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무비] 복수는 내 것이라
[로드무비] 복수는 내 것이라
[law de movie]
복수는 나의 것, 2002 박찬욱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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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사장 동진(송강호 연기)의 유괴된 딸이 숨진 채 발견된다. 동진은 딸의 장례식에서 범인을 찾아내 복수하기로 결심한다. / CJ Entertainment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법전이 새겨진 비석이 있다. 이 법전은 고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왕이 기원전 1755~1750년 제정한 것이다.
'평민이 귀족의 눈을 쳐서 빠지게 하였으면, 그의 눈을 뺀다-제196조'
'평민이 귀족의 뼈를 부러뜨렸으면, 그의 뼈를 부러뜨린다-제197조'
이러한 조항은 형사재판 기원이 똑같이 되갚아주기(동해보복·同害報復, lex talionis)에 있음을 알려준다. 지금은 죗값을 벌금과 징역으로 치르는 것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형사재판의 본질이 복수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았다. 강간, 강도, 살인처럼 심각한 피해는 여전히 국가가 대신해 복수한다. 다만 대부분 저지른 죄보다는 약하게 처벌된다. 당장 사람을 죽여도 쉽게 사형되지 않는다. 이렇게 당한 것보다 국가가 적게 되갚아주게 되면서, 아예 국가가 형벌로 되갚아주지 않는 피해도 생기기 시작했다.

가령 현재 한국에서 남의 물건을 허락 없이 사용해도 죄가 되지는 않는다. 절도죄가 되려면 불법으로 소유할 의사가 있어야 하므로, 그렇지 않으면 범죄가 아니다. 민사로는 불법행위여서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남의 승용차를 2~3시간씩 3차례 몰래 타고 갖다 놓은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한 과거 대법원 판결도 그래서 나온 것이다. 이 때문에 자동차 사용죄가 만들어졌다. 현행 형법 제331조의2 '권리자의 동의 없이 타인의 자동차, 선박, 항공기 또는 원동기장치자전거를 일시 사용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5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라는 조항이다. 하지만 이렇게 '사용죄' 조항이 없는 열차는 몰래 써도 처벌되지 않는다고 해석할 수 있다.
반대 경우도 있다. 아파트를 팔기로 하고 중도금까지 받은 집주인이 더 좋은 조건을 부르는 사람이 나타났다고 마음을 바꾸면 범죄다. 중도금을 돌려주고 계약금을 두 배로 물어줘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대법원이 배임죄로 처벌하기 때문이다. 이 판례를 바꾸려 대법원이 2018년 전원합의체를 열었다가 판례를 유지했다. 앞서 2011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동산의 이중매매에 대해서는 배임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지만, 부동산에 대해서는 이처럼 견해를 유지했다. 이 때문에 2018년 전원합의체 판결 당시 "이미 동산의 이중매매에 대해서는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있는데, 부동산이라고 차이를 둘 이유가 없다. 민사상 채무불이행의 문제로 처리해 이행 불능에 따른 손해배상 등을 청구하면 될 사안으로 형벌 처벌은 옳지 않다"는 반대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이처럼 불법행위가 모두 형사처벌 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가 형벌권을 얼마나 작동시킬지는 사회적 결단이다. 그런데 이 사회적 결단은 입법, 행정, 사법이라는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예를 들어, 여론의 요구대로 성폭력 범죄에서 친고죄 조항이 2013년 모두 삭제됐다. 친고죄가 폐지되기 전까지 피해자가 처벌불원 의사를 밝히면 검찰은 공소권 없음 처분을, 법원은 공소기각 판결을 했다. 하지만 친고죄 폐지가 된 이후에도 피해자와 가해자의 합의는 계속 이어졌다. 이를 반영해 검찰이 기소유예했다. 2013년까지 28.5%이던 성폭력 범죄 기소유예가 2014년 44.7%로 크게 늘었다. 이러한 기소유예 증가에는, 유죄 판결을 받은 모든 사람을 신상정보 등록해야 하는 부담도 영향을 미쳤다고 추지현 서울대 교수는 설명한다.
부당함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형사처벌이나 높은 양형부터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혐오표현을 처벌하라는 목소리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혐오표현 규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혐오표현을 깊이 연구한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도 처벌에는 부정적이다. "형사범죄화는 그 기준을 정하기 어렵고, 남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혐오표현을 위축시키는 효과도 미미하다는 점에서 한계를 갖는다. 이러한 부작용 때문에 자칫 득보다 실이 더 클 수 있다는 지적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누군가를 김치녀라고 조롱해도 처벌하기 어렵다고 했다. 권리를 직접 침해하는 것이 아니어서 유죄가 선고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다. 오히려 혐오표현을 합리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국가가 대신 복수하지만 실은 국가만 복수할 수 있다. 사인은 복수할 수 없다. 사적 보복은 범죄이다. 폭력은 국가가 독점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가의 처벌권은 공공재이고 그래서 공정하게 행사되어야 한다. 그런데 국가의 처벌권이 피해자의 경제력에 따라 다르게 제공되고 있다. 고소대리라는 변호사들의 신종 비즈니스가 등장하면서다. 수사력 동원을 상품으로 만들어 범죄 피해자에게 파는 일이다. 고소대리는 사적 보복 금지를 교묘하게 허무는 영업이다. 고소장을 내주고 얼마, 구속되면 또 얼마, 유죄가 나오면 또 얼마를 받는다. 고소대리는 범죄의 발견과 처벌이라는 국가기능을 시장논리로 오염시킨다. 한정된 공권력인 수사력 분배에 돈으로 움직이는 변호사가 개입하기 때문이다. 경찰과 검찰에 변호사가 작성한 고소장이 늘면서 직접 고소장을 작성하는 피해자는 홀대당하고 있다.
고소대리는 형사처벌을 수입원으로 삼기에 부당한 유죄로 이어지기 쉽다. 부당한 무죄를 감수하더라도 부당한 유죄를 막으려 설계된 근대 형사제도를 허문다. 고소대리의 성격은 함께 수임하는 손해배상으로 이어지면서 드러난다. 가령 성범죄 고소대리 변호사는 수사기관에 고소장을 낸 다음, 의뢰인의 주장을 확정된 사실인 것처럼 언론을 통해 공개한다. 이렇게 해서 신분이 알려진 피고소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는데, 고소대리 변호사는 진실을 밝혀야 한다며 경찰에 수사기록 공개를 요구했다. 이런 경우 공소제기가 불가능한 수사기록이지만 성공보수가 걸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근거자료로 쓰일 수 있다.
고소대리 시장의 최고 수혜자는 검찰 전관, 최근에는 경찰 전관이다. 이들 변호사에게 적잖은 돈을 줘가며 고소대리를 맡기는 이유는 형사와 특히 이후 민사에서 이기기 위해서이다. 수사기관이 공정하다는 신뢰가 없으니 안면이 통하는 변호사를 중간에 세우는 것이다. 고소대리 변호사가 먼저 수사기관을 불신하도록 부추기고 특혜를 장담하기도 한다. 그래서 고소대리는 공권력 불신을 연료로 삼는 비즈니스이다. 전관이 아닌 변호사는 언론을 이용한다. 이들은 미확정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도구가 되기를 자처하면서, 결과적으로 고소대리 변호사의 수입을 올려준다. 처음부터 선악을 갈라놓고 쉽게 일하는 게으른 기자와 그런 언론을 이용해 이름을 알리고 이문을 챙기려는 영악한 변호사의 공생이다.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은 복수하려는 사람들이, 마침내 복수에 성공하지만, 결국 복수를 당하고 마는 이야기이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류(신하균 연기)에게는 유일한 가족이자 신부전증을 앓는 누나가 있다. 병이 깊어지면서 신장을 이식하지 않으면 오래 살기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누나와 혈액형이 다른 류는 자기 신장을 줄 수 없다. 류는 장기밀매 조직에 전 재산 1000만원과 신장을 주고, 누나에게 이식할 수 있는 신장을 받기로 한다. 이 무렵 병원을 통해 누나에게 맞는 신장이 기증되지만, 류는 자기 신장과 수술비 1000만원을 장기밀매 조직에 사기당한 다음이다. 누나를 수술할 기회가 사라지게 되어 괴로워하는 류에게 영미(배두나 연기)는 중소기업 사장(송강호 연기)의 아이를 유괴하자고 한다. 이렇게 시작하는 영화가 끝날 무렵에는 류, 누나, 영미, 장기밀매 조직원, 유괴당한 아이, 중소기업 사장까지 모두 죽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중소기업 사장을 죽이는 조직은, 사장 동진의 가슴에 자신들이 작성한 판결문을 대고 칼을 박는다. 사적 복수를 하는 이들이지만 저 자신은 공적 복수라 믿는다. 죽어가는 동진은 판결문을 읽으려 하지만 거꾸로 박힌 판결문을 읽을 수 없다. 류의 연인 영미를 죽였기 때문이란 내용인데, 동진이 읽었다 해도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똑같이 중소기업 사장 동진은 류를 죽이면서 "너 착한 놈인 거 안다. 그러니까 내가 너 죽이는 거, 이해하지?"라고 했다. 이 역시 공적 보복을 가장하는 것이고, 아이를 일부러 죽이지는 않은 류는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구나 류는 듣지 못하는 사람이다.

박찬욱 감독은 영화 제목을 성경에서 가져왔다고 말했다. "복수는 내 것이라. 그들이 실족할 그때 갚으리로다. 그들에게 환난의 날이 가까우니 당할 그 일이 속히 임하리라 (신명기 32장 35절)." 이 성경 구절이 뜻하는 것은, 복수는 하나님의 일이니 사람은 참고 견디라는 말일 테다. 신앙인에게는 복수가 신의 일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국가의 일이다. 국가에 복수를 독점시킨 것은 자신과 사회를 보호하려는 국가 구성원의 결단이다.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이 구성원의 의지대로 공정하고 적절하게 복수하지 않으면 세상은 실현되지 못한 사적 복수로 지옥이 될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