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떠밀려 나온 입장문? 여가부, 계속 침묵했다면 국가배상책임 져야 했을 수 있다
등 떠밀려 나온 입장문? 여가부, 계속 침묵했다면 국가배상책임 져야 했을 수 있다
박 전 시장 숨진 채 발견된 후 피해자 '2차 가해' 난무했지만⋯논란 4일 만에야 뒤늦게 입장문 낸 여가부
비판 여론에 등 떠밀려 나온 대응이었을까⋯ 변호사들 "단순히 그뿐 아니다"
"법적으로 여가부는 '2차 피해' 최소화할 의무 있어, 입장문도 안 냈다면 국가배상책임"

여성가족부는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성추행 등의 혐의로 고소한 고소인이 '2차 피해'를 받는 4일 동안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지난 14일 뒤늦게 입장문을 냈다. /여가부 트위터⋅셔터스톡, 그래픽 편집=-이지현 디자이너
여성가족부는 특별한 책무가 하나 있다. 누군가를 성범죄로 고소한 사람이 '2차 피해'를 받지 않도록 피해자를 보호⋅지원할 의무다. 하지만 여가부는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성추행한 혐의로 고소한 피해자가 '신상털이' 등 전형적인 2차 피해를 받는 동안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기자들이 "이에 대해 여가부 입장이 없느냐"고 여러 차례 물었지만, 그간 "입장 표명할 게 없다"고 해왔다. 그러던 여가부가 4일 만에 뒤늦게 입장을 냈다. 지난 14일 "고소인은 '2차 피해'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대책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입장을 내놓을 계획이 없다"는 소극적인 태도였으나, "주무 부처가 제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나온 입장문이었다. 이런 대응을 두고 "여가부가 여론에 등 떠밀려 입장문을 발표한 것"이라는 관측이 널리 퍼졌다.
그러나 변호사들은 조금 다르게 봤다. "단순히 여론에 밀린 것뿐만이 아니다"고 분석했다. 변호사들은 "여가부가 계속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건 법 위반 소지가 짙었다"며 "대응이 늦어질수록 국가배상책임까지 인정될 수 있는 사안이었다"고 밝혔다.
근거 법률은 여성폭력방지법이다. 이 법은 여성에 대한 폭력 피해자의 '2차 피해' 개념을 명시한 법안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지난 2018년 '미투(Me too)' 운동이 한창일 때 "2차 피해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법률 제정 움직임으로 이어졌고,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발효됐다.
법률 자문

이 법에서 말하는 '2차 피해'의 범위는 광범위하다. "피해자가 수사 등 사건처리 및 회복의 전 과정에서 입는 정신적 피해" 등이고, 특히 제 18조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2차 피해가 발생한 경우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을 두고 있다.
법률사무소 가치의 방호근 변호사는 "이 법에 따라 국가 및 지자체는 해당 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가 발생한다"며 "이번 사건의 고소인뿐 아니라 누구든지 2차 피해 최소화 조치를 (주무 부처인 여가부 등) 국가에 요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요구가 있었는데도, 여가부 등이 대응에 나서지 않는다면 그땐 "국가나 지자체가 국가배상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방 변호사는 밝혔다. 공무원의 불법 행위로 피해자의 '2차 피해' 등이 증대한 경우다. 이때 위자료 기준은 국가배상법 시행령상 '1000만원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정해지게 된다.
다만 "여성폭력방지법이 아닌 형법, 정보통신망법 등으로 가해자들을 직접 처벌해야 한다"고 본 변호사도 있었다. 법무법인 최선의 정다은 변호사는 "형법상 모욕죄, 망법상 명예훼손죄 등으로 가해자 처벌이 가능할 것 같다"고 밝혔다.
하지만 해당 범죄가 적용되려면 피해자가 누구인지 명확해야 한다. '피해자의 특정성' 이다. 현재 피해자는 '박 전 시장의 전직 비서' 외에 구체적인 실명 등은 비공개 상태인데, 그래도 이 죄가 성립할 수 있을까. 정 변호사는 "성립한다고 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실명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주위 사정과 종합하여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경우"라며 정 변호사는 "현재 피해자의 직업, 직위, 성별, 연령 등이 계속해서 알려지고 있는 점에 비추어 볼 때 관련된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판례가 있다"고 했다.
실제 지난 2008년 헌법재판소는 인터넷에서 피해자의 실명이 아닌 아이디(ID)를 겨냥해 모욕한 사건에서 "모욕죄 등의 죄책을 면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더라도, 표현 내용을 주위 사정과 종합해 볼 때 특정인을 지목하는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는 경우"라고 밝혔다.
지난 2018년 대법원도 비슷한 유형의 민사사건에서 "명예훼손에 의한 불법행위가 성립한다"며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수도권 여당 C의원실 유부남 보좌관' 등으로 익명 처리를 하긴 했지만 직업과 소속, 일한 기간 등의 사정이 함께 특정된 사건이었다.
당시 대법원은 "실명을 명시하지 않거나 이니셜만 사용한 경우라도, 피해자를 아는 사람이나 주변 사람이 피해자를 지목하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라면 피해자가 특정되었다고 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