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믿고 맡기기엔⋯공인중개사협회가 제공하는 임대차계약서, 너무 불안한걸요?
[단독] 믿고 맡기기엔⋯공인중개사협회가 제공하는 임대차계약서, 너무 불안한걸요?
공인중개사협회가 제공하는 임대차계약서의 손해배상 기준
"계약효력 기간도, 손해배상 범위도 명확하지 않은 독소조항" 변호사 지적
임대차 계약 '체결' 당시에만 초점 맞춘 것⋯국토교통부 "정부에서 요구한 내용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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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계약을 하게 된 한 변호사는 공인중개사가 내민 표준계약서에서 의아한 부분을 발견했다. 이 조항대로라면 계약 후에 아무리 큰 손해가 발생해도, 표준계약서에 적힌 '계약금'까지만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법무부 홈페이지⋅셔터스톡
집주인 입장에서 부동산 임대차 계약을 맺게 된 변호사 A씨. 공인중개사가 "표준계약서"라며 내민 문서를 살펴보다가 의아한 문단을 발견했다.
"손해배상에 대해 별도의 약정이 없으면 계약금을 손해배상의 기준으로 본다."
A 변호사는 '이상한 조항'이라 생각했다. 이대로라면 만일 세입자가 집안에 불을 내서 집이 몽땅 타더라도, 집주인이 받을 수 있는 손해배상은 계약금밖에 없게 된다.
그는 "어떤 손해냐에 따라 배상 규모가 달라질 테니 이 문구는 삭제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인중개사는 뜻밖의 대답을 했다. "이건 한국공인중개사협회가 제공하는 '표준계약서'라 시스템상 문구를 바꿀 수 없어요."
'수정이 안 된다'는 이유로 임대인에게 불리한 조항을 강제한 것이다. A 변호사가 주장을 굽히지 않자, 그제서야 "그러면 계약서 하단에 특약을 넣어 문제를 해결합시다"라고 나왔다.
이 사안을 지켜본 변호사들은 "이 계약서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계약의 당사자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계약서"라며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신우의 박종흔 대표변호사는 "표준계약서라는 이름으로, 정작 당사자들의 의사를 확인하고 반영하는 절차가 생략된 임대차 계약이 체결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종흔 변호사는 "한 번 거래가 이뤄지고 나면 계약 효력이 종료되는 매매와 달리, 임대차는 그 기간 동안 여러 법률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계약"이라고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런데 그런 계약서에 "별도의 약정이 없는 한 모든 손해배상의 기준은 계약금"이라는 문구가 들어가게 되면, 임대차 계약이 지속되는 내내 이 조항이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건 한국공인중개사협회가 제공하는 계약서 규정이 '어느 시점까지' 영향을 미치는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즉 ①계약 체결 과정에서의 손해만 해당하는지 ②임대차 기간 중에 발생한 손해도 포함하는지 ③계약 해제를 한 경우에만 손해배상이 이뤄지는지 명확하지 않다는게 박종흔 변호사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한국공인중개사협회는 "(해당 규정은) 계약체결 시에 관한 내용"이라고 밝혔다. 계약 체결 과정에서의 손해만 해당한다(①)는 취지였다.
하지만 변호사들은 그렇게 한정해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로앤의 박혜성 변호사는 "문제의 조항은 단순히 임대차 계약 체결 당시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임대차 계약 기간 중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채무불이행(②)과 그에 따른 계약해제(③)를 아우르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박혜성 변호사는 "이렇게 되면 채무불이행이나 계약 해제에 따른 모든 손해액을 계약금으로만 한정해 해석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라고 지적했다.
결국 현재 문항만으로는 계약 후에 아무리 큰 손해가 발생해도, 표준계약서에 적힌 '계약금'까지만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박혜성 변호사는 "이런 상황에선 중개인이 계약 당사자들에게 일일이 구체적인 법률관계를 설명하고, 계약서상에 정확한 문구를 넣어야 한다"고 전했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건 공인중개사들이 관심이 '계약이 체결되는 그 시점'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임대차 계약을 맺는 양 당사자는 계약 기간 내에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려 법적으로 계약서를 쓰는 건데, 공인중개사 입장에서는 일단 계약이 성사되고 중개 보수가 지급되고 나면, 이후 양 당사자 간 분쟁에 관여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변호사 직역관련 문제를 관장하는 대한변호사협회에서도 이 부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강경희 대한변협 제1기획이사는 "임대차 계약 기간 동안 다양한 법률관계가 발생할 수 있고, 개별 상황에 맞는 정확한 해결이 중요하다"며 "현재 한국공인중개사협회가 권장하는 계약서에선 공인중개사가 역할 하는 '체결' 시점의 권리관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문제가 되는 조항의 효력은 임대차 계약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는데, 정작 손해배상의 범위가 당사자 의사에 반해 임의로 책정된 것도 문제라고 봤다.
강경희 변호사는 "국민 일상과 밀접한 부동산 계약에서도 여러 법률관계가 잘 보호될 수 있도록 하려면, 법률전문가인 변호사의 조력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관할 주무 부처에서는 한국공인중개사협회가 권장하는 이 계약서를 어떻게 평가할까.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18일 로톡뉴스와의 통화에서 "해당 채무불이행과 손해배상 관련 내용은 정부기관에서 제공하는 표준계약서에는 없는 조항"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법무부가 국토교통부, 학계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 만든 임대차 표준계약서에는 한국공인중개사협회의 계약서와 같은 손해배상 조항이 없었다.
다만, 국토부 관계자는 "법정 서식을 강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런 경우 당사자 간 계약의 자유를 존중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는 행위에 그치지 않고, 계약 관계 전체를 체계적으로 규율할 수 있는 종합 관리가 중요하다. 이는 부동산 계약에서 전문적인 법률 조력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나라의 상황은 어떨까? 미국의 경우, 부동산 계약 과정 전반에 부동산 전문변호사가 참여해 법률관계를 조율한다.
익명을 요구한 변호사 역시 "부동산 거래와 관련된 법률행위 전반을 변호사가 주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미국 워싱턴DC주에서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해당 변호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부동산 관련 계약을 맺을 경우 변호사들이 ①계약서 작성 및 검토 ②부동산 매물 등기, 근저당 등 현황 검토 ③은행 담보대출 조력까지 역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민생과 직결되는 부동산 문제.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기본계약서에 이런 독소조항이 있을 것이라 예상한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박종흔 변호사는 "임대차계약은 재산과 주거권에 관한 중요한 문제인 만큼 당사자들의 의사를 분명히 반영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며 "이러한 분쟁의 소지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변호사의 검토와 조언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한국공인중개사협회는 "(해당 조항은) 자주 발생하는 다양한 중개사고나 거래사고 유형들을 살펴보고 변호사, 법학교수 등 자문을 구해서 만든 조항"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중개인은 표준계약서라서 못 지운다'고 안내하고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표준계약서라는 (개념을) 모르고 하는 얘기"라며 "(해당 계약서는) 협회에서 이런 내용이 들어가면 좋겠다는 권장 사항을 준 것이다. 해당 중개인분이 이해를 잘못한 것 같다"고 답했다.
이어 "임대인이나 임차인이 이 조항을 원치 않으면 삭선(削線)을 요구하면 된다"며 "설령 인쇄가 돼서 나왔더라도 당사자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삭선해서 쓸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반인 입장에서 '협회가 사용을 권장하는 계약서'에 대해 삭제 요청을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