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죽였지만, 죽게 만들었다…故이선균 협박범 형량, 2년 더 늘어난 이유
안 죽였지만, 죽게 만들었다…故이선균 협박범 형량, 2년 더 늘어난 이유
살인 의도 없었지만, 죽음의 무게는 덜어지지 않는다

배우 고(故) 이선균을 협박해 5천만원을 뜯어낸 전직 영화배우. /연합뉴스
배우 고(故) 이선균을 협박해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한 유흥업소 실장과 전직 배우에게 항소심 법원이 원심보다 훨씬 무거운 실형을 선고했다. 법원은 이들의 공갈 행위가 이 씨 사망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을 명확히 하며, 직접 사람을 해치지 않았더라도 그 범죄가 낳은 비극적 결과의 무게를 양형에 결정적으로 반영했다.
유흥업소 실장 A씨는 2023년 9월, 이 씨에게 "휴대전화가 해킹돼 협박받고 있다"며 3억을 뜯어냈다. 하지만 진짜 해킹범은 없었다. 평소 A씨와 가깝게 지내던 전직 영화배우 B씨가 A씨의 마약 투약 사실과 이 씨와의 관계를 빌미로 꾸민 자작극이었다. B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 씨에게 직접 접근해 5000만 원을 추가로 갈취했다.
1심 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3년 6개월, B씨에게 징역 4년 2개월을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5년 6개월, B씨에게 징역 6년 6개월을 선고하며 형량을 각각 2년 이상 크게 높였다.
법원, "사망 원인 제공 부인할 수 없다"
항소심 재판부가 형량을 대폭 올린 결정적 이유는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중대한 결과였다. 재판부는 A씨에 대해 "피고인은 피해자를 협박해서 공포심을 유발했고 피해자는 관련 추측성 보도가 나오자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이 사망 원인을 제공한 것을 부인할 수 없고 유가족은 지금도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B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재판부는 "대중의 반응에 민감한 유명 배우에게 공포심을 일으키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이는 피고인들의 공갈 행위와 피해자의 사망 사이에 직접적인 물리적 인과관계는 없더라도, 그 행위가 사망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불러온 핵심 원인이라고 본 것이다.
살인 아니어도 '피해자의 죽음'은 핵심 양형 요소
법원의 이런 판단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다. 우리 형법 제51조는 형량을 정할 때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를 고려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범죄로 인해 '사망'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발생했다면, 살인죄가 아니더라도 재판부가 이를 외면할 수 없는 이유다.
이는 다른 범죄에서도 마찬가지다. 폭행으로 상대방을 숨지게 한 상해치사 사건이 대표적이다. 법원은 사망이라는 결과를 예견할 수 있었다고 판단되면 일반 상해죄보다 훨씬 무겁게 처벌한다. 부산고등법원의 한 상해치사 판결(2022노153)에서도 "피해자의 유족들과 합의하지 못하였고, 그들로부터 용서받지 못한 점"을 피고인에게 불리한 양형 요소로 고려했다.
심지어 직접적인 원인 제공이 아닌 경우도 있다. 청주지방법원의 한 공갈미수 사건(2020고단2679)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피해자는 목숨을 끊고자 시도한 뒤 치료 도중 사망하였다. 그럼에도 피고인은 피해자의 죽음에 대해 도의적인 책임조차 부인하는 상식을 벗어난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피고인의 태도를 강하게 꾸짖었다. 이는 피해자의 사망에 대한 책임 있는 자세가 양형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이번 이 씨 협박 사건 항소심 판결 역시 같은 맥락이다. 재판부는 특히 A씨가 "보석으로 석방된 이후 태도를 봐도 피고인이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며 범행 후 정황까지 면밀히 살폈다.
결국 '사람을 죽이겠다'는 살인의 고의가 없었더라도, '사람이 죽었다'는 결과의 무게는 피고인들의 죗값을 무겁게 만드는 결정적 저울추가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