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문혁 교수의 '모르면 후회할 법 이야기'(7)] 권리자들을 위한 알람 '소멸시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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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문혁 교수의 '모르면 후회할 법 이야기'(7)] 권리자들을 위한 알람 '소멸시효'

2020. 03. 02 15:52 작성
호문혁 교수의 썸네일 이미지
homoo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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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시효 제도가 시효가 완성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가 의무를 면탈하라고 만든 제도는 아니라, 권리자들에게 잠을 자더라도 알람을 켜놓고 자라고 경고하려는 제도이다. /게티이미지코리아

편집자 주

원로법학자 호문혁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가 시민이 알아야 할 기초적인 법 이야기를 재미있는 에세이 형식으로 연재한다. 호문혁 교수는 사법정책연구원장,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초대 이사장 등을 지내고 저서 「민사소송법」으로 잘 알려진 대표적인 민사법학자다.


누구나 한 번쯤 "시효 지났다"는 말을 하고 듣고 했을 것이다. 친구에게 "아이스크림 사줄까?" 했는데, 싫다고 했다가 잠시 뒤에 "그래, 사줘!" 하면 "시효 지났어!" 하며 오리발을 내밀기가 일쑤였다. 이 경우는 장난치면서 주고받은 이야기이니 법적으로는 아무 의미 없지만, 정작 일상생활에서는 시효 제도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수가 있다.


오래전부터 확립된 법 원칙으로 "권리 위에서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가 있다. 이 원칙은 아마도 2000년 정도의 역사를 갖고 있을 것이다. 우리 법체계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로마법에서부터 "법은 깨어있는 자를 위해서 만들었고, 잠든 자를 위해서 만들지 않았다"는 법리가 등장한다. 권리자가 자기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기간 행사하지 않아서 이제는 더 이상 행사하지 않겠다는 믿음을 줄 정도가 되면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없게 된다는 원칙이다.


이러한 법리에 따라서 우리 민법도 권리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음에도 일정한 기간이 지나도록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는 규정을 두었다. 그 기간은 권리에 따라 다양하다. 차용금이나 임차보증금 반환채권 같은 일반적인 채권은 10년이고, 전세권과 지역권 같은 재산권은 소멸시효가 20년이다. 회사나 개인상인 등의 상행위로 인한 채권은 5년이 원칙이다. 이자나 급료 등 1년 이내의 기간으로 정한 채권과 의사의 치료나 약사의 조제에 관한 채권⋅변호사⋅변리사⋅공인회계사 등의 직무에 관한 채권, 상인이 판매한 물건의 대금채권 등은 3년이다. 시효기간이 1년인 채권도 있다. 여관의 숙박료나 음식점의 음식값, 학생의 수업료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처럼 시효기간이 짧은 채권이라도 법원에서 판결을 받아두면 시효기간이 10년으로 늘어난다.


만일에 돈 꿔준 채권자가 이행기를 지나 9년 동안 가만히 있다가 뒤늦게 나타나 갚으라고 청구하면 어떻게 될까? 이때는 아직 10년의 시효기간이 지나기 전에 권리자가 잠에서 깨어났으므로 소멸시효가 중단된다.


그렇다면 또 이후 남은 1년간 권리를 행사하지 않으면 10년을 채워서 소멸시효가 완성하는가? 아니다. 일단 시효가 중단되면 시효기간은 새로 시작되어 그때부터 10년이 지나야 시효가 완성한다. 그래서 은행과 같은 금융기관에서 채무자를 상대로 승소 판결을 받고는 채권을 잃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10년마다 다시 법원에 소를 제기하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채권자가 말이나 내용증명으로 청구를 하면 일단은 시효가 중단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시효를 제대로 중단시키려면 청구 뒤에 소제기나 압류, 가압류, 가처분 등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6개월 이내에 이런 절차를 밟지 않으면 시효중단의 효력이 소멸한다.


다만 온갖 권리 중에서 가장 강력한 권리인 소유권에는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 소유권 위에서 오래 잠을 자도 소유권을 잃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마냥 잠만 자고 있으면 안 된다. 다른 사람이 내 땅을 장기간 차지하고 소유자처럼 행세하면 취득시효로 그 사람이 소유권을 취득하게 되어서 결과적으로 소유권을 잃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권리 위에서 잠시 눈을 붙이는 것은 괜찮을지 모르지만 계속 자다가는 영원히 잠만 자야 하는 수가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다만, 소멸시효 제도는 누군가(의무자)가 이 제도에 눈독을 들여 시효가 완성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가 의무를 면탈하라고 만든 제도는 아니라, 권리자들에게 잠을 자더라도 알람을 켜놓고 자라고 경고하려는 제도다.


끝으로 한 가지.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권리가 당연히 소멸하는 게 아니다. 상대방(의무자)이 시효가 완성되었다고 항변을 할 때에야 (권리자는) 비로소 권리를 행사할 수 없게 된다. 그래도 양심 있는 의무자는 시효가 완성되었더라도 이런 항변 없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까? 남에게 진 신세를 갚지 않으면 다음 생에 그 집에서 소로 태어나, 힘든 일을 도맡아 하고 뼈와 살, 가죽까지 모두 바쳐서 신세를 갚게 된다는 말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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