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 행사 막은 국가' 책임 인정, 부마항쟁 참여자 2164만원 배상 판결 확정
'권리 행사 막은 국가' 책임 인정, 부마항쟁 참여자 2164만원 배상 판결 확정
독재에 맞섰던 1979년, 43일간의 억울한 구금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 지역에서는 유신정권의 독재에 맞선 대규모 시위, 부마민주항쟁이 일어났다.
원고 A씨는 당시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구속되었다. 당시 유신정권의 핵심 탄압 수단이었던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를 위반했다는 혐의였다. A씨는 43일 동안 구금 상태에서 강제 수사와 함께 욕설, 구타 등 가혹행위를 겪었다. 비록 나중에 공소취소로 석방되었지만, 긴급조치로 인한 고통과 상처는 남았다.
시간이 흘러 A씨는 2018년, 긴급조치 발령과 불법 수사 때문에 겪은 정신적 손해에 대해 대한민국을 상대로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법정에서의 44년 공방: ‘이미 권리를 잃었다’는 주장
A씨의 소송은 곧장 큰 장벽에 부딪혔다. 국가(피고) 측은 "A씨가 고통을 당한 지 너무 오래되어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3년)가 이미 끝났다"고 주장했다.
1심과 2심 법원 모두 국가의 주장을 받아들여 A씨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다.
법원의 논리: A씨가 불법 구금 및 가혹행위를 당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이는 1979년 당시 A씨가 이미 알고 있었던 일이다.
아무리 늦어도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2010년) 이후 3년 안에 소송을 제기했어야 한다. 따라서 A씨는 권리를 행사할 시기를 놓쳤다고 보았다.
억울하게 옥고를 치르고도 국가의 배상을 받지 못하게 된 A씨는 결국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의 결단: “국가가 길을 막았으니 시효는 멈춰야 한다”
2023년 2월, 대법원은 하급심의 판결을 뒤집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며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주며, 국가배상 책임의 범위와 소멸시효 적용 기준을 완전히 새롭게 해석했다.
1. 국가배상 책임, ‘긴급조치 발령’ 전체로 확대
대법원은 A씨가 겪은 고통은 단순히 수사관의 가혹행위 때문만이 아니라고 보지 않았다. 위헌이자 무효인 긴급조치 제9호를 발령하고 이를 집행한 일련의 국가 행위 전체가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이며, 이로 인해 A씨가 입은 모든 정신적 손해에 대해 국가가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2. 소멸시효 중단시킨 ‘객관적 장애 사유’ 인정
가장 핵심적인 판단은 소멸시효에 관한 것이었다. 대법원은 A씨가 오랜 기간 권리를 행사하지 못한 데에는 그럴 만한 ‘객관적인 장애 사유’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A씨가 억울하게 구금되었어도, 당시 권위주의 체제와 이후 대법원 판례 때문에 ‘위헌적인 긴급조치에 대해서는 국가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법적인 틀이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다.
이처럼 국가 스스로가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을 원칙적으로 막고 있는 상황에서는, 피해자에게 "3년 안에 소송을 내라"고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
대법원은 “국가가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청구를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았던 판례의 존재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면, 소송을 낼 수 없는 장애 사유가 있어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한다”고 최종 결론 내렸다.
44년 만의 승리: 2164만원 배상 판결
대법원 판결에 따라 사건을 다시 심리한 환송심 법원은 A씨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최종 인정하고, A씨에게 위자료 3000만 원을 산정했다.
이 금액에서 A씨가 이전에 받은 형사보상금 835만 9,200원을 뺀 2164만 800원을 대한민국이 A씨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불법적인 국가 폭력 피해자들이 오랫동안 겪어온 소멸시효 문제에 대해 '피해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객관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중요한 법적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참고] 부산지방법원 서부지원 2018가소110754 판결문 (2019. 7. 9. 선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