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랑인 단속의 비극 국가가 40년 만에 "위헌" 인정, 피해자들 인권 회복
부랑인 단속의 비극 국가가 40년 만에 "위헌" 인정, 피해자들 인권 회복
감금 정당하다 했던 국가가 40년 만에 고개를 숙였다
복지원 강제수용의 최종적 사법 심판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감금은 정당하다 했던 국가가 40년 만에 고개를 숙였다.”
이 한마디는 1970~80년대 국가의 ‘부랑인 단속’ 정책 아래에서 강제 수용된 수많은 국민이 겪었던 고통과, 수십 년 만에 법적으로 인권을 회복한 역사적 순간을 압축한다.
A복지원 강제수용 사건의 피해자들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하며, 과거 국가 공권력에 의한 폭력과 인권 침해에 대해 법원이 명확한 책임을 물었다.
특히, 시설 운영자의 감금 행위가 '정당행위'로 판단됐던 과거 형사 판결과 완전히 상반되는 결론이 나오면서, 사법부 판단의 40년 만의 극적인 반전이 주목받는다.
40년 전 비극의 시작 위헌적 국가 훈령이 낳은 비극
"일정한 주거 없이 배회하는 자": 국가가 내린 '단속 대상' 명령
사건의 핵심은 1975년 12월 15일 내무부장관이 발령한 '부랑인 신고, 단속, 수용, 보호와 귀향 및 사후 관리에 관한 업무처리지침'(내무부훈령 제410호, '이 사건 훈령')이다.
이 훈령은 '건전하고 명랑한 사회질서를 확립하고 도시환경을 정화'한다는 명목으로, 일정한 주거 없이 배회하거나 구걸하는 모든 부랑인을 단속 대상으로 규정했다.
이 훈령에 따라 시장·군수·구청장은 경찰과 합동으로 단속반을 꾸려 정기적·수시로 단속을 실시했다.
부산광역시는 이 업무를 민간 시설인 A복지원에 위탁했다.
원고들(피해자들)은 대부분 미성년자였으며, 짧게는 3년, 길게는 약 9년간 A복지원에 강제로 수용되었다.
이들은 시설 내에서 구타, 강제노역 등 중대한 인권 침해를 당하며 기본적인 신체의 자유와 교육받을 권리 등을 박탈당했다.
감금인가, 정당행위인가 엇갈린 과거와 현재의 법적 판단
과거 형사 재판의 역설: 운영자 S의 '정당행위' 무죄 취지 확정
A복지원의 실질적 운영자였던 S은 1987년 특수감금 등 혐의로 기소됐다.
형사 재판 과정에서 법원은 극적인 판단을 내렸다.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1989년 대법원은 S의 감금 행위가 국가의 '부인 선도'라는 공적 업무에 따른 것이므로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판단하여 사실상 무죄를 확정했다.
이 판결로 인해 피해자들은 수십 년간 국가의 불법적인 강제 수용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려웠다.
민사 항소심의 반전: "훈령 자체가 위헌·위법해 무효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의 항소심(서울고등법원 2024나2017937)은 이 같은 과거의 판단을 뒤집고 국가의 책임을 명확히 한다.
법원의 핵심 판단은 다음과 같다.
'이 사건 훈령'의 위헌·위법성: 훈령이 상위 법률의 위임 없이 국민의 신체의 자유 및 거주이전의 자유를 제한하고 무기한 시설 수용을 가능하게 한 것은 법률유보원칙(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때는 반드시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는 원칙)과 과잉금지원칙에 위반된다.
또한, 영장 없이 인신을 구금하게 한 것은 영장주의원칙에도 위반되므로, 훈령 자체가 위헌·위법하여 무효라고 판단했다.
국가배상 책임 성립: 위헌·위법한 훈령의 발령과 집행, 그리고 이 과정에서 경찰 등 공권력의 적극적 개입 또는 묵인 하에 이루어진 강제수용은 객관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한 국가 작용이다. 따라서 국가는 피해자들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시효와 배상 40년 만에 인정된 피해자들의 권리
소멸시효의 덫을 넘어서: 진실규명결정이 열어준 길
피고(대한민국)는 피해자들이 시설 폐원 시점 등에 손해를 알았으므로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이미 완성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 사건이 과거사정리법상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에 해당하며, 피해자들이 국가배상의 손해 및 가해자를 알게 된 시점은 진실규명결정통지서가 송달된 날이라고 보았다.
형사 재판에서 '감금은 정당하다'는 판단이 내려졌던 상황을 고려할 때,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려웠다는 현실을 반영한 판단이다.
최종적 피해 회복 위자료 증액으로 책임을 강조하다
항소심은 1심 법원이 정한 위자료 액수 중 일부 원고(A, G, J, M, N, O 등)에 대해 금액을 증액하며 피해 회복의 수준을 높였다.
법원은 강제 수용 기간 중 겪은 구타, 가혹행위, 강제노역 등 육체적·정신적 고통의 심각성과, 불법행위 시점부터 약 40년에 이르는 배상 지연 기간 동안 발생한 화폐 가치 변동을 고려하여 위자료를 산정했다고 밝혔다.
이 판결은 과거 국가가 ‘부랑인’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중대하게 침해한 행위에 대해, 사법부가 ‘위헌’이라는 최종 선언을 내린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헌법 가치를 훼손한 국가의 책임을 명확히 함으로써, 유사한 인권 침해 행위의 재발을 방지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