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 돌아가게 해주세요" 성폭행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게서 나온 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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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으로 돌아가게 해주세요" 성폭행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게서 나온 이 말

2021. 03. 19 18:51 작성2021. 03. 19 19:21 수정
강선민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mean@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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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열린 '인천 여중생 성폭행 투신 사건' 항소심 결심공판

무죄 주장하며 학업에 집중하게 해달라는 말에, 피해자 아버지는 입을 닫았다

자신들의 무죄를 주장하며 "학업에 집중하게 해달라"는 말에 피해자 아버지는 입을 닫았다. /게티이미지코리아⋅셔터스톡⋅그래픽 및 편집=조소혜 디자이너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란 선량한 학생입니다. 이런 가정에서 자란 피고인이 범죄를 저질렀을 리가 없습니다."


19일 오후 2시 20분. 서울고법 서관 312호. 이곳에서 열린 일명 '인천 여중생 성폭행 투신 사건'의 항소심 결심공판. 피고인 측의 변론이 시작됐다. 이 사건은 지난 2018년 피해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며 세상에 알려졌고 그로부터 어느덧 3년이 흘렀다. 당시 10대 청소년이었던 피고인들은 성인이 됐지만, 재판은 아직 진행형이다.


재판장 부름에 뚜벅뚜벅⋯피고인은 이미 보석으로 풀려났다

공판 시작 10분 전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등장했다. 서로를 알아보며 반갑게 안부를 물었다.


"오랫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따뜻하게 격려 인사를 나누던 사람들은 삼삼오오 재판정 방청석에 앉았다. 사복을 입은 앳된 얼굴들. 함께 자리에 앉았던 기자는 이들이 오랜 시간 피해자를 위해 연대했던 사람들일 거로 생각했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피해자를 잊지 않은 사람들이 남아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잠시 뒤, 이들은 재판장의 부름에 피고인석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분명 1심에서 강간과 추행 등 혐의로 각각 장기 6년과 단기 4년, 장기 5년과 단기 3년을 선고받았던 피고인들이었다. 구속 수감된 줄 알았던 이들은 지난해 10월 보석 신청이 받아들여져 이미 사회로 나온 상태였다.


"대학에 다니는 피고인,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게 해주십시오"

아동⋅청소년성보호법상 강간 혐의, 성폭력처벌법상 미성년자 위계 추행 혐의, 명예훼손. 이 사건 피고인 3인은 각기 다른 범죄혐의로 재판정에 섰다. 모두가 중학생이었던 한 명의 피해자를 상대로 벌인 범죄였다.


피고인들 가운데 1심에서 강간과 추행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두 명은 항소심에서 무죄를 주장했다.


이날 피고인 측 변호인단은 "피해자와 피고인 간의 (성)관계 모습을 보면 강간을 당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피해자가 강간 혐의를 받는 피고인 A군과 있을 때 모습이나, 실제 남자친구였던 피고인 C군과 함께였을 때 모습이 다르지가 않다"고 변론했다. 강제력이 없는 성관계였으니 무죄라는 취지였다. 해당 변호인단은 지난 1심 재판에서도 피해자의 관계 모습을 묘사하며 강간 혐의를 부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범죄를 당한 후 이를 견디다 못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피해자 측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기 시작했다. 피고인 측 변호인단은 "피해자의 죽음에 애도를 표한다"면서도 "하지만 그 죽음과 피고인들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변론했다. 피해자가 피고인들의 범죄 행각에 견디다 못해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알려졌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급기야 피고인 측 변호인은 "피해자가 자살한 게 아니라 불의의 사고로 죽은 것일 수 있다"는 주장과 더불어 극단적 선택이라고 해도 이는 피해자 집안의 불화 때문이라고 피해자 가족에 책임을 돌렸다.


그리고선 "피고인들이 대학에 다니고 사회생활도 시작했다"며 "이만 일상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했다. 피해자 가족이라면 듣기 힘든 이 주장을, 피해자 아버지는 홀로 방청석 한쪽에서 무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피고인 측 주장. 하지만 그러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피해자의 유가족이다. 피해자는 이미 세상을 떠난 상태고, 피해자의 아버지는 홀로 수년째 법정에 나와 재판을 지켜보고 있다.


재판장은 검사와 피고인 측의 최후변론을 모두 마친 뒤 방청석을 바라봤다. 항소심을 맡은 배형원 부장판사는 피해자 아버지에게 특별히 진술 기회를 부여했다. 재판부에 제출된 의견서를 모두 받아봤지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전하라고 했다.


그러나 피해자의 아버지는 한숨을 쉬며 "없.습.니.다."라고 딱딱하게 말을 이었다.


재판정을 나온 아버지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재판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피고인들은 서로 많이 친해졌네요. 처음엔 모르던 사이였는데요."


피해자가 눈을 감은지 975일째. 항소심이 시작된 지 1년이 넘었지만, 선고는 또 한 차례 연기됐다. 이 사건의 선고기일은 오는 5월 14일 오후 2시에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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