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링클러 없던 14층의 비극, 법의 빈틈이 모자를 삼켰다
스프링클러 없던 14층의 비극, 법의 빈틈이 모자를 삼켰다
1998년 소방법에 발목 잡힌 안전
'아내와 아들 못 봤냐' 아버지의 절규만 남았다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두 층 차이로 갈린 생사…'법의 공백'이 삼킨 모자의 목숨.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로 60대 어머니와 20대 아들이 함께 세상을 떠나는 비극이 발생했다. 화마가 덮친 14층에는 스프링클러가 없었고, 이는 26년 전 지어진 건물이 가진 '법의 사각지대' 때문이었다.
“아내와 아들 못 봤소?”…잿더미 속 아버지의 절규
화재 당시 18층 계단에서 연기를 피해 가까스로 구조된 60대 남편이자 아버지는 안도할 틈도 없었다. 그는 새까맣게 그을린 아파트를 망연자실 바라보며 이웃들에게 "아들과 아내 못 봤느냐"고 애타게 물으며 찾아다녔다. 가족의 생사를 알지 못한 채 현장을 헤매는 그의 절규는 재난의 비극성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오전 8시 10분쯤 20층짜리 아파트 14층에서 시작된 불은 2시간 만에 꺼졌지만, 그의 아내와 아들은 끝내 숨진 채 발견됐다. 이 불로 주민 13명이 다치고 89명이 긴급 대피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한 주민은 "안쪽에서 터지고 실외기도 터지는 등 폭발하는 소리가 많이 났다"고 긴박했던 순간을 전했다.
왜 14층엔 스프링클러가 없었나…26년 전 '16층' 규정의 덫
이번 참사의 피해가 커진 결정적인 원인으로 스프링클러의 부재가 지목된다. 이 아파트가 준공된 1998년 당시 소방법(현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16층 이상 아파트의 모든 층에만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했다. 불과 두 층 아래인 14층은 법적 의무 대상에서 벗어나 있었던 것이다.
이후 법은 2004년 '11층 이상', 2018년 '6층 이상' 건물의 모든 층으로 설치 기준이 대폭 강화됐다. 하지만 법 개정 이전에 지어진 노후 아파트에는 이 규정이 소급 적용되지 않았다. 결국 촘촘해진 안전망은 과거의 건물들을 비껴갔고, 법의 빈틈이 이번 참사를 막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남겨진 과제: 잠자는 법을 깨워야
이번 화재는 스프링클러 없는 노후 아파트가 얼마나 화재에 취약한지를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드러냈다. 법 개정 이전 지어진 건물이라는 이유로 최소한의 안전장치조차 갖추지 못한 공동주택이 여전히 많다.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안전 문제에 있어 '법의 불소급 원칙'만 내세우는 것이 온당한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급하다. 기존 건물에도 안전 설비를 갖추도록 법을 소급 적용하거나, 설치 비용 지원 등 현실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