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속 처리' 이름 무색한 검경 수사권 조정, 입장 차 여전히 '뚜렷'
'신속 처리' 이름 무색한 검경 수사권 조정, 입장 차 여전히 '뚜렷'
'국민을 위한' 수사권 조정, 지향은 같은데 해법 달라
"권한 분산이 민주적" vs "양 기관 분리로 갈등만 야기"

왼쪽부터 박주현 변호사, 김지미 변호사, 서보학 교수, 이찬희 협회장, 정승환 교수, 이형세 단장, 김웅 단장 / 사진 안세연 기자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이 지난 4월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됐다. 우리 수사구조에 대전환이 일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일하지 않는 국회’ 덕에 ‘신속 처리’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진행이 더딘 상황이다.
이에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이찬희)는 지난 9일 ‘검경 수사권 조정에 관한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대립하는 양측 입장 간 접점을 모색해 보는 기회를 가졌다.
이 협회장은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이처럼 정답 없는 문제에 선뜻 나서는 것은 괜히 욕만 먹는 일이 될 수 있지만, 이대로 놔두는 것은 해악이라는 생각에 심포지엄을 개최하게 됐다”면서 “검찰과 경찰, 양 기관을 모두 가까이 접하면서도 국민 입장까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변호사이기 때문에 변협이 나섰다”고 설명했다.
이 협회장은 “(이 문제를) 어떤 기관이 어떤 권한을 갖느냐, 또는 누구 말이 맞고 누구 말이 틀리냐는 관점으로 접근해선 안 되고, 검찰수사든 경찰수사든 국민이 수사 과정에서 부당한 인권 침해를 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이 논의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날 발표자는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승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며, 토론자로는 김웅 대검찰청 미래기획형사정책단장, 이형세 경찰청 수사구조개혁단장, 김지미 변호사, 박주현 변호사가 나섰다.
서보학 교수 -
“집중된 권한 분산하는 것이 더욱 민주적인 시스템”
오래전부터 수사권 분리를 주장해 온 서보학 교수는, 그간 검찰 측이 제기한 주장들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먼저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것은 민주적이지 않다”는 문무일 검찰총장의 발언에 대해 “틀린 말”이라고 일갈했다.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는 것일수록 더욱 민주적인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안은 중국 공안 모델을 본뜬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프레임 짜기’라고 비판했다. ‘신속처리법안이 대한민국을 경찰국가로 만들 것’이라는 우려를 형성하려고 만든 프레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검찰은 이 프레임을 바탕으로 ‘수사권을 조정하면 경찰권이 비대화하여 인권 침해가 우려된다’고 주장하는데, 지금의 검경 수사권 조정안은 현재의 수사 현실을 그대로 법제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받아쳤다.
법안에 따르면 앞으로도 검찰은 광범위한 직접수사가 가능하고, 여전히 경찰은 검찰의 수사지휘를 받는다. 서 교수는 이를 두고 ‘명분은 경찰이 챙기고 실리는 검찰이 챙긴 법안’이라고 평가했다. “검찰 권한의 분산 차원에서는 매우 미흡한 법안”이라는 것이다.
그는 문재인·김인회 공저 <검찰을 생각한다>를 인용하며, 검찰이 자신의 위치를 혼동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검찰이 ‘준사법기관’이라는 자기 인식을 갖고 검사를 법관과 대등한 지위로 여긴다는 설명이다.
서 교수는 “검찰은 법원이 아니라 경찰과 동등한 지위라는 정확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면서 “행정부 소속이면서 상급자의 지휘·감독을 받고, 피의자·피고인과 대립하는 지위에서 판사의 판단을 받아야 하는 검찰은 결코 준사법기관일 수 없다”고 못박았다.
한편 검찰의 ‘지연 꼼수’ 의혹도 제기했다. “경찰을 믿을 수 없으니 자치경찰제 실시를 전제로 하여서만 수사권 조정을 해야 한다”는 검찰 주장이, 단순히 시간을 끌며 논의를 지연시키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서 교수는 “검찰, 경찰 중 어느 쪽이 더 믿을 만하냐는 질문은, 견제와 균형을 위한 민주적 수사구조를 만들려는 이 논의의 본질을 망각하게 한다”면서 “기소권 가진 검사가 수사권 가진 경찰을 한 번 더 심사하게 하는 것이 국민의 인권을 중첩적으로 보호하고 억울한 경우를 더욱 방지하는 시스템”이라고 강조했다.
일반 경찰이 수사 경찰에 개입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신설이 확정된 ‘국가수사본부’를 통해 구체적 수사지휘를 제한하고 수사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영상 촬영, 편집 : 안세연 기자
정승환 교수 -
“수사권은 검찰 것도, 경찰 것도 아닌, 국민의 것”
정승환 교수는 법안에 반대하는 입장에 섰다. 하지만 “이 법안에 반대하면 보수로 몰아가는 사람들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다”고 토로했다. 학자적 양심에 따라 법리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는 자신의 진정성을 ‘보수 프레임’이 퇴색시키기 때문이라는 것.
정 교수는 “현재 수사권 조정에 대한 최종 결론은 국회에 맡겨져 있는데, 국회는 무엇보다 이 수사권이 검찰의 것도, 경찰의 것도 아닌 국민의 것이라는 점에 유념하여 결론을 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 교수는 법안에 반대하는 이유를 ‘검찰 권한을 분산하겠다는 당초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하면서, 협력하던 검경을 분리하여 갈등과 대립하는 구도로만 만들어 놨기 때문’이라고 했다.
법안에 따르면 향후 검찰과 경찰은 각자 수사하게 되고, 1차 수사에 대한 지휘권을 행사하지 못했던 검찰은 경찰이 사건을 송치하면 처음부터 다시 수사하여 기소를 하게 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사건당사자가 되는 국민의 입장에서는 “복잡해지기만 했을 뿐”이라는 정 교수의 지적은 여기서 나온 것이다.
그는 “수사구조의 측면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이중적이면서 이원적인 수사”라며 “각자 수사하는 검찰, 경찰 양 기관으로부터 국민이 두 번 수사받게 해서는 안 되고, 수사구조를 합리화하는 것이 국민을 위하는 수사구조개혁”이라고 말했다.
결국은 수사구조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검찰의 직접수사를 폐지하거나 최소한으로 제한해 수사는 경찰이 전담하도록 하고, 검찰은 경찰 수사를 지휘하면서 수사종결권을 행사하도록 하자는 게 정 교수의 주장이다.
정 교수는 “여기서 더욱 민주적으로 운영하려면 검찰이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 국민이 참여하게 하는 기소배심제를 보완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끝으로 그는 “검찰 못지않게 경찰도 주요 개혁 대상”이라면서 “경찰을 위해 검찰을 개혁하려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검찰을 개혁하는 것이라면 국민을 위해 경찰 역시 동일한 개혁 과정을 밟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반범죄 수사에서는 검찰보다도 더욱 권한과 규모가 큰 경찰이 먼저 개혁된 이후에야 수사권이라는 칼날을 경찰에 맡길 수 있으며, 수사권 조정은 권력형 범죄 관련 개혁안인 공수처 설립과 운영을 지켜본 이후에 천천히 구체적 내용을 정립하며 추진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 정 교수의 주장이다.
김웅 단장 -
“경찰 수사 과정의 기본권 침해를 통제하려고 만든 게 검사제도”
김웅 단장 역시 ‘경찰이 검찰 못지않은 무소불위의 권력 기관’이라는 점부터 언급했다. “치안, 보안, 경비, 교통에 정보수집권까지 독점한 중앙집권경찰인 우리 경찰은, 세계 그 어느 나라 경찰과 비교해도 막강한 권력을 가진 기관”이라는 것이다.
김웅 단장은 “수사란 일상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도록 되어 있는 공권력 작용이고, 이러한 기본권 침해를 통제하기 위해 만든 게 검사제도”라면서 “이는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형사소송법의 선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검찰이 통제받지 않으니 경찰도 통제받지 않게 하라’는 주장에 다름 아닌 경찰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나온 이 법안은, 형사소송절차가 제대로 지켜지는지를 감시하는 것이 국민의 인권 보호 방안임을 생각할 때 매우 위험한 것”이라고 말했다.
법안이 정하고 있는 검사의 ‘보완수사요구’ 규정에 대해서는 극히 한정된 상황에서만 가능한 데다 사법경찰관이 정당한 이유를 들어 이를 거부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독소조항’이라는 시각을 보였다. 보완수사요구가 가능한지를 둘러싸고 검경 간 다툼이 생길 것이 뻔하다는 것이다.
김웅 단장은, 수사권 조정안을 “우리 경찰과 검찰의 관계를 중국 검찰과 공안의 관계로 만들고 싶어하는 안”이라고 평가한 민주당 금태섭 의원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심지어 중국 공안의 보충수사요구에도 이 같은 거부조항은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검찰의 수사지휘를 폐지하겠다고 만들어 놓은 여러 절차가 담긴 법안을 보면서, ‘이런 불편과 불이익을 왜 국민이 다 감수해야 하는가’라는 씁쓸함이 들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형세 단장 -
“권한 나눠 견제하게 하면 정치권이 검찰 이용하기 어려워”
이형세 단장은 “검찰은 그동안 수사지휘권으로 경찰 및 모든 수사기관과 구체적인 사건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면서, 기소독점주의와 기소편의주의라는 무기를 통해서는 김학의 전 차관과 같은 국민이 이해하기 힘든 사례들을 만들어 냈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검찰의 수사장악력이 바로 정치권이 검찰을 쥐고 이용하고 싶어하는 부분이라는 게 이형세 단장의 분석이다.
그는 “수사는 경찰, 기소는 검찰, 재판은 법원으로 권한을 나누고 국가권력이 상호 견제하게 할 때 정치 권력은 감히 검찰을 이용하려 들 수 없을 것”이라며 “이것이 동시에 국민 권익과 편익을 증진하는 민주적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이 단장은 많은 시간을 들여 반대 견해들을 일일이 반박했다. 경찰의 수사종결권이 검사의 기소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재판에 회부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검사의 기소권이 판사의 재판권을 침해하지 않듯이, 검찰에 기소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경찰의 1차적 수사종결권은 검사의 기소권을 침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경찰이 검사의 보완수사요구를 따르지 않을 우려에 대해서는 “경찰이 사건을 불송치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굳이 피해자를 처벌해 달라고 검찰에 송치한 사건을 검사가 보완수사하라고 했을 때, 검경은 이해관계가 같은 상황이기 때문에 굳이 징계위험 등을 감수하면서까지 경찰이 보완수사요구를 거부할 경우를 예상하는 것은 무리”라고 반박했다.
이 단장은 “신속처리법안이 여전히 검사의 직접수사와 경찰에 대한 우월 지위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지만, 최소한의 검찰 견제를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 의의를 두며, 향후 국회 입법 과정에서 많은 보완이 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지미 변호사 “검찰은 고도비만 환자”
박주현 변호사 “장밋빛 전망 위험하다”
김지미 변호사는 “제가 말하고 싶은 대부분의 내용이 앞의 발표와 토론에서 다 나왔다”며 반대의견을 반박하는 것에 더 무게를 뒀다.
김 변호사는 “권력형 범죄에서 검찰권 남용이 문제되고 있는데 일반수사 영역에서 수사권 조정을 하자는 것은 환부를 놔두고 엉뚱한 곳을 수술하는 격”이라는 검찰 측 주장에 대해 “검찰은 특정 부위에 부상을 입은 환자가 아니라 체질을 개선하고 전체적으로 살을 빼줘야 하는 고도비만 환자”라고 비유했다.
검찰의 비대한 권력은 그대로 둔 채 일부 직접수사 기능을 축소하거나 형사부 중심으로 운영하겠다는 주장은 보이는 상처만 얼른 치료하겠다는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이 법안이 검찰의 체질을 개선하기에는 많이 부족하지만, 그동안의 시기상조론을 잠재우고 검찰 권한 분산을 위한 첫발을 뗐다는 데서 의미가 깊다”고 평가했다.
한편 박주현 변호사는 상당한 우려를 표했다. “검찰보다 국민의 일상에 더 가까이 있는 경찰은 숫자까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권한이 더 주어지면 인권 침해 사례는 더욱 늘 수밖에 없다”는 우려다.
박 변호사는 “이 법안을 통해 경찰과 검찰 간 견제와 균형을 이룬다는 것은 형식논리에 지나지 않고, 실상은 반대로 갈 게 뻔하다”면서 “통제되지 않는 경찰이 만들어지면 그때 가서 그 위험은 어떻게 감당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국가수사본부 등 한 번도 운영해 보지도 않은 통제장치에 기대어 수사권 조정의 장밋빛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국민을 실험대상으로 삼은 위험한 발상”이라며 “제도 정착에만도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텐데, 통제장치가 정착되는 걸 국민이 보기도 전에 수사권 조정부터 급히 하려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럽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