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한복?…경복궁 '시스루 한복', 법으로 막을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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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한복?…경복궁 '시스루 한복', 법으로 막을 수 없는 이유

2025. 09. 12 09:21 작성
손수형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sh.son@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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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한복 가릴 법이 없다

2024년 5월 6일, 경복궁을 찾은 관광객들이 시간을 보내는 모습. /연합뉴스

경복궁 돌담길을 따라 화려한 빛깔의 물결이 넘실댄다.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저마다 한복을 차려입고 고궁의 정취를 만끽하는 풍경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속이 비치는 시스루 저고리, 서양 드레스처럼 부풀린 치마, 옷고름 대신 달린 리본. 과연 이 옷을 한복이라 부를 수 있을까?


한복 무료관람 정책 덕에 대여점은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정작 우리 문화의 정체성이 흔들린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논란이 뜨겁지만, 정작 법의 세계에선 진짜 한복을 가려낼 기준조차 없는 실정이다.


법전에 없는 한복의 정의

놀랍게도, 현행법 어디에도 한복의 형태나 요건을 명확히 정의한 규정은 없다. '전통문화산업 진흥법'에서 한복을 '우리 민족의 고유한 의생활'의 예시로 언급할 뿐, "저고리와 치마(또는 바지)로 구성된다"와 같은 최소한의 정의조차 찾아볼 수 없다.


고궁 무료입장의 근거가 되는 국가유산청의 지침 역시 법적 강제성이 없는 행정기관 내부의 사무처리준칙에 불과하다. 법률상 한복의 정의가 없으니, 특정 의상을 "한복이 아니므로 무료입장 대상이 아니다"라고 막을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는 셈이다.


이것이 바로 국가유산청이 "국적 불명 한복을 개선하겠다"고 공언하고도 실제 단속에 나서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다.


우리 모두의 것…저작권·디자인권 보호의 한계

그렇다면 특정 한복 디자인을 저작권이나 디자인권으로 등록해 보호할 수는 없을까? 이 또한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저작권법의 높은 벽

우리 대법원은 한복 디자인을 저작권법상 '응용미술저작물'로 인정하는 데 매우 인색하다. 이미 2000년, "생활한복은 저작권법의 보호대상이 되는 저작물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결한 바 있다(2000도79 판결).


전통 복식이라는 문화적 유산에 기반한 디자인은 특정 개인의 독창성으로 보기 어렵다는 취지다. 즉, 전통 한복의 제작 기법이나 표현 형식은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공의 영역에 가깝다고 본다.


디자인보호법의 한계

완전히 새로운 창작 퓨전 한복이라면 디자인으로 등록해 보호받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전통 한복의 형태는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어 새로운 창작물로 인정받기 어렵다.


결국 전통 한복은 우리 민족 모두의 문화유산이기에, 역설적으로 특정 개인이 독점적 권리를 주장하며 법적 보호를 받기는 힘든 구조다.


'국적불명 한복' 규제, 법적으로 가능한가?

'시스루 저고리'나 '드레스형 치마'를 입은 관광객의 무료입장을 막을 수 있을까? 현 상황에서는 어렵다.


앞서 봤듯이 법적 정의가 부재하고, 국가유산청의 지침은 강제성이 없는 권고 수준에 불과하다. 한복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취지는 공감대를 얻고 있지만, 개인의 옷 입을 자유라는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도 있어 강력한 규제는 쉽지 않다.


문화계와 법조계에서는 법적 규제보다는 ▲전통문화산업 진흥법 등에 한복의 최소한의 정의를 신설하고 ▲고궁 등 특정 장소에 한해 명확한 무료입장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며 ▲전통 한복 착용자에게 추가 혜택을 주는 인센티브 방식 등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중국의 '한복 공정' 주장이 노골화되는 지금, 정체불명 의상이 한복의 이미지를 잠식하는 현상을 단순한 퓨전이나 놀이 문화로만 치부하기는 어렵다. 법적 공백 속에서 우리 문화의 원형을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급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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