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성범죄 피해자지원센터 관계자가 피해자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지원센터 관계자가 피해자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
디지털 성범죄 피해당했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증거 확보'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지원센터에서 도움받을 수 있어⋯변형된 영상물도 정리 가능
센터 관계자 "피해자 잘못 아니야⋯망설이지 말고 빠르게 대처해야"

디지털 성범죄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대처법을 정리해봤다. /게티이미지코리아⋅그래픽 및 편집=조소혜 디자이너
"네 영상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것 같아"
A씨의 세상이 무너져내렸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술에 취해 모르는 남자에게 모텔로 끌려갔던 2년 전 일이 떠올랐다. 술 탓인지 약물 탓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성폭행을 당했다는 심증만 있었던 밤이었다.
애써 잊고 지냈지만 친구의 소식으로 세 가지가 확실해졌다. 그날 성폭행을 당했고, 동영상도 찍혔으며, 그 영상이 지금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중이라는 것. A씨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변호사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로톡뉴스는 A씨를 위해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산하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지원센터'(이하 지원센터)와 성범죄 피해자들을 위한 변론을 여러 번 경험했던 변호사를 찾아 "A씨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정리해봤다.
전문 기관과 변호사들은 한목소리로 "두렵고 당황스럽겠지만 영상부터 확보하라"고 조언했다.
① 다운로드가 가능한 상태면 영상을 곧장 내려받고 ② 그렇지 않다면 해당 영상이 올라와 있는 곳의 인터넷 주소(URL)와 검색 키워드 등을 기록해둬야 한다고 했다.
만약 불법영상이 공유되고 있는 곳이 폐쇄적인 단체 대화방이라면, 절대로 그 방을 나가서는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신신당부했다.
지원센터 관계자는 로톡뉴스와의 통화에서 "처음에 피해사실을 알게 되면 수치심, 불쾌감, 당황스러움을 느끼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영상을 지우거나 그 영상이 공유되고 있는 단톡방을 나가는 경우가 정말 정말 많다"며 "절대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만일 본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들어가 있는 단체 대화방 등에서 해당 영상이 유포되고 있다면 그 사람을 통해 영상을 확보하고 (그 사람에게) "해당 대화방에서 나가지 말아달라"고 요청해둬야 한다고 덧붙였다.

영상을 확보하면 곧바로 지원센터를 방문하라고 전문가들은 추천했다.
❶ 증거물을 안전하게 확보하는 동시에 ❷ 이미 확보한 증거물을 인터넷에서 지우는데 용이한 시스템을 지원센터가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불법 영상물을 주고받는 범죄자들은 단속망을 피하기 위해 원본 영상을 가공하거나 편집한다. 원본 그대로를 공유하면 금방 적발되거나 업로드한 영상이 쉽게 차단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범죄를 위해 원본 영상의 좌우를 바꾸거나, 자막을 입히거나, 워터마크를 삽입한다.
지원센터를 통해서는 이런 '변형된 불법영상물'을 한 번에 정리할 수 있다. 지원센터 관계자는 "센터 시스템은 피해촬영물 삭제 지원을 위해 개발된 것으로 영상 속 특징점을 찾아서 검색한다"며 "(변형이 가해진) 영상도 다 추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지원센터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와 업무 협약을 맺고 있는 덕에 개별 인터넷 주소(URL) 단위로 차단⋅삭제 작업을 하는 대신 한꺼번에 심의를 신청한다. 하나를 지우면 다른 하나가 생겨나는 식으로 유포되는 디지털 성범죄 특성에 대응하기 용이한 구조다.
민고은 변호사는 "피해 촬영물은 유포 시점부터 24시간이 지나면 영상이 퍼지는 속도가 빨라진다"며 "대부분의 피해자가 유포 시점에서 시간이 많이 지난 뒤 알게 되기 때문에 빠른 대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원센터가 갖고 있는 또 다른 장점은 피해자 지원 과정 전부를 비공개를 원칙 삼아 진행하며 철저하게 비밀을 보장한다. 또 피해자가 제출한 영상이나 사진 파일은 안전한 저장소에 보관한다.
이때 확보한 자료를 수사기관에 제출할 때도 지원센터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법률 전문가들은 A씨와 같은 상황에 처한 피해자에게 희망을 잃지 않기를 당부했다.
민고은 변호사는 "성범죄 피해자도 일반 피해자와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피해사실을 알리는 데 주저하지 말라는 의미에서다. "디지털 성범죄는 빠른 신고가 중요한 만큼 성범죄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사실을 알리는 데까지 망설이거나 고민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지원센터 관계자 역시 "이번 사례는 그나마 희망적인 것이 사례자가 '촬영물이 인터넷에 있다'고 말한 것"이라며 "인터넷에 올라가 있다면 피해촬영물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정황 증거라도 있으면 빠르게 검색 키워드, URL을 찾아 영상까지 확보한 후에 바로 지원에 착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취재 과정에서 조언을 준 전문가와 변호사는 고통을 겪고 있는 피해자에게 이 말을 꼭 전해달라고 당부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는 내가 알지 못한 상태에서 발생합니다. 주의했다고, 조심했다고 피해를 막을 수 없습니다. 누구나 당할 수 있다는 말이죠. 그러니 자책하거나 망설이지 마세요.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를 만나 피해사실을 알리고 최대한 빠르게 움직이면 문제에 대처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