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근 교수 에세이 (48)] 무죄 판결 선고된 날

글자 크기 설정

미리보기

더 이상 어렵지 않은 법을 위한 인터넷 신문 로톡뉴스를 만나보세요. 법 전문가들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생생히 전달합니다.

[정형근 교수 에세이 (48)] 무죄 판결 선고된 날

2022. 03. 21 14:29 작성
정형근 교수의 썸네일 이미지
hkjung@khu.ac.kr

글자 크기 설정

미리보기

더 이상 어렵지 않은 법을 위한 인터넷 신문 로톡뉴스를 만나보세요. 법 전문가들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생생히 전달합니다.

사실 형사사건의 수임료 중에서 성공보수를 받는 것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셔터스톡

피고인은 대학교 2학년이었다.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학기에 사건이 터졌다고 하였다. 그는 부끄러운 죄명으로 구속된 상태였다. 그의 부모는 지역유지로 재력도 좋고 명성도 있었다. 하나 있던 아들이 구속되었으니 그 충격은 말할 수 없었다. 누구에게 하소연하기도 어려운 죄명이지만, 엄청 억울하다고 했다. 날마다 피고인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교대로 사무실을 찾아왔다. 어제와 오늘 사이에 변한 건 아무것도 없음에도 매일 사무실에 와서 다른 일로 바쁜 나를 붙들었다. 그러면 어제 했던 말을 똑같이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직접 방문하지 않을 때는 전화를 걸어서 구속된 아들이 얼마나 착하고 심성이 고운 아이였음을 강조하였다. 아들이 저지른 것으로 되어 있는 사건의 결과에 대해서는 어떤 고려도 없었다. 아들을 구속시킨 수사기관에 대한 원망에서부터 신속하게 재판 일정이 잡히지 않는 것까지 불평했다. 교도소로 피고인 접견을 가면 젊은 청년은 범죄사실을 부인하면서 억울하다고만 했다. 억울하였으니까 변호사 선임했으려니 생각하면서 그의 부모의 성화도 잘 참고 지내자고 다짐했다.

피고인과 고소인이 경찰에서부터 검사에게 범행사실과 관련하여 진술하였던 내용을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그리고 얼마 후 잡힌 재판기일에 법정에서 피고인이 공소장에 기재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음을 주장하였다. 검사가 신청한 증인이 나와 법정에서 증언을 하였다. 나는 피고인이 무죄라는 내용이라는 변론요지서를 작성하여 제출하였다. 분량이 150면가량이었다. 이제껏 수임하였던 형사사건의 변론요지서 중에서 분량도 가장 많고 정성도 많이 들인 거 같았다. 법원에 제출하기 전에 피고인의 부모에게 읽어보라고 연락했더니, 마치 출입문에서 대기하고 있듯이 금방 찾아와서 만족스럽다고 했다. 판결 선고일 하루 전날 접견한 피고인은 아무 말 없이 눈물을 흘렸다. 접견을 마치고 사무실로 오니 그의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의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다음 날 판결이 선고되었다.

"피고인은 무죄!"

그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피고인의 부모에게 전화를 했다. 연락이 안 되었다. 날마다 사무실을 찾아오던 분들이 판결 선고가 나자 자취를 감춘 것이다. 그날뿐만 아니라 그다음 날도 연락이 안 되었다. 보통 무죄판결이 나면 피고인이나 그 가족들에게 고맙다는 말은 듣는데, 그 사건은 달랐다. 성공보수를 달라고 할까 봐 연락을 끊은 것 같았다. 실제로 그간 피고인의 부모에게 시달렸고, 관심을 쏟아 변론하였던 사건이라서 약정한 성공보수는 받고 싶었다. 그렇지만 전화를 받지를 않으니 대책이 없었다. 주변에서는 액수와 상관없이 '약정금 청구의 소'를 제기하여 수임료를 철저하게 받아 내는 변호사도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의뢰인을 상대로 돈을 달라는 재판을 해본 적이 없다. 그 때문에 성공보수 약정을 했더라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풍조가 생겨났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무죄판결이 나자 검사는 당연히 항소를 하였다. 그 사건이 항소된 것을 확인하고 며칠이 지났는데, 피고인이 사무실에 나타났다. 항소심에서 재판을 하려니까 사건 기록을 달라고 하였다. 더 이상 그 사건은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메모지 한 장까지 전부 기록 봉투에 넣어서 건네주었다. 그래도 재판 결과가 궁금하여 확인을 해보았더니, 항소심에 이어 대법원까지도 무죄가 유지되었다.

그 후 법조인들만 모이는 향우회에 나갔더니, 법원에 계시던 선배가 여러 사람을 상대로 큰 소리로 말하였다.

"우리 형근이 동생이 어려운 형사사건 변론을 잘해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나는 그 선배에게 어떻게 그 사실을 아시냐고 물었더니, 그 형사사건의 재판을 맡았던 부장판사가 말해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성공보수는 잘 받았느냐고 물었다. 뭐라고 말씀드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좋은 경험을 쌓게 되었던 사건이었다고만 대답했다.

사실 형사사건의 수임료 중에서 성공보수를 받는 것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착수금 속에는 무죄판결과 같은 좋은 결과를 내는 것까지 포함된 것이 아니냐, 그런데 별도로 좋은 결과에 대한 대가로 성공보수를 받는 것이 옳은 것이냐 지적도 있었다. 심지어 어떤 민법 교수는 나에게 변호사의 수임계약은 민법상 위임에 해당되고, 위임계약은 원칙적으로 무료임에도 변호사들은 수임료를 받는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교수님은 월급을 받지 않고 학교에서 강의하고 학생지도를 하겠느냐?"고 대꾸한 적이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에 상고법원 설치, 퇴직한 대법관들의 변호사 자격등록 문제 등을 둘러싸고 대한변호사협회는 대법원과 대립하였다. 그러던 차에 대법원은 2015년 형사사건에 관한 성공보수약정이 무효라는 판결을 하였다. 해방 이후 변호사법에 명문의 규정이 없었음에도 변호사의 수임료는 착수금과 성공보수로 약정하고 지급되었다. IMF 외환위기 이후에는 대한변협도 변호사들의 수임료 약정에 대하여 규제할 권한도 없어졌다. 그 때문에 변호사의 수임료는 전적으로 의뢰인과 변호사 사이의 계약으로 정해지게 되었다.

그런데 대법원은 2015. 7. 23. 형사사건에서의 성공보수약정은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배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대법원 2015. 7. 23. 선고 2015다200111 전원합의체 판결 [부당이득금])고 판결했다. 형사사건의 성공보수 약정은 수사·재판의 결과를 금전적인 대가와 결부시킴으로써, 기본적 인권의 옹호와 사회정의의 실현을 사명으로 하는 변호사 직무의 공공성을 저해하고, 의뢰인과 일반 국민의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를 현저히 떨어뜨릴 위험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형사사건의 성공보수 계약을 하더라도 무효라고 하였다.

전원합의체 판결로 내린 결론이었는데(주심 권순일 대법관), 소수의견을 제시한 대법관이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은 상당히 의아했다. 대법원이 대한변협과 대립상태에 있었던 상황에서 변호사업계에 큰 타격을 주기 위하여 내린 판결이라는 지적도 많았다. 무슨 원인으로 그런 판결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형사사건의 성공보수 약정이 이뤄지고 있다. 저런 판결을 했던 대법관들은 퇴직하여 변호사 개업을 한 후에 형사사건 성공보수 약정을 하지 않고 있는지 궁금하다. 아무튼 대법원 판결이 현실에서 무시되고 있는 이례적인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다만, 약정한 성공보수를 의뢰인이 지급하지 않을 때 법원에 재판으로 청구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의뢰인이 성공보수를 지급한 후에는 위 판결을 근거로 다시 되돌려 달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러니 변호사와 의뢰인 간에 형사사건 성공보수 약정을 하고, 사건이 잘 풀렸을 때는 원만히 성공보수를 주고받을 수 있다.

나만 모르는 일상 법률 상식, 매일 아침 배달해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