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근 교수 에세이 (59)] 심야의 델리(Delhi)역
[정형근 교수 에세이 (59)] 심야의 델리(Delhi)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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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카슈미르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고 불안한 지역이면서도, 자연은 '동양의 스위스'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답다. /셔터스톡
인도여행 4일째, 인도 델리(Delhi)에서 카슈미르의 스리나가르(Srinagar)로 가기로 했다. 카슈미르는 여름철 주도(州都)는 스리나가르(Srinagar)이고, 겨울철 주도는 잠무(Jammu)라고 한다. 겨울에는 스리나가르(Srinagar)가 워낙 춥기 때문에 조금 기온이 높은 잠무(Jammu)를 주도(州都)로 한다고 한다. 계절이 바뀌어 여름이 되면 무더운 잠무를 피하여 서늘한 스리나가르(Srinagar)로 주도를 옮긴다고 한다.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로 지배할 때 영국 관리들이 스리나가르로 피서를 가서 휴가 때 지낼 목적으로 호수에 주거용 보트를 만들었다고 한다. 보트 형태의 수상가옥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는 모습을 여행지를 소개하는 책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카슈미르는 주민들 대부분이 무슬림인데,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때 무슬림 국가인 파키스탄으로 귀속되지 않고, 인도의 힌두교 지배 세력의 통치하에 들게 되었다. 그 결과 카슈미르는 무슬림을 중심으로 독립운동 차원의 인도의 관공서나 관리들에 대한 공격이 끊이지 않는다. 경찰서 부근에는 버스도 정차하지 않고 지나간다고 한다. 이렇게 카슈미르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고 불안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자연은 동양의 스위스로 불릴 정도로 아름답다고 한다.
나는 그런 카슈미르에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기차로 델리에서 잠무(Jammu)까지 간 다음에, 잠무에서 스리나가르까지는 자동차를 이용하는 여정을 선택하였다. 델리에서 잠무까지는 10시간 이상을 달려야 하는 먼 거리였다. 비행기를 타면 한 시간 남짓이면 도착할 수 있지만, 여행의 맛을 느끼려고 기차와 자동차를 갈아타는 교통편을 이용하기로 했다. 오후에 짐도 일찍 챙겨놓으니, 초저녁에 출발할 예정인 기차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여름이라서 거의 40도에 가까운 기온으로 숨쉬기도 힘들었다. 마치 한증막 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무더운 날씨를 피하고 싶어서 에어컨이 나오는 상점을 들락거렸다. 시내 도로를 걸을 때 구걸하는 대여섯 살 먹어 보이는 아이는 연신 손을 벌리며 따라왔다. 호주머니에 있던 사탕을 주었더니 이내 사라졌다. 이번에는 그 아이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가 손을 벌리면서 따라왔다. 옷차림만 보고서도 외국인 여행객인 것을 알고 나에게 접근한 것이다. 그 지역에서는 거리에 앉아서 구걸하지 않았다. 돈을 줄 때까지 따라왔다. 그는 관광기념품 상점 앞에까지 따라와 하소연을 하였다. 할 수 없이 그에게 몇 루피를 주었다. Thank you!를 연발하며 연신 고개를 숙이며 뒤돌아갔다. 상점 안에 들어가니 힌두사원에서 보았던 코끼리 형상과 같은 신상과 같은 상품들로 가득하였다. 힌두교 물품 가게 같았는데, 뭐라도 하나 구입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오후 6시 50분에 저녁을 먹기로 하고, 닭고기 토스트를 주문하였다. 식사 후에 레스토랑 화장실에서 얼굴과 목을 씻는 등 장시간의 기차여행을 대비하였다. 어둠이 온 도시에 내려앉아 있을 때 택시를 타고 델리 기차역으로 갔다. 밤 10시경 역 앞에서 내렸다. 택시를 내린 곳에서 육교를 건너야 기차역이 있었다. 붉은 상의에 흰 수건을 목에 걸친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짐꾼들이었다. 가방을 옮기는데 얼마냐고 물었더니, 아주 비싸게 불렀다. 그렇게 비싸면 직접 옮기겠다고 트렁크를 끌고 가려고 하자, 그제서야 가격이 내려갔다.
기차역으로 이어지는 육교에 수많은 노숙자들이 즐비하게 누워 있었다. 불빛도 없는 육교 위에 누워 있는 노숙자들의 눈빛이 나를 노려보는 듯했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졌다. 기차역에 먼저 도착한 승객들이 여기저기에 앉거나 누워 있었다. 승객들을 위한 좌석도 없었다. 전등도 많지 않아 십여 미터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컴컴하였다. 조그만 매점 앞이 가장 환했다. 짐을 그 앞에 놓고 기차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그때 바닥에 앉아 있던 어떤 남자가 기차가 3시간 연착된다고 외쳤다. 실없이 농담하는 줄로 알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 연착될까 싶었다. 실제로 그래서도 안 된다는 마음의 소리가 치밀어 올랐다. 역 안에는 기차의 도착과 연착을 안내하는 전광판도 없었다.
그러나 흐르는 시간이 연착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승차 시간을 이미 넘기고 있었다. 출발시간인 밤 10시에 3시간 연착이면 새벽 1시가 넘어야 한다.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리나 아득했다. 여행은 기다림의 연속이고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컴컴한 밤하늘처럼 마음이 어두워졌다. 인도라는 나라를 배우는 순간으로 생각되었다. 기차가 지연되고 있음에도 어느 누구도 항의를 하거나 불평을 터뜨리는 사람이 없었다. 연착에 대한 안내 방송도 없었다. 아니 기차의 출발과 도착에 관한 어떤 안내 방송도 없었다. 도착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기차를 무작정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도 없었다. 가방에 기대어 고개를 숙이고 졸고 있거나 누워서 자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외쳤다.
"기차는 반드시 옵니다.
그러나 언제 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어렵사리 신문지 한 장을 구하여 바닥에 깔고 앉았다. 바닥이 맨땅 같았다. 2004년 인도의 델리 기차역 바닥이 흙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한국의 시골 버스 정류장 같았다. 매점 앞에서 비추는 불빛에 의지하여 갖고 간 책을 폈다. 시간이 갈수록 얼굴에 피곤이 배어들었다. 피로 회복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챙겨온 비타민을 먹었다. 어두운 불빛 아래서 책을 전부 읽게 되었다. 눈이 침침하였다. 피곤이 몰려옴에 따라 눈꺼풀 움직이기가 힘겨워졌다. 깊어가는 인도의 밤을 땅바닥에 앉아 보내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았다.
나는 왜 이 밤을 여기서 보내고 있는가? 이 기다림의 의미는 무엇인가? 왜 카슈미르에 가려고 하는가? 이런저런 사념들이 오갔다. 주위를 둘러보니 조용한 말소리가 들릴 뿐 주변은 모두들 불편한 자세로 졸고 있었다. 시간은 흘러 새벽 1시를 훌쩍 넘겼다. 그로부터 1시간 반을 더 기다렸다. 드디어 새벽 2시 30분에 기차가 역에 들어왔다. 출발 예정 시간보다 4시간 30분 후에 기차가 온 것이다. 갑자기 소동이 일었다. 잠자던 사람들이 급히 일어났다. 주변이 소란해지고 엄청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기차가 역에 들어왔는데, 기다리던 바로 그 기차인지 여부를 알 수가 없었다. 방금 들어온 열차가 몇 시 도착 예정 열차라고 알려주는 방송도 없었다.
기차에 적힌 행선지 표시가 되어 있는데, 주변이 어두워서 읽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혼란 속에서 앞으로 뛰어갔다가 다시 원위치하기를 반복하였다. 인도인들은 거의 승차하였는데, 나는 아직도 타야 할 전동차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는 사이에 기차가 출발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초조함이 몰려왔다. 목적지인 잠무(Jammu)까지 가는 기차는 맞았다. 그런데 내가 타야 할 침대칸 전동차는 없었다. 그 역에서 침대칸 전동차가 도착하면 그 기차에 연결한 후에 출발한다고 하였다. 정말 황당했다. 어쩔 수 없이 기차 꽁무니 부근에서 어이없는 표정으로 서 있어야 했다. 언제 그 전동차가 와서 연결된다는 것인지 아득했다. 여행의 참맛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고 꼬이고 있는 상황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마음속에 두 단어가 떠올랐다.
잠잠하자!
차분하자!
그럼에도 보채는 아이처럼 초조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그래도 잠잠히 기다리기로 했다. 나는 전동차가 연결될 지점으로 생각되는 기차 후미에 있었다. 기차가 오면 곧바로 들어 올릴 태세로 가방 손잡이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모든 사람이 철로 가까이에 있어 움직이기도 쉽지 않았다. 소란하던 분위기도 가라앉았다. 역에 있던 사람들이 기차에 올랐지만, 기차는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모두들 말없이 조용히 어둠 속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렇게 30분이 흘러갔다. 그때 라이트를 켠 물체가 어둠을 가르고 움직이고 있었다. 서서히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또 한 번 소동이 일었다.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다.
기차 온다!
새벽 3시경 비로소 잠무로 가는 기차를 탔다. 출발 예정 시간보다 5시간 연착된 상태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