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흥행하자⋯가난을 '관광 상품화' 하겠다는 서울시, 속수무책인 주민들
기생충 흥행하자⋯가난을 '관광 상품화' 하겠다는 서울시, 속수무책인 주민들
서울시, 기생충 영화 속 '반지하' 동네 등을 묶은 투어 프로그램 개발 계획
"가난을 상품화 한다"는 주민 비난 거세지만⋯
변호사들 "주민이 지자체에 대응할 실질적인 방법 없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4관왕이 된 영화 '기생충'이 촬영된 서울 시내 곳곳에 국내외 팬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15일 영화 촬영지인 곳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한 시민. /AP연합뉴스
땅속에 반쯤 잠겨버린 어둠은 형광등 불빛으로, 축축한 습기로 곰팡이가 번진 벽과 바닥은 보일러를 틀어 지핀 열로 채운다. 집 안을 들여다보는 낯선 이의 시선이 싫어 창문은 한더위에도 열지 못한다. 그렇게 반지하는 1년 내내 가난을 밀어낸다.
영화 '기생충'이 흥행을 하면서 '반지하' 주택이 주목받고 있다. 영화에선 주인공 가족의 신분 상승의 꿈과 반지하에서의 가난하고 고단한 삶이 적나라하게 대비됐다.
영화를 통한 반지하에 대한 관심은 '관광'으로 흘러가고 있다. 서울시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지자체)가 나서서 이른바 '기생충 투어'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투어에 영화 속 반지하 동네로 그려진 서울 마포구 아현1동 등이 포함되면서 일부 주민 사이에선 자신들의 생활공간이 '가난을 전시하는 구경거리'가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광객으로 인해 사생활 침해 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도 있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지역 관광 프로그램. 해당 지역 주민의 반대가 있다면 어떻게 될까. 변호사와 함께 알아봤다.
사안을 검토한 변호사들은 주민이 지자체를 상대로 대응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이론적으로는 몇 가지 방법이 있지만, 실무적으론 해결책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유스트의 송오근 변호사는 "지자체를 상대로 관광프로그램을 만들지 말 것을 청구하는 가처분을 시도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가처분은 법원에 어떤 행위를 임시로 해달라는 요구를 말한다. 즉, 주민들이 지자체가 '관광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을 멈춰달라고 법원에 요청하는 것이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4관왕이 된 영화 '기생충'이 촬영된 서울 시내 곳곳에 국내외팬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영화 촬영지인 서울 마포구 아현동 일대, 마포구 아현동의 극 중 '우리슈퍼', 종로구 자하문터널 앞 계단, 동작구의 한 피자가게. /연합뉴스
다만 송 변호사는 "주민들의 가처분 시도가 실제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요청이 법원에서 인정받으려면 '관광프로그램' 때문에 ①주민의 손해가 현저하거나 ②급박한 위험 등이 존재한다는 점이 입증돼야 한다.
하지만 법원이 관광객이 많이 와서 겪는 주민의 불편함을 ①과 ②의 수준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작다는 취지다.
'경기남부법률사무소'의 김정훈 변호사도 "관광지를 만드는 것 자체에 '처분성'이 인정된다면 주민들이 서울시와 소송을 통해 다퉈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선례가 없어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처분이란 행정기관 국민의 권리⋅의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공권력 행사를 말한다. 법률상 처분성이 인정돼야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데, 이번 사안에는 처분성이 없어서 소송 자체가 어렵다는 의미다.
지자체의 관광프로그램을 막진 못하더라도, 관광객 때문에 일상생활에 불편을 겪는다면 지자체에 손해배상 청구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송오근 변호사는 이 경우에도 주민들이 취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송 변호사는 "관광객으로 인해 손해를 입은 부분까지 지자체에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며 "관광객이 (해당 지역을) 방문하는 것 자체가 불법행위는 아니기 때문에 이런 행위만 갖고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주민들이 관광객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관광객이 불법적인 행위를 해서 손해가 발생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영화 촬영지인 마포구 아현1동을 관광하는 것이 불법이고, 이런 불법을 저질러 주민이 손해를 입었다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아현1동을 관광하는 것이 불법은 아니다.
김정훈 변호사도 "(주민이) 국가로부터 금전적 배상을 받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고 했다.
주민들에게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단, 조건이 있다. 지자체가 관광지를 만들기 위해 '조례'를 제정한다면 가능하다. 조례란 지자체가 하는 업무에 대해 법으로 정해놓는 것을 말한다.
'변호사 박창규 법률사무소'의 박창규 변호사는 "주민은 조례에 대해 지방자치법에 따라 지자체의 장을 상대로 조례를 고치거나 없앨 것을 청구할 수 있다"며 "감사청구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감사청구는 주민들이 지자체의 위법하거나 부당한 행정 등에 대해 상급 기관에 청구하는 제도다.
또한 지역 주민들이 이용하는 도로 등 공공시설이 몰려든 관광객들 때문에 이용하지 못한다면 이에 대해 손해배상청구를 생각해볼 수 있다. 지난 2006년 대법원은 지역 주민이 생활과 밀접한 공공시설물에 대해서는 특정한 권리(이른바 '고양된 일반사용권')가 인정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단, 구체적인 사안에서 이를 인정한 것은 아니다.
박 변호사는 "시설물이 있는 지역 주민이라는 사정만으로 이 권리가 인정될 수 없다"며 "(관광) 거리 조성을 위해 주민들과 최대한 협의를 거쳐 자치법이 제정되는 것이 지자체와 주민들의 이익을 균형 있게 맞출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법률자문

(왼쪽부터) '경기남부법률사무소'의 김정훈 변호사, '변호사 박창규 법률사무소'의 박창규 변호사, '법무법인 유스트'의 송오근 변호사. /로톡D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