만큼 처벌 수위는 다소 높아질 전망이다. 법조계는 반복된 위반 행위를 가중 요소로 보아, 과징금이 최대 4,418억 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업계 1위인 CJ제일제당의 경우 최대 2,400억 원대의 과징금이 예상된다.
형사 재판에서도 구속된 임원들은 실형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이미 대표급 임원 2명을 구속 기소했는데, 법조계는 이들에게 징역 1년 6개월 이상의 실형이 선고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하지만 법인에 대한 벌금형은 여전히 최대 2억 원이라는 법정형의 천장에 가로막혀 있다.
전기… 한전 속인 '그들만의 리그'
효성중공업, HD현대일렉트릭 등 10개 전기업체는 한국전력공사(한전)가 발주하는 입찰에서 7년 6개월 동안 "이번엔 네가 낙찰받아"라며 짜고 쳤다. 이들이 챙긴 부당이득만 최소 1,600억 원이다.
공공기관인 한전을 상대로 한 담합은 국가 재정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힌 중대 범죄다. 이들 10개 사는 계약 금액을 기준으로 산정되는 약 680억 원의 과징금을 나눠 낼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무서운 건 입찰 참가 자격 제한이다. 법적 처벌과 별개로 공공 입찰 참여가 최대 2년간 막힐 수 있어, 기업 활동에 치명적인 타격이 될 수 있다. 법인에 대한 형사 벌금은 업체당 1억~2억 원 선으로 예상된다.
이번 사건의 총 담합 규모는 약 10조 원. 예상되는 과징금 총액은 약 1조 원에 육박한다. 숫자만 보면 어마어마해 보이지만, 기업들이 챙긴 부당이득과 시장 왜곡 피해에 비하면 충분한 징벌이 될지 의문이다.
미국은 담합 기업에 최대 1억 달러(약 1,400억 원)의 벌금을, 캐나다는 무제한의 벌금을 부과한다. 반면 한국은 고작 2억 원이다. 수조 원을 벌고 2억 원을 내는 구조라면, 기업 입장에서 담합은 여전히 남는 장사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