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 544개 아동 음란물 다운받고도 무죄? 법원이 ‘고의성’ 부정한 이유
[무죄] 544개 아동 음란물 다운받고도 무죄? 법원이 ‘고의성’ 부정한 이유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초기, 불법 공유 사이트 가입자의 엇갈린 운명
'고의성' 입증 기준 분석
![[무죄] 544개 아동 음란물 다운받고도 무죄? 법원이 ‘고의성’ 부정한 이유 기사 관련이미지](https://d2ilb6aov9ebgm.cloudfront.net/1774419040432299.png?q=80&s=832x832)
불법 사이트에서 다운받은 압축파일에 아동 음란물이 있었더라도, 내용물을 명확히 인지하고 압축을 해제했다는 객관적 증거가 없다면 소지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이른바 'N번방' 사태로 사회적 공분이 일기 시작하던 무렵, 한 웹하드 비밀클럽에서 544개의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이 포함된 압축파일을 다운로드한 남성이 재판에 넘겨졌다.
겉으로 보기에는 명백한 범죄 행위로 비치지만, 1심과 2심 재판부 모두 이 남성에게 최종 무죄를 선고했다.
이처럼 이례적으로 보이는 판결의 핵심은 범죄 성립의 필수 요건인 '고의성'에 대한 법원의 엄격한 증명 요구에 있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피고인 A씨는 2019년 9월과 2020년 1월, 두 차례에 걸쳐 총 11만 원을 불법 사이트 운영자 B씨의 계좌로 송금했다.
이를 통해 B씨가 웹하드 사이트에 개설한 비밀클럽 접근 권한을 얻은 A씨는 2020년 2월 23일, 특정 제목의 게시물을 클릭해 압축파일을 하나 다운로드했다.
수사 결과 해당 압축파일 안에는 총 1,761개의 개별 파일이 들어 있었고, 그중 544개가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로 밝혀지면서 A씨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압축파일 속에 숨겨진 544개의 영상, 고의성을 인정할 수 있는가?
단지 수천 개의 파일이 담긴 압축파일을 다운로드했다는 사실만으로는, 그 안에 특정 불법 음란물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피고인이 명확히 인지하고 소지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특정 영상을 직접 선택해 다운로드하는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압축파일은 이를 해제해 내용물을 탐색하는 추가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전지방법원 2022노3712 판결에 따르면, A씨가 다운로드한 게시물 본문에는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만한 명백한 단서나 뚜렷한 여성의 사진이 없었다.
나아가 압축파일 내 1,760여 개 개별 파일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 역시 게시물에 전혀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
A씨는 다운로드 직후 파일을 곧바로 삭제했다고 일관되게 주장했고, 수사기관은 그가 파일의 압축을 풀어 내용물을 실제로 확인했다는 객관적인 증명 자료를 법정에 제시하지 못했다.
불법 클럽 이용자라는 사실이 아동 음란물 소지에 대한 포괄적 인식이 될까?
불법 촬영물이 공유되는 사이트의 성격을 인지하고 이용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곧바로 개별적인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소지에 대한 구체적 고의성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피고인에게 전반적인 불법성에 대한 인식이 있었을 가능성은 존재하나, 해당 공간에서 오직 아동·청소년 음란물만 유통된 것이 아니라면 이를 별개로 입증해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 비밀클럽 운영자 B씨는 후원금을 모으기 위해 성인물 공유 프로젝트를 내세우며 성인 대상의 국내 불법 촬영물을 배포해 왔다.
재판부는 A씨가 비밀클럽에서 한 달 넘는 기간 동안 총 318회에 걸쳐 영상 파일을 다운로드했지만, 그중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이 섞여 있던 것은 문제의 해당 압축파일 단 한 건뿐이었다는 점에 크게 주목했다.
또한 범행 시점인 2020년 2월은 이른바 'N번방' 등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한 무렵이긴 하나, 사건의 전모가 완전히 공론화되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상태는 아니었다.
수사 과정에서 A씨가 당시 포털사이트에 관련 키워드를 검색한 웹 기록조차 전혀 없었다는 점도 고의성을 부정하는 근거가 됐다.
결국 항소심을 맡은 대전지방법원 형사5-2부는 1심인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2021고단2226 판결과 동일하게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형사 재판에서 유죄의 인정은 법관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하다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거에 의해야 한다.
이번 판결은 아무리 의심스러운 정황이 존재하더라도, 피고인의 명확한 범행 고의성을 객관적 증거로 입증하지 못한다면 형사 처벌을 할 수 없다는 엄격한 증거주의 법리를 재확인한 사례로 남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