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에서 찾은 스마트워치, 사실상 '무용지물'
판결문에서 찾은 스마트워치, 사실상 '무용지물'

신변보호용 스마트워치는 위급한 상황에서 착용자가 버튼을 누르면 경찰에 자동으로 긴급 신고 돼 실시간으로 위치가 확인되는 장비다. 하지만 도입 6년째인 현재, 여전히 "신변보호 기능이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편집=조소혜 디자이너
"(걱정하는 친구들에게) 괜찮아. 나에게는 만능 시계가 있어."
지난달 19일, 스토킹에 시달리다 살해당한 피해자는 경찰이 지급해준 스마트워치를 믿었다. 하지만 믿었던 스마트워치로 두 번이나 긴급 호출을 했음에도 경찰은 오지 않았다. 경찰이 범행 현장에서 500m 떨어진 곳에서 헤매는 사이 가해자는 흉기로 피해자를 수 차례 찌른 뒤 달아났다.
신변보호용 스마트워치는 위급한 상황에서 착용자가 버튼을 누르면 경찰에 자동으로 긴급 신고 돼 실시간으로 위치가 확인되는 장비다. 하지만 도입 6년째인 현재, 여전히 "신변보호 기능이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로톡뉴스는 판결문을 통해 실제 스마트워치가 제 기능을 다 하고 있는지 검토해봤다.
제도가 도입된 지난 2015년 10월부터 현재까지 대법원이 공개한 판결문 중 '스마트워치'가 언급된 판결문을 모두 확인했다. 최근 6년 동안 총 16건의 사례가 검색됐다.
그리고 판결문 속 스마트워치는 사실상 '무용지물'에 가까웠음이 확인됐다. 이번 사건 외에도 과거 피해자가 살해당했거나, 살해당할 뻔(살인 미수)했다. 나머지 14건 역시 대부분 피해자 '보호'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다.
우선, 총 16건의 사건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한때 연인이었고(①), 피해자의 성별은 모두 여성이었으며(②), 가해자의 범행 동기는 표현만 조금씩 다를 뿐 똑같았다(③). 다음과 같았다.
"사랑을 안 받아줘서", "재결합 요구를 거절당해서", "헤어지자는 말을 듣고 화가 나서"
지난해 6월, A씨는 한 여성을 살해했다. 당시 A씨는 헤어지자고 했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자신의 집에서 흉기로 찔렀다. 피해자는 살해당하기 3일 전에도 A씨로부터 "같이 죽자"는 협박을 받았었다. 협박 등의 피해로 스마트워치를 소지하고 있었지만, 피해자는 결국 살해당했다.
경찰관 : "왜 그랬어요? 왜 그것만 말해보세요. 그것만"
피해자를 살해한 A씨 : "사랑을 안 받아줘서"
이별을 통보했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흉기로 습격했었던 B씨. 당시 행인들의 제지로 뜻을 이루지 못했던 B씨는 일단 도주했으나, 약 일주일 뒤 다시 피해자를 찾아갔다. 앞선 사건으로 피해자가 스마트워치를 착용하고 있었지만, B씨는 피해자의 머리를 흉기로 내리쳐 거의 죽일 뻔했다(살인 미수).
이 밖에도 거의 모든 피해자들이 스마트워치를 차고 있었음에도, 성폭행⋅감금⋅폭행⋅특수협박 등의 중범죄를 당했다. 신고조차 하지 못한 케이스가 절반 이상이었다. 당시 한 가해자는 피해자의 스마트워치를 빼앗아가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 시계가 뭔지 모를 줄 알아?", "경찰이 빠를지, 내가 빠를지 보자. 너 죽이고 감방 가면 돼."

스마트워치가 파손됐을 때 경찰에서 이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순 없을까. 현행 체계에선 불가능하다. 경찰 관계자는 로톡뉴스와 통화에서 "스마트워치의 물리적 파손 여부는 실시간으로 확인이 어렵다"며 "대신 일주일에 1회 이상 주기적으로 착용자에게 특이사항이 없는지 확인한다"고 설명했다.
그나마 스마트워치를 이용해 추가 범행을 막을 수 있었던 케이스가 16건 중 1건 있긴 했다. 하지만 이는 피해자가 용기와 기지를 발휘한 덕분이 컸다.
당시 가해자는 별거 중이던 아내를 폭행하고 차량에 강제로 태웠다. 자신의 집으로 억지로 데려가기 위해서였다. 이때 피해자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화장실을 가겠다"고 말한 뒤 가해자 몰래 스마트워치로 경찰에 신고했다. 이후 가해자는 자신의 집에서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로톡뉴스는 지난달 24일부터 26일까지 경찰청 측에 '신변보호용 스마트워치'에 대한 개선 계획 또는 입장에 대해 수차례 문의했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다.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 수위는 어느 정도였을까. 피해자가 스마트워치를 착용하고 있었다는 건, 가해자의 위협이나 범행이 처음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러니, 처벌 수위도 높지 않을까 싶었다. 살펴보니 실형이 많이 선고되긴 했다.
총 16건 중 집행유예가 2건(12.5%)이었고, 나머지 14건(87.5%)에 대해선 모두 실형이 선고됐다. 하지만 처벌 수위는 평균 약 3년 5개월 정도에 머물렀다. 피해자를 살인한 경우에도 15년이었고, 살인 미수의 경우에도 10년이었다. 짧으면 6개월이 선고되기도 했다.
이 기사는 2021년 11월 26일 네이버 로톡뉴스 프리미엄에 먼저 발행된 기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