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율 40%인데 그들은 어떻게 합법적인 '부의 대물림'을 해왔나⋯영국 귀족의 힘, 신탁
상속세율 40%인데 그들은 어떻게 합법적인 '부의 대물림'을 해왔나⋯영국 귀족의 힘, 신탁

영국을 배경으로 귀족 사교계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브리저튼'은 넷플릭스 역대 시청 기록 1위를 달성했다. /넷플릭스 미디어센터 제공
최근 영국 왕실의 이야기를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더 크라운'이 미국 골든글로브 TV 시리즈 부분에서 작품상, 여우주연상, 남우주연상을 휩쓸었다. 비슷하게 영국을 배경으로 귀족 사교계 이야기를 담은 '브리저튼'은 넷플릭스 역대 시청 기록 1위를 달성했다. 연이은 드라마 흥행으로 영국 왕실과 귀족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어느 때 보다 높다.
'푸른피'(blue blood)'라고 일컫는 영국의 상류층 귀족 가문. 그들은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재산을 바탕으로 사회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재산을 '올드머니(old money)'로 부른다. 2010년 기준 영국 국토의 3분의 1은 왕실과 귀족이 소유하고 있다고 알려졌을 정도니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영국 상류층의 재력은 여전히 막강하다고 볼 수 있다.
일례로 2016년 당시 25세에 불과한 휴 그로스베너가 아버지의 사망으로 약 13조원 이상을 상속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러한 '올드머니'는 다시 한번 세간의 큰 주목을 받았다. 일반 회사원이었던 휴 그로스베너는 그 상속으로 단번에 세계 최연소 400대 부자에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하나 이상한 점은 영국은 부모로부터의 상속의 경우 40%의 상속세율을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고 50%의 상속세율을 적용하는 우리나라(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26조)처럼 높은 상속세율을 부과하고 있는 나라다. 만일 영국 귀족들이 3대에 걸쳐 40%의 상속세를 낸다면 상속재산은 약 1/5로 줄어든다. 그런데도 그로스베너 가문을 비롯한 영국 귀족들은 부의 변화가 크게 없이 대물림해 왔다.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그 비밀은 바로 '신탁'에 있다.
아무리 뛰어난 투자 수완을 가졌더라도, 수대에 걸쳐 엄청난 상속세를 낸다면 재산을 유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영국 귀족 가문의 재산들이 안전하게 대물림될 수 있었던 것은 '신탁'제도를 활용하였기 때문이다. 영국은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신탁재산 자체에 대해서는 상속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신탁재산으로부터 발생하는 임대료 등 수익에만 과세를 하고 있기에 신탁제도를 이용하면 처음부터 엄청난 상속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것이고, 이를 이용해 영국의 귀족들은 안전하게 가문의 자산을 보전한 것이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9조 제1항은 피상속인이 신탁한 재산을 상속재산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신탁재산 자체가 상속세의 부과 대상에 해당하여, 영국과 같이 신탁을 활용한 자산 승계는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경쟁력 있는 기업들이 승계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가업승계를 위한 지원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하지만 영국과 우리나라의 상속세에 관한 규정의 차이는 근본적으로 거액의 자산을 아무런 세금 없이 상속받는 것을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정도가 달라서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영국 왕실이 국민에게 큰 존경과 사랑을 받는 바탕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왕실의 남성 모두가 직접 군에서 복무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한 역사가 존재한다. 우리나라도 사회 지도층이 윤리적 의무와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인식이 더욱 보편화 된다면, 영국과 같이 신탁이라는 합법적인 방법을 통해 수대에 걸쳐 자산을 상속받는 명문가가 등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