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린 과일, 마요네즈 병⋯휘두르면 쇠고랑 단단히 찰 '위험한 물건'
얼린 과일, 마요네즈 병⋯휘두르면 쇠고랑 단단히 찰 '위험한 물건'
특수협박⋅특수폭행에 등장하는 '위험한 물건'
기준은 "생명과 신체에 위험 초래"⋯종류는 상관 없어
위험해 보이지 않지만 법원이 인정하는 각양각색의 '위험한 물건'

우리형법에서 말하는 '위험한 물건'엔 얼린 과일이 있다.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위험한 물건엔 뭐가 있을까. /게티이미지코리아
내겐 너무 달콤한 과일이 누군가에겐 '위험한 물건'이 될 수 있다.
사건의 시작은 사소했다. 지난 2018년 7월, 사무실에서 공용으로 사용하는 냉장고 문이 닫히지 않으면서 시작됐다. 직원 A씨가 안을 들여다보니 '얼린 과일이 담긴 비닐백'이 끼어있었다.
화가 난 A씨는 화를 내며 비닐백을 바닥에 집어 던졌다. 곧장 다른 직원 B씨가 다가왔다. "음식을 바닥에 왜 버리냐"고 항의하면서 비닐백을 주우려 몸을 숙였다. 그때 A씨가 냉장고에서 또 다른 '얼린 과일' 비닐백을 던졌다. 날아간 비닐백은 B씨의 왼쪽 새끼손가락을 때렸다. B씨는 전치 2주의 골절상을 입었다.
사건을 검토한 검찰은 A씨에게 (일반 상해보다 형량이 훨씬 무거운) '특수상해'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그냥 다치게 한 게 아니라 '위험한 물건'으로 B씨를 다치게 했다는 이유에서였다.
A씨 측은 "어떻게 얼린 과일이 '위험한 물건'에 해당할 수 있느냐"며 무죄를 주장했다. 쟁점은 '얼린 과일'이 '위험한 물건'에 해당하는지에 쏠렸다.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23단독은 B씨의 골절이 얼린 과일이 담긴 비닐백에 맞아 발생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얼린 과일도 '위험한 물건'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결국 A씨에겐 '특수상해' 등이 인정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우리 형법에서 말하는 '위험한 물건'이란 "사람의 생명과 신체에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회칼이나 공업용 망치, 낫, 톱과 같이 이견이 없는 '위험한 물건'도 있지만, 얼핏 봐서는 위험해 보이지 않는 도구들도 '위험한 물건'으로 인정된다.
범죄 혐의를 받는 입장에서는 '위험한 물건'이 인정되면, 재판에서 상당히 불리하다. 협박이 아니라 특수협박이, 상해가 아니라 특수상해가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협박죄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이지만, '특수'가 앞에 붙으면 7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형량이 껑충 뛴다. 폭행도 일반 폭행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이지만, 특수폭행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받는다.
① 마요네즈 병
마요네즈 병도 '위험한 물건'일까. 지난 1984년 이를 두고 대법원까지 올라간 재판이 있었다. 검찰과 피고인은 마요네즈 병이 위험한지를 놓고 치열하게 다퉜다. 사건 당시 피고인은 깨진 마요네즈 병을 들고 피해자를 구타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에만 해도 유리병에 마요네즈를 담아 팔았다.
당시 재판부는 "마요네즈 병은 사람을 구타하거나 깨어진 부분으로 찌른다면 생명과 신체에 해를 끼칠 수 있다"며 "사람을 해할 목적으로 이를 들고 대하면 상대방이 위험성을 느낄 수 있다"고 판시했다. 위험한 물건이라는 것이었다.
② 안전면도용 칼날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면도할 수 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안전면도용 칼날'. 이것 또한 '위험한 물건'으로 인정받은 적이 있다. 안전면도용 칼날로 피해자의 등을 그어 상해를 입힌 사건이었다.
지난 1971년 대법원은 "안전면도용 칼날은 겁을 낼 만한 흉한 물건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 용법에 따라서 사람을 살상하고 재물을 손괴할 수 있는 '위험한 물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작은 칼날이더라도 사람을 살상할 수 있다면 '위험한 물건'이라는 취지였다.
③ 자동차 열쇠
한 손에 들어가는 자동차 열쇠도 '위험한 물건'이 될 수 있다. 지난 2013년 성폭행을 목적으로 피해자를 자동차 열쇠로 위협해 끌고 가려던 사건이 있었다.
당시 울산지법은 "자동차 열쇠로도 피해자가 생명이나 신체에 위험을 느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금속 재질의 단단하고 끝이 뾰족한 자동차 열쇠에 목 부위를 찔려 상처를 입었다"며 "처음엔 칼로 찌른다고 생각할 정도로 위협을 느꼈다"고 말했다.
자동차 열쇠를 갖고 신체에 힘을 가하면 심한 상처를 입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위험한 물건'으로 인정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