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시도 중 추락한 여대생… 가해자는 살아있던 그녀를 보고도 돌아섰다
성폭행 시도 중 추락한 여대생… 가해자는 살아있던 그녀를 보고도 돌아섰다
119 신고 대신 현장 이탈
강간치사로 징역 20년 선고

2022년 7월 18일, 인하대학교 캠퍼스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서 학생이 메시지를 적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피를 흘리며 쓰러진 그녀는 살아있었다. 하지만 가해자는 119에 신고하는 대신, 그녀의 옷가지를 챙겨 옆에 두고는 제 갈 길을 갔다. 첫 여름방학을 앞둔 스무 살 대학생은 그렇게 홀로 죽어갔다.
재판부는 가해자에게 살인의 고의는 없었다고 판단했지만, 죽어가는 생명을 외면한 그의 마지막 행동은 여전히 무거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악몽이 된 그날 밤, 캠퍼스에서 스러진 20살
2022년 7월 15일 새벽, 인하대학교 캠퍼스 건물 앞에서 한 여학생이 피를 흘리며 쓰러진 채 발견됐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3시간여 만에 끝내 숨을 거뒀다. 사인은 8미터 높이에서의 추락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 손상. 피해자는 이 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새내기 A씨였다.
1일 YTN 라디오 '이원화 변호사의 사건X파일'에서 다룬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A씨는 계절학기 시험을 마친 뒤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졌고, 만취한 그녀를 동급생 B씨가 "바래다주겠다"며 나섰다. 로엘 법무법인 임흥준 변호사에 따르면, B씨는 기사도 정신을 내세우는 듯했지만 그 속에는 사악한 의도가 숨어있었다.
B씨는 A씨를 인적이 드문 단과대 건물로 끌고 가 성폭행을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A씨는 건물 3층 복도 창문에서 8미터 아래 아스팔트 바닥으로 추락했다. B씨의 행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추락한 A씨의 옷과 신발을 들고 내려와 쓰러진 그녀 옆에 두고는, 아무런 구호 조치 없이 현장을 떠나 자신의 자취방으로 돌아갔다. 행인이 A씨를 발견하기 전까지, 그녀는 차가운 바닥에 홀로 방치되어 있었다.
'살인'인가, '치사'인가
법정의 가장 큰 쟁점은 B씨가 A씨를 고의로 밀었는지, 즉 살인의 고의가 있었는지 여부였다. 임흥준 변호사는 "밀었는지 여부에 따라 강간살인죄와 강간치사죄 중 적용 법조가 달라지며 형량에 큰 차이가 난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B씨가 A씨를 밀었다고 보고 '작위에 의한 살인'을 주장하며 강간살인 혐의를 적용했다. 국내 법의학계 권위자인 이정빈 교수의 "A씨가 사실상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추락했으며, 스스로 벽면을 짚은 흔적이 없어 외부의 힘에 의해 추락한 것으로 보인다"는 소견이 이를 뒷받침했다.
하지만 B씨는 경찰 조사 초기 "밀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가, 검찰에 가서는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고, A씨가 몸부림치다 우연히 떨어졌다"며 진술을 바꿨다.
B씨의 '기억나지 않는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졌다. 그의 휴대전화에서는 범행 당시 상황이 녹음된 파일이 발견됐고, 심지어 범행 후 A씨의 태블릿PC를 이용해 자신의 휴대전화로 "어디냐"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 알리바이를 조작하려 한 정황까지 드러났다.
법원의 판단 "살해 동기 없다"…징역 20년
1심과 2심 재판부의 판단은 같았다. 재판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 등을 토대로 "B씨가 A씨를 밀어 떨어뜨렸다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또한 "피해자를 살해할 동기가 없는 점" 등을 들어 살인의 고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법원은 강간살인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대신 성폭행 과정에서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준강간치사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죽일 의도는 없었지만, 그의 범죄가 죽음이라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다는 점은 인정한 것이다.
임흥준 변호사는 "엄격한 법의 잣대로만 본다면 치사죄 적용이 마땅해 보일 수 있다"면서도, "불과 40대가 되면 사회에 복귀한다는 점을 국민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꽃다운 나이에 캠퍼스에서 비극을 맞이한 피해자의 고통과, 사건 이후 '밤늦게 왜 거기 있었냐'는 등 2차 가해에 시달려야 했던 유족의 아픔을 생각하면, 법의 판단은 여전히 차갑게 느껴진다. 법의 잣대를 떠나,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도 구조하지 않고 자리를 뜬 그의 행동은 우리 사회에 여전히 무거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