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근 교수 에세이 (39)] 새벽녘 짙은 안개 속을 급히 달리던 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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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근 교수 에세이 (39)] 새벽녘 짙은 안개 속을 급히 달리던 차량

2021. 10. 01 12:18 작성2021. 10. 01 15:39 수정
정형근 교수의 썸네일 이미지
hkjung@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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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를 한 바퀴 돌고 나오는 길목에 육지로 이어주는 다리가 있다. 자동차로 출입할 수 있는 길은 그곳이 유일하다. 그 다리를 오가는 사람만 확인하면 범인도 금방 잡을 수 있다. 해당 이미지는 참고용 이미지. /셔터스톡

주말에는 광주 집에서 지내고 월요일 아침에 해남으로 내려간다. 주말에 가족이 있는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항상 가볍다. 해남에 있는 법원과 검찰청에 있는 판·검사들도 주말에는 집으로 향한다. 그래서 어떤 때는 친분 있는 분과 함께 같은 버스를 타기도 하고, 내 차에 동승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월요일 해남에 있는 법률사무소로 향할 때는 뭔가 묵직함이 밀려온다. 서울에서 갑자기 시골로 내려와 뜻하지 않게 가족과 떨어져 지내게 되었다. 언제 함께 모여 지낼 수 있나 하는 생각도 들곤 했다. 해남에서 개업 중인 변호사 4명 중 3명이 광주에 집을 두고 있었다.


한 주가 시작되는 첫날은 광주에서 지방으로 내려가는 출근 차량이 꽤 많다. 시골 도로는 텅 비어 있을 것 같지만,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서 그렇지 않다. 광주를 벗어나면 도로변에 배나무들이 가득한 나주가 나온다. 경사가 거의 없는 평평한 밭에 오랜 세월을 지내온 굵은 배나무들이 서 있다. 봄에는 배꽃이 첫눈 내린 들판처럼 하얗게 장식하고 있다. 은은한 꽃향기가 바람결에 실려 온다. 차창 밖에 펼쳐진 농토의 풍경을 음미하며 달리다 보면,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산이 확 들어온다.


온통 바위로만 이뤄진 산이 보이기 시작하면 영암 읍내에 도착한 것이다. 뾰족한 바위들이 모여있는 월출산은 볼 때마다 경이롭다. 그 부근을 지나는 외지인은 무슨 산이 저렇게 생겼냐고 꼭 한마디씩 한다. 그 산의 깊은 계곡과 날카로운 바윗길을 걷고 싶었지만, 그 지역을 지나가면 연기처럼 그런 마음도 사라진다. 월출산을 뒤로하고 조금 더 달리면 붉은 들판이 나온다. 그리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산 아래에 황토색 밭이 펼쳐져 있다. 밭이 어떻게 저리도 붉을까 생각하며 지나다 보면 이내 해남에 도착한다. 핏빛 같은 흙을 일구면서 남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은 대부분 검붉다. 강렬한 태양과 척박한 환경을 이겨낸 흔적이 얼굴에 남아 있다. 그들의 말은 투박해도 세상 보는 눈은 날카롭고, 정치의식도 매우 민감하다.


해남 읍내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바다가 나온다. 한편에 완도가 있고, 그 반대편에는 진도가 나온다. 재판이 없는 오후에는 택시를 불러 완도로 향하곤 하였다. 서울에서 시골에 내려온 이유가 바로 이런 생활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바닷가 해안도로를 따라서 천천히 섬을 한 바퀴 돈다. 눈길을 사로잡을 절경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바닷바람 쐬는 것만으로도 좋다. 기사님이 이르는 장소마다 얽혀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해안가 어느 곳에 이르면 몽돌해변이 나온다. 둥글둥글한 타원형 돌들로 해변이 가득하다. 모난 돌은 보이지 않는다. 모래사장이 펼쳐진 보통 해변과 달리 그곳은 둥근 공모양의 돌 전시장 같았다. 적게는 골프공 같고, 조금 큰 것은 야구공만 하고, 축구공보다 큰 것도 있다. 오랜 세월 쉼 없이 밀려오는 세찬 파도에 깎여서 그렇게 된 것 같다. 관광객이 아름다운 돌을 보면서 기념으로 한두 개씩만 집어가면 이내 황량한 해변이 될 것은 걱정이 밀려왔다. 그런데 주변에는 갯돌을 가져가지 말라는 푯말도 없다. 해변 가득 예쁜 돌이 있는 것을 보니 괜한 걱정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완도를 한 바퀴 돌고 나오는 길목에 육지로 이어주는 다리가 있다. 자동차로 출입할 수 있는 길은 그곳이 유일하다. 그 다리를 오가는 사람만 확인하면 범인도 금방 잡을 수 있다.


그 사건도 그랬다. 안개 자욱한 새벽에 어린 자녀를 둔 젊은 사람이 해남에서 밤을 보내고 완도에 있는 집으로 가던 중이었다. 새벽에 급히 운전하던 중에 도로 한가운데 누워있던 사람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왜 도로 중앙에 사람이 누워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망사고를 내고 말았다. 안개가 워낙 자욱했던 새벽이라 가시거리가 10m도 안되었다고 했다. 해안도로의 안개는 아침 해가 중천에 떠오를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는 차에서 내려서 피해자의 상태를 확인하지 않았다. 교통사고를 냈으면 신고를 하고 병원으로 이송하는 구호 조치를 해야 하는데, 그대로 완도 집으로 가버렸다.


경찰이 그날 새벽에 발생한 뺑소니 사건을 수사하였다. 완도 다리를 통과한 차량을 조회한 결과 사고 발생 시간에 통과한 운전자가 체포되었다. 사망사고를 내고 그냥 갔으니까 구속까지 되었다. 사실 피해자가 진짜로 도로에 누워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경찰서 변호인 접견실에서 그를 만난 나는 물었다.


"왜 그 새벽에 사고장소를 지나게 되었나요?"


그는 친구 집에서 밤새워 놀다가 새벽에 귀가하던 중에 사고를 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간밤에 무엇을 하다가 그 새벽에 사고장소를 지나가게 되었는지는 극구 언급하려고 하지 않았다. 사고를 낸 사실보다 새벽에 그 장소를 달리게 된 사연을 숨기고 싶어 했다. 오히려 그런 사연을 궁금해하는 나를 이상하게 어겼다. 나 역시 그의 사생활을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아름다운 해안도로에 이런 사연들도 쌓여 있다.


해남에서 가까운 진도 역시 가볼만 하다. 진돗개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지만, 거리에서 진돗개를 보기는 어렵다. 진도를 가려면 울돌목을 건너야 한다. 해남과 진도를 잇는 해협인데,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협으로 불리던 울돌목에서 승리를 하였다는 곳이다. 울돌목 위에 놓인 다리를 걷다 보면, 그 아래 흘러가는 세찬 물살 속으로 삼켜질 것은 무서움이 밀려온다. 다리가 흔들거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진다. 진도는 어디나 평화롭고 조그마한 섬들이 쫙 깔려 있다. 크고 작은 섬들이 진도를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 장면을 보면 끝없이 셔터를 누르게 만든다.


그렇게 멋진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싸운다. 주기적으로 농협·수협 조합장 선출을 위한 선거는 엄청나게 혼탁하다. 조합원들이 선거로 선출하는 권력이고, 유권자들의 숫자가 많지 않아서 봉투를 돌리기도 한다. 조합장 선거에 출마한 사람은 유권자를 만나러 들녘으로 나간다. 논밭에서 일하는 유권자에게 "이번에 조합장에 출마하였으니, 한 표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하고 수십만원을 준 일이 드러나 재판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선거 후에 당선자 집에서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아 잔치를 하였는데, 선거 후에 선거구민에게 답례를 금지하는 행위에 해당되는지를 둘러싸고 수사가 진행되기도 했다. 과연 누구의 돈으로 송아지를 사서 주민들에게 대접하였는지가 중요한 쟁점이었다. 당선자의 친구들이 당선을 축하하기 위하여 돈을 갹출하여 송아지를 사서 대접하였다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선거 후에 투표함의 개표과정이 문제가 되어 투표함에 대한 증거보전 신청도 하였다. 그래서 판사와 함께 직접 농협으로 가서 투표함을 들고 왔다. 법원 회의실에서 투표함을 열어서 다시 한 장 한 장 개표를 한 후 최종적으로 조합장 당선자를 가려주기도 하였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여러 이유로 치열하게 다투지만, 그곳의 산하는 언제 보아도 포근하다.


진도의 아름다움에 취해 달리다 보면 운림산방 이정표가 나온다. 조선 후기 남화의 대가 소치 허련(許鍊)이 살면서 작품활동을 하였던 곳이다. 뒷산이 포근한 이불처럼 운림산방을 감싸고 있다. 전시된 유명한 작품 감상도 좋지만 천천히 주변을 거닐다 보면, 고요함 속에 평화가 밀려온다. 어느 해변에는 나중에 널리 알려진 팽목항이 나온다. 풍광이 좋아 많은 이들이 즐겨 찾던 진도가 세월호 참사로 슬픔의 섬으로 각인되곤 하였다. 팽목항으로 가는 도로에는 수십 년 된 벚꽃나무가 있다. 사별의 아픔을 안고 팽목항을 급히 오갈 때, 때마침 활짝 피어난 벚꽃이 그 슬픔을 더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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