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방의 선물' 실제 주인공이 15년 억울한 옥살이에도 국가에 배상 한 푼 못 받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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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방의 선물' 실제 주인공이 15년 억울한 옥살이에도 국가에 배상 한 푼 못 받은 이유

2021. 03. 31 19:51 작성2021. 04. 02 16:03 수정
강선민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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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정원섭씨 별세⋯강간·살인범에서 무죄로 풀려나기까지 걸린 39년

2번의 재심, 3번의 국가배상청구, 2번의 위헌 심판청구 거쳤지만

국가는 그의 옥살이를 '보상'은 했지만 '배상'하진 않았다

'춘천 강간·살인 조작사건'으로 억울하게 15년간 옥살이를 한 정원섭씨가 지난 28일 세상을 떠난 가운데, 그가 국가로부터 배상을 받지 못한 이유가 다시 주목받았다. /연합뉴스⋅네이버 영화 캡처⋅편집=조소혜 디자이너

영화 '7번방의 선물'의 실제 주인공인 고(故) 정원섭 목사가 지난 28일 별세했다. '춘천 강간·살인 조작사건'의 피의자로 지목돼 15년간 옥살이를 하고, 어렵사리 이뤄진 재심에서 무죄를 인정받은 지 딱 10년 만이었다.


정씨는 무죄 판결이 나오기까지 무려 39년간 아동강간⋅살인자 누명을 썼다. 하지만 국가는 구금기간 동안 실질적으로 손해를 본 일종의 재산적 피해만 보상(補償)했다. 그가 눈감는 그 순간까지 국가의 잘못에 대해선 배상(賠償)하지 않았다. 정씨가 "배상해 달라"는 말을 늦게 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실제 정씨는 국가가 정한 '요청해야 하는 시한'보다 10일 늦게 소송을 제기하긴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된 건 법원이 소송 도중 갑자기 기준을 바꾸면서 발생한 문제였다.


정씨가 소송을 제기하고 1심에서 승소할 때까지만 해도 '존재하지 않던 규정'을 신설하더니, 그걸 느닷없이 2심에서 적용해서 정씨의 패소를 결정한 것이다.


국가가 앞장서 사건을 조작하고, 15년간 감옥살이를 하게 만들었다

지난 1972년 9월, 춘천경찰서 파출소장의 초등학생 딸이 죽은 채 발견된다. 아이는 성폭행까지 당한 상태였다. 고위직 공무원의 딸이 범죄 피해자가 되자 일대가 발칵 뒤집혔다. 당시 내무부장관은 사건 발생 3일 만에 수사기관에 '시한부 검거령'을 하달했다. 말 그대로 "정해진 기간 내에 무조건 범인을 잡아내라"는 명령이었다. 내무부장관이 수사기관에 준 시간은 불과 열흘뿐이었다.


결국 실적 압박에 시달린 경찰이 무리한 수사를 진행했고, 정씨를 용의자로 특정했다. 정씨는 경찰의 고문에 의한 자백이었다고 주장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범인으로 몰린 지 1년 만에 대법원까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15년여가 흐른 1987년 겨울에야 모범수로 풀려난 정씨. 이후 변호사들은 정씨의 억울함을 풀어주려 재심을 신청했지만 기각됐다.


'춘천 강간·살인 조작사건'으로 억울하게 15년간 옥살이를 한 정원섭씨가 지난 28일 세상을 떠났다. /표창원 인스타그램 캡처
'춘천 강간·살인 조작사건'으로 억울하게 15년간 옥살이를 한 정원섭씨가 지난 28일 세상을 떠났다. /표창원 인스타그램 캡처


무죄 밝힌 뒤 모든 게 순조로울 거라 믿었지만⋯"한 푼도 줄 수 없다" 뒤집은 법원

지난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판단하에 재심이 이뤄졌고 정씨는 드디어 무죄를 인정받았다. 지난 2011년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오면서 피해 보상 절차도 급물살을 탔다.


'재심 무죄'는 "국가의 잘못을 법원이 인정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는 승소가 확실시됐다. 정씨 역시 그 수순을 밟아 지난 2012년 11월 28일 첫 소장을 접수했다. 형사보상 결정이 확정된 후 딱 6개월 10일 만이었다.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제33민사부(재판장 박평균 부장판사)는 예상대로 정씨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가 정씨와 그 가족들에게 인정한 손해배상액만 26억원대였다.


박평균 부장판사는 "정씨는 평온한 일상을 살다가 갑자기 경찰에 연행돼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했다"면서 "극도의 신체적·정신적 고통에 시달렸고, 무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40년 가까이 사회적 냉대와 불이익, 경제적 궁핍을 당했다"고 판시했다.


국가의 잘못으로 무고한 사람에게 큰 피해를 끼쳤으니 마땅히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선언이었다.


그러나 항소심을 맡았던 서울고등법원 제8민사부(재판장 배기열 부장판사)는 이 결과를 뒤집었다. 변론기일이 열리기 딱 일주일 전이었던 2013년 12월 12일에 나온 대법원 판례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대법원은 그간 민법상 손해배상청구 시효에 따라 3년으로 통용됐던 국가배상청구권의 시효를 6개월로 바짝 앞당긴 판례를 내놨다(2013다201844).


항소심 딱 일주일 전에 갑자기 등장한 '6개월' 청구 기준

문제의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국가배상청구 시효 기준은 민법에서 정한대로였다. 불법행위를 안 날로부터 3년 이내에 청구해야 한다는 것(제766조 제1항).


'춘천 강간·살인 조작사건'으로 억울하게 15년간 옥살이를 한 정원섭씨가 지난 28일 세상을 떠난 가운데, 그가 국가로부터 배상을 받지 못한 이유를 정리해봤다. /그래픽=조소혜 디자이너
'춘천 강간·살인 조작사건'으로 억울하게 15년간 옥살이를 한 정원섭씨가 지난 28일 세상을 떠난 가운데, 그가 국가로부터 배상을 받지 못한 이유를 정리해봤다. /그래픽=조소혜 디자이너


이는 대법원이 같은 해 5월과 7월에 각각 내놓은 전원합의체 판결(2012다202819)과 또 다른 국가배상 판결(2013다203529)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법원은 "국가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는 아무리 길어도 민법 제766조 제1항의 단기소멸시효 기간인 3년을 넘으면 안 된다"고만 규정해왔다.


그런데 돌연 이 사건 배상을 앞두고 "6개월 내에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고 규칙을 바꾼 것이다.


당시 대법원이 내놓은 논리를 정리해보면 이러했다.

① 국가가 손해를 끼쳤다면 그 배상책임이 밝혀질 때까지는 시효를 두지 않겠다.

② 하지만 무죄 판결까지 확정됐으면, 더이상 청구권 행사에 장애 요소가 없다.

③ 그러니 이때부터는 시효를 두겠다. 채권자는 6개월 내에 신속히 권리를 행사해야만 한다.


정씨에게 국가배상청구권이 인정된 시점은 형사보상 결정이 확정된 2012년 5월 18일부터였다. 원래 기준대로라면 2015년 5월 18일까지만 국가에 배상청구를 하면 됐다. 하지만 '6개월'로 앞당긴 대법원 판례를 기준으로 하면, 이 기한이 2012년 11월 18일로 당겨진다. 정씨가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날은 11월 28일이었다.


즉, 과거 기준(3년 내)을 적용하면 합법적인 청구였지만 새로운 기준(6개월 내)을 적용하면 그렇지 않았다.


결국 이러한 대법원의 판례가 인용되면서, 정씨의 손해배상청구권은 모두 소멸됐다. 지난 2014년 상고심에선 재판 심리조차 열지 않고 그대로 사건을 기각했다. 정씨의 변호인단이 두 번에 걸쳐 제기한 헌법재판소 위헌청구 소송에서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대법원이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것⋯변경돼야 할 판례"

이 판례를 두고 변호사들조차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법률 자문
법무법인(유) 강남의 이필우 변호사, 옳은 법률사무소의 강승구 변호사. /로톡DB
법무법인(유) 강남의 이필우 변호사, 옳은 법률사무소의 강승구 변호사. /로톡DB


법무법인(유) 강남의 이필우 변호사는 "실제로 재판을 하는 도중에 새롭게 나온 대법원 판례가 소급 적용되면서 사건의 판도가 뒤집히는 경우가 존재한다"면서 일선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 변호사는 "국가의 범죄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사건에서 민법상 일반 불법행위의 소멸시효인 3년을 적용하지 않고, 갑자기 그보다 불리한 시효중단을 준용해 6개월을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국가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대법원 판례는 변경돼야 한다"고 비판했다.


옳은 법률사무소의 강승구 변호사는 "오로지 법리적으로만 판단한다면 국가배상청구권에 민법상 시효중단 규정을 준용하는 것이 문제는 없어 보일 것"이라며 "다만 헌법상 국가배상청구권에 관한 규정이 단순히 재산권 보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강 변호사는 "국가배상청구권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려는 특성을 가진다"면서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배상 권리가 현실적으로 보장되도록 소멸시효에 관한 특례 규정을 제정하는 등의 노력이 요구된다"고 전했다.


[로톡뉴스=강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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