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헌혈'하고 '장기기증' 약속하면 감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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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헌혈'하고 '장기기증' 약속하면 감형됩니다

2021. 11. 18 11:34 작성
강선민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mean@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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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형받으려 기계적으로 참여한 헌혈, 장기기증 서약

엄벌에 처해야 할 음주운전 사건이나 성범죄서 여전히 통했다

최근 들어선 음주운전이나 성범죄를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도 형성된 만큼, 헌혈이나 장기기증 서약 등으로 막연히 감형되진 않을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불과 3개월 전에도 이를 양형에 반영해 준 판결이 있었다. /그래픽=조소혜 디자이너

"장기기증 서약서 쓰고 왔습니다. 헌혈도 다음 달부터 하려고요. 혹시 더 준비할 게 있을까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질문. 내용만 보면 사회에 봉사와 나눔을 실천하려는 훈훈한 질문 같지만 속사정은 달랐다. 실은 음주운전이나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재판을 앞두고 '양형 자료'를 검사받기 위해 던진 질문이라서다.


이 같은 질문 뒤에는 앞서 재판을 경험한 사람들의 조언이 달렸다. "범행 이후에 헌혈한 것도 인정되니 계속 시도하라"거나 "장기기증 서약도 했으니 반성문 횟수만 조금 더 채우면 되겠다" 같은 식이다. 헌혈을 자주 하거나 장기기증을 약속하면 감형에 도움이 된다는 그들만의 '기술 전수'였다.


물론 피고인의 다양한 사정이 양형에 반영되긴 하지만, 이것도 과거에나 통하던 방법이 아닐까? 최근 들어선 음주운전이나 성범죄를 강력 처벌해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도 형성된 만큼, 막연히 감형이 되진 않을 거라 예상했다.


여전히 헌혈과 장기기증 서약이 양형에 참작된다

하지만 로톡뉴스가 확인한 결과, 헌혈과 장기기증은 효과 있는 양형 자료로 통하고 있었다. 최근 2년간 대법원이 공개한 판결문 중에 피고인의 헌혈과 장기기증 서약을 양형에 참작했다고 구체적으로 명시한 사건은 19건이었다.


그중 교통사고 관련 사건이 19건 중 11건으로 전체 대비 약 58%를 차지했다. 하나같이 음주운전이나 뺑소니처럼 심각한 범죄들이었고, 사람을 다치거나 죽게 만든 경우도 6건이나 포함됐다. 성범죄도 3건(약 16%) 포함돼 있었는데 강간죄에 준하는 사건도 있었다. 본래라면 벌금형 없이 3년 이상 유기징역에 처할 수 있는 범죄였다.


웬만해선 선처를 해줘선 안 되는 범죄들이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범행 직후에 다급히 준비한 헌혈증과 장기기증 서약서도 양형에 반영해줬다. 불과 3개월 전에도.


"기부하고 있고, 헌혈도 하고 있다" 음주운전에 유독 많았다

만취상태에서 운전대를 잡고 2km 정도를 달리다 붙잡힌 A씨. 당시 그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17%로 면허취소 수준이었다. A씨는 과거에도 이미 음주운전으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었다. 우리 도로교통법은, 음주운전을 2회 이상 저지른 경우 2년 이상 5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상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제148조의2 제1항).


하지만 지난 8월 전주지법은 A씨에게 징역 1년 2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가 특별히 작량감경(酌量減輕·법관 재량으로 시행하는 감형)해 준 덕이었다. 감형 이유로는 "피고인이 많지 않은 금액이지만 아동복지 기관에 기부를 하고 있고, 헌혈도 여러 차례 했다"는 점을 들었다.


음주운전을 하다가 사람 죽게 만들고도, 재판부에 장기기증 서약서를 제출하며 감형을 시도한 사람도 있었다. 이미 숱한 음주운전 전력을 지녔던 B씨였다. 그는 지난 2019년 9월, 해가 지지도 않은 오후 4시쯤 혈중알코올농도가 0.128%인 만취상태에서 운전대를 잡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70대 노인을 들이받았다. 피해자는 병원에 옮겨졌지만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숨졌다.


이후 특정범죄가중법상 위험운전치사 혐의로 기소된 B씨. 지난해 1월 전주지법은 징역 3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B씨는 "형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장을 냈다. 이런 B씨 태도에 1심에서 합의를 했던 피해자 유족마저 다시금 엄벌 탄원서를 냈지만, 그는 항소심 재판에 맞춰 부랴부랴 장기기증을 서약했다.


지난해 5월 열린 항소심. 재판부가 항소를 기각해 B씨의 장기기증 서약서는 의미 없게 됐지만, 그가 어떤 태도로 이를 준비했는지 명확히 보여줬다.


"사회에 봉사하며 살겠다며 헌혈과 장기기증 서약 제출했다"

우연히 알게 된 여성과 첫 데이트를 하던 날, 바로 성폭행을 시도했던 C씨도 마찬가지였다. 1심 재판 내내 관련 커뮤니티에 "무거운 처벌을 받을까 두렵다"고 털어놓을 뿐, 반성의 태도나 미안함을 보이지 않았던 C씨. 이 때문에 "피해자에게 큰 고통을 주었다"고 판결문에도 쓰여있다.


그런데도 서울서부지법은 "피고인 C씨가 헌혈증서와 장기기증 서약서를 제출했다"며 "사회에 봉사하며 올바르게 살겠다는 뜻을 엿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제출한 자료들에서 학업과 자기계발에 노력해온 모습이 엿보인다고도 썼다. 그렇게 지난 2019년 12월, C씨에겐 징역 2년이 선고됐다. 이 범행 불과 1년 전 지하철에서 여성의 가슴 등을 불법촬영하다가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는데도 그랬다.


이후 지난해 4월 열린 항소심에서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으로 감형이 이뤄졌다. 1심에서 각종 양형 자료를 내고도 실형이 선고되자, 뒤늦게 피해자와 합의에 나서면서 받게 된 처벌불원서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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