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범죄 피해 사실을, 동의도 없이 공개한 사람은 '무슨 죄'로 처벌할 수 있을까
나의 범죄 피해 사실을, 동의도 없이 공개한 사람은 '무슨 죄'로 처벌할 수 있을까
김재련 변호사 '무고 혐의'로 고발한 시민단체 대표
박원순 전 시장 성추행 피해자의 '추가 피해 사실' 공개
피해 사실 무단으로 공개⋯처벌 할 수 있을까

4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적폐청산국민참여연대 신승목 대표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고소한 전직 비서 A씨의 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를 무고·무고교사 혐의로 고발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일 한 시민단체가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며 성추행 피해자 A씨의 법률대리인을 맡고 있는 김재련 변호사를 고발했다. 이 단체는 김 변호사가 확실하지 않은 성추행 증거를 바탕으로 박 전 시장을 성추행범으로 몰아갔다고 주장했다. 무고⋅무고 교사 혐의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피해자 A씨의 또 다른 성범죄 피해 사실이 노출됐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A씨는 박 전 시장에 의해 성범죄 피해를 당한 인물로만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이번 고발로 인해 A씨가 서울시 비서실 관계자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이 추가로 공개됐다.
신 대표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A씨 입장에선 감추고 싶었을 수 있는 피해 사실이 강제로 공개된 것이 된다. 이렇게 범죄 피해 사실을 무단으로 공개한 사람에게 법적 책임은 없을까.
적폐청산국민참여연대(적폐청산연대)의 신승목 대표는 지난 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 사건 일지'를 공개했다. 김재련 변호사가 기자회견 등을 통해 밝혔던 사실에 대한 반박이었다.
김 변호사가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주장하면서, 정작 A씨가 비서실 직원에게 당한 성폭행 사건은 감췄다는 게 핵심이다. 신 대표에 따르면, 성폭행 사건은 지난 4월 14일 비서실 직원들의 회식 후 벌어졌다. 술에 취한 A씨를 다른 직원인 B씨가 성폭행했다는 내용이다.
신 대표는 "김재련 변호사는 기자회견을 통해 성폭행 사실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며 "성폭행 사건이 아닌 박원순 시장의 성추행 사건에 관여하기로 작정하고 피해자를 설득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특히 김 변호사가 제시한 성추행 증거도 미흡해 보인다며, 성추행 의혹을 제기한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성폭행 사건을 의도적으로 제외하고,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사건을 부각한 탓에 박 전 시장의 명예가 훼손됐다는 것이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B씨인데 무고한 박 전 시장을 성추행범으로 만들었다는 취지였다.
이같이 피해 사실이 타의에 의해 공개된 경우, 피해자 A씨가 할 수 있는 법적 조치는 무엇이 있을까.
법률 자문

법무법인(유한)동인의 신동협 변호사는 "명예훼손 정도를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변호사 권우현 종합 법률사무소'의 권우현 변호사는 "실질적으로 박원순 전 시장에 대한 무고 고발을 뒷받침하기 위한 의도가 깔린 것"이라며 "이는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했다.
신 대표의 행동은 피해자의 명예와 피해 구제를 위해서가 아니라, 김재련 변호사를 상대로 한 고발 사건을 유리하게 하려는 목적이다. 그런 점에 비춰보면, A씨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볼 수 있다는 취지다.
권 변호사는 "(만약 그 내용이 사실이라면) 신 대표는 페이스북 계정에 피해 사실을 적시(摘示·지적하여 보임)했기 때문에 공연성이 인정된다"며 "허위 유무와 비방의 목적 유무에 따라 형법상의 명예훼손 또는 정보보호법상의 명예훼손으로 처벌될 여지가 있다"고 했다.
다만 죄가 인정되기 위해선 조건이 있다고 했다. 권 변호사는 "그 내용이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는 진실이고,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한 이익과 박원순 전 시장의 명예회복 필요성이 더 크다는 등의 판단이 있다면, 죄가 되지 않을 여지도 있다"고 했다.
신동협 변호사도 "(상대측에서 공익성을 주장한다면) 명예훼손죄가 실제로 인정되긴 어려울 수도 있다"고 했다.
법무법인(유) 로고스의 이윤상 변호사는 이번 사건을 "피해자 A씨 보다는 (A씨를 성폭행했다고 지목된) B씨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4월 14일 성폭행 사건) 사실관계가 확실히 밝혀진 게 아니라면, 오히려 성폭행 가해자로 지목된 비서실 관계자 B씨에 대한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즉, 신 대표는 B씨가 A씨를 성폭행했다고 단정했는데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이기에 명예훼손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