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업지시서 99% 똑같은데…공공기관의 '꼼수 재입찰', 막을 수 있을까?
과업지시서 99% 똑같은데…공공기관의 '꼼수 재입찰', 막을 수 있을까?
사업 유찰되자 과업 늘리고 예산 깎아 재공고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공공기관 입찰에 참여한 한 중소기업 A사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야심차게 준비한 사업에 단독으로 응찰했지만 유찰됐다. 그런데 얼마 뒤, 발주기관은 사실상 똑같은 사업을 '신규 사업'이라며 다시 공고했다.
문제는 조건이 더 나빠졌다는 점이다.
사업 기간과 과업은 늘었는데, 예산은 오히려 7,000만원에서 6,700만원으로 줄었다. A사는 사실상 재입찰이면서 조건을 더 나쁘게 바꾸려는 '꼼수'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최초 공고를 믿고 제안서 제작 등에 상당한 비용과 시간을 쏟아부은 A사. 이런 부당한 재공고에 법적으로 대응할 방법은 없을까?
과업지시서 99% 똑같은데…'신규 사업' 이름표, 법적 효력 있나
A사가 확인한 두 사업의 과업지시서는 99% 유사했다. 사업의 목적과 대상, 기본적인 업무 내용도 거의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발주기관이 붙인 '신규 사업'이라는 이름표는 법적으로 효력이 있을까.
변호사들은 명칭이 아니라 '실질적 동일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법무법인 유수 유수빈 변호사는 "핵심은 사업 이름을 ‘신규사업’으로 바꿨다는 것이 아니라, 실제 내용이 얼마나 달라졌느냐"라며 "최초 사업과 후속 사업의 과업지시서가 약 99% 유사하고, 사업 목적·대상·운영방식도 대부분 동일하다면 실질적으로 같은 사업이라는 주장을 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법률사무소 도결 이환진 변호사도 "사업 목적, 대상, 핵심 과업, 수행 방식이 거의 같다면 단순히 이름을 바꿨다고 별개 사업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실질적으로는 기존 사업의 변형으로 볼 여지가 크다"고 봤다.
이러한 행위는 법령이 정한 재입찰 절차를 회피하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다.
법무법인(유) 에스제이파트너스 백종빈 변호사는 "과업지시서 내용이 99% 유사함에도 명칭만 ‘신규사업’으로 발주하는 행위는 법정 절차를 부당하게 회피·우회하려는 편법 발주로 판단될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일은 5개월 더, 예산 300만원 삭감까지
더 큰 문제는 예산이다. 새 공고는 사업 기간이 약 5개월 연장되고 중간성과공유회, 동아리 활동비 대납·정산 업무까지 추가됐는데도 예산은 오히려 300만원이 깎였다.
변호사들은 이러한 예산 산정에 합리성이 결여됐다고 분석했다. 국가계약법령은 예정가격을 산정할 때 이행 기간, 계약 조건 등 제반 여건을 참작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종빈 변호사는 "업무가 추가되었음에도 예산을 감액한 것은 예정가격 작성기준 및 원가계산 준칙 위반 소지가 크다"고 짚었다.
법무법인 도모 김강희 변호사는 "총액 6,700만 원만 기준으로 수익성을 판단한 산정은 다툴 여지가 있다"며 실제 업체의 용역 대가와 업체가 대신 집행하는 활동비를 구분해서 원가를 계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신뢰 침해' 당한 업체,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그렇다면 최초 공고를 믿고 시간과 비용을 투입한 A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변호사들은 법적 대응에 앞서 관련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조언했다. 유수빈 변호사는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최초·후속 사업의 원가계산서, 유찰 사유, 신규사업 지정 내부결재문서 등을 먼저 확보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후에는 다양한 통로를 통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백종빈 변호사는 "국가계약 분쟁조정위원회 신청, 상급 감사기관 민원 제기, 불공정 발주 이의신청 및 신뢰이익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를 검토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다만 법무법인 우선 조상우 변호사는 "이의신청이나 분쟁조정 신청은 사유를 안 날로부터 비교적 짧은 기간 내에 제기해야 한다"며 "위법성 검토에 시간을 쓰는 사이 통로가 먼저 닫힐 수 있어 순서 설계가 필요하다"고 전략적 접근을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