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모든 건 '웃긴 식당 안내문' 때문이었다…한 남자를 성추행범으로 만든 그날의 진실
[단독] 모든 건 '웃긴 식당 안내문' 때문이었다…한 남자를 성추행범으로 만든 그날의 진실
피해자 '확신'과 CCTV '진실' 사이
법원 "추행 고의 입증 부족" 무죄 선고
![[단독] 모든 건 '웃긴 식당 안내문' 때문이었다…한 남자를 성추행범으로 만든 그날의 진실 기사 관련이미지](https://d2ilb6aov9ebgm.cloudfront.net/1755506193868103.jpg?q=80&s=832x832)
한 남성이 식당서 10대 종업원 엉덩이를 팔꿈치로 눌렀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셔터스톡
2023년 9월의 어느 날 점심, 15세 아르바이트생 B양은 뜨거운 짬뽕 그릇을 나르다 등 뒤에서 섬뜩한 감각을 느꼈다. 한 남성 손님의 팔꿈치가 자신의 엉덩이를 '꾹' 누르는 듯한 느낌.
B양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문제의 남성 A씨와 맞은편에 앉은 여성 일행이 눈을 마주치고 웃고 있었다. B양에게 그 웃음은 자신의 피해를 조롱하는 신호이자, A씨의 행동이 고의였음을 증명하는 '확신'의 증거였다.
그렇게 A씨는 '10대 종업원을 강제추행한 파렴치한'으로 법정에 섰다. 하지만 1년여의 법정 다툼 끝에 법원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자의 일관되고 구체적인 진술에도 불구하고, 재판의 흐름을 완전히 뒤바꾼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피해자의 확신 "그들은 나를 보고 웃었다"
B양은 수사기관에서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피해 사실을 진술했다. A씨가 팔꿈치로 엉덩이를 건드렸고, 그 직후 A씨와 그의 일행이 서로를 보며 웃는 모습을 보고 고의적인 추행임을 확신했다는 것이다. B양의 진술은 너무나 구체적이었고, 그 확신은 흔들림이 없었다.
반면 A씨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A씨는 "벽에 붙은 재미있는 안내문을 보다가 짬뽕을 든 종업원이 갑자기 나타나 깜짝 놀라 움찔했을 뿐, 고의는 없었다"고 항변했다. 팽팽한 진실 공방의 향방은 객관적인 증거와 또 다른 목격자의 입에 달리게 됐다.
반전의 시작 "웃은 건 맞지만, 이유는 다르다"
사건의 첫 번째 실마리는 A씨의 맞은편에 앉았던 여성 일행 C씨의 증언에서 나왔다. 그녀는 법정에서 웃은 사실은 인정했다. 하지만 그 이유는 B양이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C씨는 "서비스 안내문 내용이 너무 재밌어서 웃었습니다"라며, "만약 A씨가 그런 행동을 했다면 제가 먼저 강력하게 뭐라고 했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결정적으로 그녀는 "A씨는 벽 쪽을 보고 있었지, 저와 눈을 마주친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B양의 '확신'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결정적 증거가 된 '서비스 안내문'
그렇다면 두 사람을 웃게 한 벽보에는 무엇이 적혀 있었을까? 법원이 확인한 '서비스 안내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삭발하고 오면 탕수육 서비스(단, 여자분만)", "비키니 입고 드시면 공짜", "대통령, 국회의원은 200% 할증", "커플에겐 시기와 질투 서비스", "솔로에겐 동정과 측은함 서비스."
이 엉뚱하고 유머러스한 문구들은 A씨와 C씨가 왜 벽을 보며 웃었는지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를 제시했다. B양이 느꼈던 '조롱의 웃음'은 사실 '안내문을 보고 터진 실소'일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사건의 마침표는 CCTV 영상이 찍었다. 영상에는 A씨가 벽을 바라보다가 B양이 나타나자 잠시 쳐다본 후 다시 벽을 보는 모습, 그리고 C씨가 벽을 보다가 웃는 얼굴로 B양을 잠시 쳐다보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재판부가 가장 중요하게 살핀 "피고인과 일행이 서로 눈을 마주치고 웃는 장면은 보이지 않았다."
'의심'만으론 처벌할 수 없다
결국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만으로는 피고인이 추행의 고의로 피해자의 엉덩이를 만졌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형사재판은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의 엄격한 증명을 요구한다. B양의 오해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그녀의 '확신'을 뒷받침할 객관적 증거가 부족하고 오히려 피고인의 주장에 부합하는 증거들이 더 명확했기 때문이다.
[참고] 수원지방법원 2024고정673 판결문 (2025. 2. 7. 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