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6살 아이는 “아빠와 살고 싶다”했지만⋯ 그래도 ‘법은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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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6살 아이는 “아빠와 살고 싶다”했지만⋯ 그래도 ‘법은 법’이다

2019. 10. 21 12:45 작성
안세연 인턴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sy.ahn@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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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 다툼 중 식칼로 아내 17cm 찌른 베트남 남편

범죄 인정한 남편, 선처 구하는 아내⋯ '징역형' 받으면 헤어져야 하는 가족

안타까운 사연 vs. 잔혹한 범죄⋯ 재판부의 결정은?

지난 18일 오후 2시부터 수원지방법원 301호 법정에서 특수상해 혐의를 받는 피고인 응옌씨의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 / 안세연 기자

“아빠 어디갔어?”


사람 하나 오가지 않는 적막한 법정 복도. 아이의 웃음소리가 퍼져나갔다. 엄마로 보이는 여성의 휴대폰 밖으로 새어나온 영상통화 소리였다. 아이는 아빠가 감옥에서 갇혀 재판을 받고 있는 사실을 모른다.


아이가 아빠를 만나지 못한 건 ‘그날’ 이후 104일 째다. 아이는 매일 “아빠 어디갔어”라고 물어봤지만, 엄마는 매번 “아빠 출장 갔어”라고 답했다. 이번에도 그랬다. 엄마는 아이 앞에서 애써 웃음 짓다가, 통화가 끝나자마자 참고있던 울음을 터뜨렸다.

잔소리한다고⋯ 베트남인 남편, 아내에 30cm 칼 찔러 넣어

모든 사건은 지난 7월 7일 새벽 1시 사소한 다툼에서 시작됐다. 부부는 친구를 불러 술을 마시던 중 다퉜다. 아내는 안주를 다듬다 남편 신체부위 일부의 크기를 비하했고 “바람 피는 것 같다”는 말도 했다. “아이도 못 재우느냐”며 연거푸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얼굴이 굳은 남편은 “이제 술은 그만 마시자”고 했으나 아내는 “싫은데”라고 답하며 등을 돌렸다. 화가 폭발한 남편은 “계속 잔소리 하면 죽여버릴거야”라고 외쳤다. 아내는 “죽일려면 죽여라”고 맞받아쳤다.


험악한 말이 오가길 몇 차례. 사단이 났다. 남편이 쥔 식칼이 아내 옆구리에 깊숙하게 박혔다. 칼날이 몸 속으로 17cm나 들어가는 중상이었다. 췌장과 신장, 비장을 관통했다. 쏟아지는 피가 아내가 입은 하얀 바지를 붉게 물들였다. 흘러나온 피로 마룻바닥이 찰박댔다.


남편이 쥔 식칼이 아내 옆구리에 깊숙하게 박혔다. 칼날이 몸 속으로 17cm나 들어가는 중상이었다. 췌장과 신장, 비장을 관통했다. 재판 기록에 따르면 남편은 칼날이 아래로 가도록 거꾸로 쥐었다./게티이미지코리아


칼이 꽂힌 채로 앰뷸런스에 실려간 아내는 생명이 위독했지만, 다행히 회복했다. 이날 재판정에도 직접 출석했다. 아내는 남편을 “용서했다”며 “사람이 살면서 한 번은 잘못을 저지를 수 있지 않냐”고 선처를 호소했다. 울면서 “가족과 다시 화목하게 지낼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했다.

범죄 인정한 남편, 선처 구하는 아내⋯ 징역형시 한국에서 '추방'

18일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에서 나온 이야기를 종합한 내용이다. 남편인 응옌(35)씨는 위험한 흉기인 식칼로 아내 장모(35)씨를 찌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사는 “살인미수가 될 수도 있었던 사건”이라며 “장씨가 뒤돌아있는 무방비 상태에서 칼을 찌른 것은 매우 잔혹하다”고 주장했다.


구속돼 피고인석에 앉은 남편은 처음부터 모든 범죄 사실을 인정했다.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으니 “한국에서 계속 아들과 살 수 있게 도와달라”며 했다.


결국 재판의 쟁점은 ‘아내에 중상을 입힌 해외 국적 남편의 사정을 어디까지 참작해줄 수 있나’로 좁혀졌다.


베트남 국적인 남편이 이 죄로 징역형 이상을 선고받으면 한국을 떠나야 한다. 강제퇴거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죄목은 특수상해. 법정형이 최소 1년이다. 아내가 “아들⋅남편과 함께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 거듭 말한 이유였다.

변호사 "사건 직후 바로 119신고⋯ 화목했던 가족 유지 도와달라"

변호인은 “상해의 정도가 중한 점은 인정한다”라며 변론을 시작했다.


먼저 “응옌씨가 일관되게 본인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달라”고 말했다. 이어서 “피해자인 장씨와 장씨의 부모도 응옌씨를 용서했다”며 “다시 화목했던 때로 돌아가고 싶은 응옌씨의 진심을 봐달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실물화상기에 사진 한장을 띄었다. 사진에서 응옌 씨의 가족은 한 식당 안에서 활짝 웃고 있었다. 모두 커플 후드티를 맞춰 입고 있었다.


다음으로 변호인은 “응옌씨가 사건 직후 119에 가장 먼저 신고했다”고 말했다. 또 “응옌 씨는 최초 신고한 뒤 1분 30초가 지나자 다시 신고하여 ‘빨리 와달라’ ‘아내를 때렸다’고 시인했다”고 밝혔다. 그만큼 응옌씨도 다급했고, 장씨를 찌른 게 우발적이었다는 게 변호인의 주장이었다.


응옌씨의 동종 전과가 없는 점도 제시했다.

검사 “안타까운 사연이 범행을 정당화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검사 측은 ‘실수였다’는 변호인의 주장을 강하게 반박했다. 검사는 “장씨의 몸에 들어간 식칼의 깊이가 17cm 였다”며 “이는 매우 잔인한 범죄”라고 강조했다.


또한 “화가 난다고 누구나 칼을 드는 건 아니다”라며 “응옌씨가 직후에 신고한 사실보다 잔혹한 피해 사실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가족의 안타까운 사연이 범행을 정당화해주지 않는다”며 응옌씨 측의 주장에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이를 정당화할 경우 남편이 칼로 사람을 찔렀는데 잡혀갔다가 (아무 처벌도 받지 않고) 나오는 말도 안 되는 질서가 자리잡는다”고 우려했다.


검사 측은 ‘응옌씨가 일관되게 자백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부정했다. 검사는 응옌씨에게 “어째서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을 때는 ‘찌를 의도가 없었다’고 하다가 법정에 와서야 ‘다 내가 잘못했다'고 하느냐"고 지적했다.


실제 검사 말대로 응옌씨는 사건직후 경찰 조사에서 “겁을 줬을 뿐인데 장씨가 몸을 돌리면서 스스로 칼에 찔리게 되었다”고 진술했다. 의도적으로 찌른 게 아니라 어쩌다보니 찔린 거라는 취지의 진술이었다. 하지만 이날 법정에서는 “모든 게 내 책임이다”며 의도적으로 찌른 것까지 인정했다.


재판정에 나와있던 검사는 이에 대해 “어째서 이제와서 자백을 하는 거냐”고 몇 번이고 되물었다. 응옌씨는 “모든 게 다 제 잘못”이라고 하면서 즉답을 피했다. 검사는 답답해하며 이후 2차례나 더 통역인에게 “제 질문을 종합해서 다시 물어달라”고 요구했다. 돌아온 답은 여전히 ‘반성’ 뿐이었다. 검사는 이마를 짚으며 난감해했다.


지난 18일 오후 2시부터 수원지방법원 301호 법정에서 특수상해 혐의를 받는 피고인 응옌씨의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 /안세연 기자


"한 번만 기회를 달라" 남편도, 피해자인 아내도 선처 호소

아내 장씨는 이날 법정에 우두커니 앉아 모든 과정을 지켜봤다. 응옌씨가 “잘못했다”며 눈물을 흘리는 대목에서는 함께 울었다.


재판장은 장씨가 피해자 진술을 시작하기 전 “이제 건강은 괜찮으시냐”고 질문했다. 장씨는 “네”라고 답했지만 “너무 떨려서 못하겠다”며 시작 전부터 목이 메었다.


잠깐의 시간이 흐른 뒤 장씨는 “이미 남편을 용서했고, 아들을 잘 키우고 싶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남편이 구치소에서 자주 편지를 보내서 용서를 구하기도 했다”며 “면회도 일주일에 3,4번씩 가는 등 가족 모두가 괴로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재판장은 “아들도 면회를 가느냐”고 질문했다. 장씨는 “아들은 모른다”고 답했다. 앞서 응옌씨도 “자신이 아내한테 아들을 데려오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며 “아들한테 너무 창피하다”고 했다.


응옌씨는 최후진술에서 “잘못을 가족에게 보상할 수 있도록 한 번만 기회를 달라”며 배심원 측에 눈물로 선처를 호소했다.


변호인은 “응옌씨는 사건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라며 “집행유예 또는 선고유예를 내려달라”고 했으나, 검사는 “응옌씨의 죄질이 중하다”라며 징역 3년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가족의 사연은 안타깝지만⋯ 법원의 결정은 '원칙대로'

모든 재판 과정을 지켜본 배심원 5명과 수원지방법원 제15형사부(송승용 부장판사)는 오후 4시 30분쯤 평의실로 자리를 옮겨 논의를 시작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1시간 반 정도가 걸렸다.


오후 6시쯤 선고 결과가 나왔다. 응옌씨는 먼저 떠난 변호인 없이 홀로 선고를 들었다. 아내 장씨는 방청석에서 남편과 가장 가까운 앞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두 손은 모아져 있었다.


재판부는 특수상해 혐의를 받는 피고인 응옌씨에 “징역 1년을 선고한다”라며 “다만 2년간 집행을 유예한다”고 밝혔다. 또한 “80시간의 사회봉사시간을 명한다”고 주문했다.


배심원 전원이 만장일치로 응옌씨가 ‘유죄가 맞다’고 판단했고, 이어서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이 적당하다’고 재판부와 판단을 같이 했다.


재판부는 피고인 응옌씨에 대해 징역1년⋅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재판장인 송승용 부장판사는 “아내인 피해자의 옆구리를 식칼로 찔러 자칫하면 중대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다”라며 “죄질이 가볍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피고인은 이 사건을 자백하고 반성하고 있다”며 “피해자도 처벌을 원하지 않고 있는 점, 한국에서 형사처벌을 받은 점이 없는 점 등을 종합하여 형을 판단했다”고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렇게 재판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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