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의도가 부른 11조원대 재앙, '삼전닉스 ETF' 상장폐지 못하는 진짜 이유
선한 의도가 부른 11조원대 재앙, '삼전닉스 ETF' 상장폐지 못하는 진짜 이유
"환율 방어" 내세운 상품에 32만 계좌 반대매매 위기
정부 "예탁금 3천만원 상향" 냈지만, 상장폐지는 불가

코스피가 하락 출발해 장 초반 6,500대까지 밀린 20일 코스피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주가가 표시되는 모습. /연합뉴스
선한 의도로 출발한 금융 정책이 수십만 개인 투자자들의 계좌를 강제로 청산시키는 11조원대 시한폭탄으로 돌아왔다.
최근 주식 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이른바 '삼전닉스(삼성전자·SK하이닉스)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상장지수펀드)' 사태 이야기다.
한때 순자산 규모가 14조~16조원에 달했던 이 상품은 주가 급락과 함께 현재 약 11조원 규모로 쪼그라들었다.
이 과정에서 개인 투자자들의 평가 손실은 수조원대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며, 반대매매(증권사가 고객의 주식을 강제로 파는 것)를 당한 계좌만 32만 개에 이른다는 분석도 나온다.
20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한 고란 기자는 이 사태의 전말과 당국 대책을 짚었다.
뒤늦은 정부의 보완 조치 "진입 장벽만 높였다"
금융당국은 뒤늦게 진화에 나섰다. 해당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 매매 시 기본 예탁금 요건을 현금 3000만 원으로 늘리고, 20주씩 거래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보완 대책을 내놨다.
청와대 측은 이 조치로 상당 부분 부작용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시장 반응은 회의적이다. 물리적으로 단타족의 진입 비용을 높여 새로운 투자자의 시장 진입을 차단하겠다는 의도지만, 기존 투자자들에 대한 구제책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고란 기자는 방송에서 "너무 늦었다"며 "이미 시장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청와대 "상장폐지 어렵다"⋯법적·현실적 한계는?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일각에서는 "아예 상품 자체를 상장폐지 시켜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그러나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방송을 통해 "단일 종목 레버리지 상장폐지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여기에는 명확한 법적, 시장 구조적 이유가 있다.
상장폐지가 결정되면 운용사는 ETF가 보유한 약 11조원 규모의 순자산을 시장에 내다 팔아 투자자들에게 현금으로 돌려줘야 한다. 단기간에 11조원어치의 매물 폭탄이 쏟아지면 시장 전체가 걷잡을 수 없는 난장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법률과 규정상 ETF를 강제로 상장폐지 시키려면 괴리율(시장가격과 순자산가치의 차이) 초과나 유동성 부족 등 명확한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현재 해당 상품은 이 상장폐지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
만약 정부가 이 상품만을 없애기 위해 억지로 특별 규정을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한국 금융 시장은 자의적으로 규정을 바꾸는 믿을 수 없는 후진적 시장'이라는 오명을 씌우게 되어 부정적 이미지를 키울 수 있다.
남은 해결책은?
당초 이 레버리지 상품은 환율 방어라는 선한 의도로 정부 주도하에 기획됐다. 하지만 변동성이 극대화되는 상황에서 레버리지 특성이 맞물려 파멸적 결과를 낳았다.
전문가들은 상장폐지라는 극단적인 처방 대신, 시장 충격을 줄이는 기술적인 보완책이 나올 것으로 전망했다.
레버리지 ETF는 수익률의 두 배를 맞추기 위해 장 막판에 기계적으로 주식을 사고파는 리밸런싱(자산 편입비율 재조정) 과정을 거친다.
고란 기자는 "운용사의 기계적인 리밸런싱 구조를 조금 더 정교하게 분산시켜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는 기술적 보완책이 나올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