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남 '대박 터뜨려주겠다' 믿고 9천만 원 건넸다가... 1천만 원만 사기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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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연남 '대박 터뜨려주겠다' 믿고 9천만 원 건넸다가... 1천만 원만 사기 인정

2025. 11. 27 10:48 작성
조연지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yj.jo@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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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 용기값 1천만 원은 사기 맞지만

오징어 대박 꿈꾼 8천만 원은 못 준다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수원지방법원은 최근 연인 관계였던 남성에게 사업 자금 명목으로 약 9,000만 원을 건넸다가 돌려받지 못한 여성 A씨가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고 B씨에게 "1,000만 원 및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총 9,000만 원에 달하는 거액이 오갔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그중 1,000만 원에 대해서만 배상 책임을 인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건은 두 사람의 은밀한 관계와 '오징어 대박'이라는 달콤한 제안에서 시작됐다.


골프 모임에서 시작된 인연, 그리고 "오징어 대박"의 유혹

2015년경 한 골프 동호회. 영어 학원을 운영하던 여성 A씨와 남성 B씨는 이곳에서 처음 만나 이듬해부터 내연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당시 A씨는 수년간 운영하던 학원을 정리하고 새로운 사업을 구상 중이었고, 자연스럽게 B씨와 사업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B씨는 자신이 추진 중인 '면대 사업(중식당용 면 반죽 납품 사업)'을 A씨에게 소개했다. 그는 "오징어 등 해물 가격이 폭등하면 이윤이 많이 남는다"며 솔깃한 제안을 건넸다. B씨의 계획은 구체적이었다. 냉동창고에 해물을 미리 보관해 두었다가 가격이 오를 때 되팔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반죽 기계 구입비용 등이 부족하다는 B씨의 말에 A씨는 2017년 8월, 두 차례에 걸쳐 총 7,927만 원을 B씨가 지정한 계좌로 송금했다. 여기에는 A씨가 지인에게 빌린 돈 3,000만 원도 포함되어 있었다.


돈거래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해가 바뀐 2018년 1월, B씨는 다시 A씨에게 손을 벌렸다. "면 포장 용기를 대량으로 구매해야 하는데 대금이 부족하다. 1,000만 원만 도와주면 빠른 시일 내에 수십 배로 갚겠다"는 것이었다. A씨는 이 말을 믿고 즉시 1,000만 원을 추가로 송금했다.


사장님 명함 파고 직원까지 채용… 깊숙이 개입한 '동업'의 흔적

단순히 돈만 빌려준 채무 관계였다면 사건은 단순했을 것이다. 하지만 A씨는 B씨의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A씨는 지인들을 면대 사업체의 직원으로 채용시켰고, 이들을 통해 홈페이지와 블로그를 제작하며 홍보 업무를 주도했다.


심지어 A씨는 해당 사업체의 '대표이사' 직함이 박힌 명함을 들고 다니며 영업 활동을 했고, 직원 급여를 B씨와 나누어 부담하기로 합의하기까지 했다. A씨는 B씨와 함께 기계 구입을 위해 대구까지 동행하는 등 사업 파트너로서의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2018년 6월, 돈 문제로 갈등이 불거지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파국을 맞았다. B씨는 A씨에게 사업에서 손을 떼라고 요구했고, 이후 A씨는 면대 사업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결국 A씨는 B씨가 자신을 속여 돈을 뜯어냈다며 고소했고, 민사 소송까지 제기하게 된다. 핵심 쟁점은 B씨가 가져간 돈이 '빌린 돈(대여금)'인지, 아니면 '사업 투자금'인지, 그리고 B씨가 애초부터 A씨를 속일 의도(기망행위)가 있었는지 여부였다.


"포장 용기 산다더니 딴청"… 1천만 원은 '명백한 사기'

재판부는 우선 2018년에 건넨 '포장 용기 구매대금' 1,000만 원에 대해 A씨의 손을 들어주었다.


B씨는 재판 과정에서 "운영 경비로 받은 것이지 용도를 속인 적이 없다"고 항변했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B씨가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에는 "포장 용기 만 개를 받아 통장 잔고가 없다", "은혜 꼭 갚겠다"는 내용이 명확히 남아 있었다.


그러나 계좌 내역 조회 결과, B씨는 받은 돈 중 고작 270만 원만 포장 용기 구입에 썼고 나머지는 개인적인 용도로 탕진한 사실이 드러났다. 법원은 "B씨가 용도를 속여 돈을 편취한 불법행위가 인정된다"며 1,000만 원 전액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앞서 진행된 형사 재판에서 B씨가 사기죄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점과도 일맥상통하는 결과였다.


"오징어 8배 수익은 희망 사항일 뿐"… 8천만 원 패소의 이유

반면, 2017년에 건넨 약 8,000만 원에 대한 판단은 전혀 달랐다. A씨는 이 돈 역시 "오징어를 사서 되팔아 수익을 내주겠다는 말에 속아 빌려준 돈"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 돈을 '대여금'이 아닌 '투자금'으로 판단했고, 사기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 취지의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투자란 본래 수익 발생이 불확실하고 원금 손실 위험을 안고 하는 것"이라며, A씨가 단순히 돈을 빌려준 것이 아니라 사업의 성패를 함께 짊어지는 투자를 했다고 보았다.


결정적인 근거는 A씨의 행적이었다. A씨는 돈을 건넨 직후 사업에 필요한 기계 구매 계약서를 직접 확인했고, 자신의 지인을 채용해 홍보를 맡기는 등 사업에 깊이 관여했다. 재판부는 "오징어 매매 차익만을 노리고 돈을 빌려준 것이라면, A씨가 면대 사업 전반에 이렇게 적극적으로 참여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B씨가 실제로 오징어를 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A씨가 즉각 환불을 요구하지 않고 2018년 6월까지 사업을 함께 지속했다는 점도 발목을 잡았다. 법원은 이를 근거로 B씨가 처음부터 돈을 떼어먹으려 했다기보다,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자금을 유용했을 가능성은 있어도 기망에 의한 편취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차용증이 없었던 점, 이자 지급 시기나 이율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가 없었던 점도 A씨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결국 법원은 8,000만 원에 대해 "대여금이라고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고, 동업 자금이나 투자금일 가능성이 높다"며 A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번 판결은 연인이나 지인 간의 금전 거래라 하더라도, 그 성격이 '투자'인지 '대여'인지에 따라 법적 보호의 범위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대박을 터뜨려 주겠다"는 말만 믿고 구체적인 안전장치 없이 건넨 돈은, 훗날 법의 문턱에서 '투자 실패'라는 뼈아픈 성적표로 돌아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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