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 1통에 10년간 6천 세대 쓰던 ATM 사라졌다…악성 민원일까, 정당한 권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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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 1통에 10년간 6천 세대 쓰던 ATM 사라졌다…악성 민원일까, 정당한 권리일까?

2025. 07. 24 12:23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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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son@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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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 "수천 명 편의 무시한 횡포" 반발 vs 시청 "입주민 동의 없는 명백한 불법 시설물"

경기 남양주시 다산동의 한 아파트 내에 붙은 'ATM 기계 철거 예정' 안내문. /온라인 커뮤니티

단 한 명의 민원이 10년간 6천 세대 주민의 '은행 창구' 역할을 해온 현금자동입출금기(ATM) 7대를 철거 위기로 내몰았다. 이는 단순한 '악성 민원' 논란을 넘어, 오랜 관행과 법적 절차의 정면충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경기 남양주시 다산동의 한 아파트 단지. 최근 관리사무소는 상가 앞에 설치된 ATM 7대를 철거한다는 공고문을 내걸었다. "입주민 한 사람의 민원으로 인해 시청으로부터 철거 명령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2010년 이전부터 자리를 지켜온 ATM은 인근 5개 단지, 약 1만 2000명 주민이 이용해온 편의시설이었다.


주민들은 즉각 반발했다. 한 입주민은 "경조사 때마다 급하게 현금이 필요하면 은행까지 갈 필요 없이 편리하게 썼다"며 "수천 명이 이용하던 시설을 단 한 명 때문에 없애는 건 명백한 악성 민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스마트폰 뱅킹이 익숙지 않은 고령층 주민들의 불편이 클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졌다.


"악성 민원" vs "절차 위반"…법의 잣대는 달랐다

주민들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행정기관의 판단은 단호했다. 민원의 수와 관계없이, ATM 설치 자체가 법을 위반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공동주택관리법 제35조에 따르면, 아파트 단지 내 공용 부분에 ATM 같은 시설물을 설치하려면 입주자대표회의 등을 통해 입주민의 동의를 얻고 관할 시청에 신고해야 한다. 하지만 해당 ATM들은 10여 년 전 설치될 당시 이 절차를 전혀 거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남양주시 관계자는 "민원인의 질의에 따라 현장을 확인한 결과, 법에서 정한 입주민 동의나 시청 신고 절차가 누락된 사실을 확인했다"며 "위법 상태를 시정하라는 취지에서 관리사무소에 철거 안내 공문을 보낸 것"이라고 밝혔다. 법적으로 '악성 민원'이 아닌, 위법 상태를 지적한 '정당한 문제 제기'로 본 셈이다.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동 아파트 단지 상가 앞에 있던 ATM. /온라인 커뮤니티


10년간의 묵인, 왜 이제야 문제 됐나

그렇다면 10년간 문제없이 사용해온 시설인데, 이제 와서 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타당할까. '신뢰보호의 원칙'이 거론되면서도, 이번 사안에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신뢰보호의 원칙이란 행정기관의 특정 조치를 믿고 행동한 개인의 신뢰는 보호해야 한다는 법리다.


하지만 이는 행정 조치가 '적법'하다는 신뢰를 전제로 한다. 처음부터 허가 없이 설치된 불법 시설물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신뢰보호가 인정되기 어렵다는 게 법원의 일관된 판례다. 즉, 10년의 세월이 불법을 합법으로 만들어주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결국 이번 사태는 다수의 편의라는 이름 아래 묵인돼 온 '절차적 하자'가 한 시민의 문제 제기로 수면 위로 드러난 사례다. 시청 측은 "주민 다수가 이용하는 시설인 만큼, 법적 절차를 거쳐 재설치하는 방안을 아파트 측에 안내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설치를 위해서는 입주민 동의와 시청 신고는 물론, 연간 수천만 원의 운영비를 부담해야 하는 은행의 수익성 검토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아 주민들의 불편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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