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요구 무조건 응하라” 전문직 남편이 강요한 노예 각서, 법적 효력 따져보니
“성적 요구 무조건 응하라” 전문직 남편이 강요한 노예 각서, 법적 효력 따져보니
“밖에서는 완벽한 매너남, 집에서는 괴물”
부부 사이 강간죄 성립 가능
접근금지 등 피해자 보호 명령 활용해야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결혼 3년 차, 남들이 보기엔 완벽한 가정이었다. 남편은 유능한 전문직 종사자에 매너까지 갖춘 사람이었다. 하지만 현관문이 닫히는 순간, 집은 지옥으로 변했다.
아내 A씨는 신혼 초 사소한 말다툼 끝에 뺨을 맞은 것을 시작으로 3년 내내 남편의 폭력에 시달렸다. 폭행은 침실까지 이어졌다. 남편은 가학적이고 변태적인 성행위를 강요했고, A씨가 거부하면 “부부간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며 주먹을 휘둘렀다.
급기야 남편은 A씨에게 믿기 힘든 각서 작성을 강요했다. 내용은 “어떠한 성적 요구에도 무조건 응하며, 이 모든 것은 나의 자발적인 의사다”라는 것. 공포에 질린 A씨는 억지로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A씨가 이혼을 요구하자 남편은 “부부 사이의 은밀한 일일 뿐”이라며 해당 각서를 내밀었다. “네가 동의해서 쓴 각서가 있으니 법적으로 문제 될 게 없다”는 주장이었다. 과연 이 ‘노예 각서’는 법적 효력이 있을까. 16일 YTN 라디오 ‘조인섭 변호사의 상담소’에서 다뤄진 사연을 법적으로 분석했다.
인격권 침해하는 각서, 법적 효력 0⋯ 오히려 범죄 증거
전문가들은 남편이 강요한 각서가 법적으로 아무런 효력이 없다고 단언했다.
이재현 변호사(법무법인 신세계로)는 “A씨가 작성한 각서는 효력이 없다”고 밝혔다. 우리 민법 제103조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변호사는 “개인의 인격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거나, 성적 자기결정권을 영구히 포기하게 하는 내용의 각서는 사회 질서에 반하여 그 자체로 무효”라고 설명했다. 또한 강박 상태에서 작성된 의사표시는 민법 제110조에 따라 취소할 수도 있다.
오히려 이 각서는 남편의 발목을 잡는 결정적 증거가 될 전망이다. 이 변호사는 “각서를 작성하게 한 행위 자체가 형법상 강요죄에 해당할 수 있다”며 “A씨의 경우 각서 자체가 남편의 범죄를 입증하는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부부 사이 성폭행, 처벌 가능할까
남편은 “부부 사이의 일”이라고 주장하지만, 법의 판단은 다르다. 우리 법원은 법률혼 관계라 하더라도 강간죄 성립을 인정하고 있다.
이재현 변호사는 “남편이 폭행과 협박을 수단으로 원치 않는 성행위를 강요했다면, 유사강간 또는 강간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상습적인 폭행과 협박, 강요 혐의로도 형사 고소가 가능하다.
이혼 소송에서도 남편의 유책 사유는 명백하다. 민법 제840조 제3호(배우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와 제6호(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 변호사는 “남편의 행위는 혼인 관계의 본질적인 상호 존중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으로, 더 이상 혼인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객관적 사유가 된다”고 설명했다.
보복이 두렵다면⋯ 접근금지 등 보호 조치 적극 활용해야
A씨처럼 가정폭력 피해자가 이혼이나 형사 고소를 결심했을 때 가장 두려운 것은 배우자의 보복이다. 이를 막기 위한 법적 안전장치는 무엇이 있을까.
이재현 변호사는 크게 3가지 단계를 제시했다.
- 긴급 임시 조치(경찰 단계): 폭력 상황 발생 시 경찰이 현장에서 즉시 남편을 격리하고, 100m 이내 접근 및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을 금지한다. 단, 48시간 이내라는 한계가 있다.
- 임시 조치(검사·법원 단계): 긴급 임시 조치 후 48시간 내에 검사가 청구해 법원이 결정한다. 최대 2개월까지 가능하며, 2회 연장해 최장 6개월까지 보호받을 수 있다.
- 피해자 보호 명령(법원 단계): 피해자가 직접 법원에 신청할 수 있다. 최대 6개월까지 유지되며 주거지 접근 금지뿐만 아니라 자녀에 대한 접근 금지도 포함될 수 있다.
이 변호사는 “재산 분할은 기여도를 따지므로 배우자의 유책 행위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극심한 폭행과 학대가 동반된 경우 위자료 액수를 대폭 증액하거나 피해자의 향후 자립 등을 고려해 유리하게 참작하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