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도선염 앓던 신병, 고문 끝에 '월북 간첩' 됐다…39년 만에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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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도선염 앓던 신병, 고문 끝에 '월북 간첩' 됐다…39년 만에 무죄

2026. 06. 22 15:49 작성
손수형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sh.son@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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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몽롱한 상태서 철책 향해 뛰었다가 '적진도주' 징역 15년

진실화해위 "영장 없는 불법구금·가혹행위로 자백 강요" 규명

재심 재판부 "전입 일주일 신병의 도주 의사 없어"

1987년 적진도주 미수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던 남성이 39년 만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연합뉴스

목이 부어 밥조차 넘기지 못하던 갓 입대한 20대 청년은, 군 수사관의 각목과 협박 앞에 결국 '월북 간첩'이 되어야만 했다.


1987년 이른바 '적진도주 미수' 사건으로 징역 15년의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 했던 피고인이 39년 만에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대남방송에 홀린 듯 철책 향한 신병


1987년 6월, 강원도 고성군의 한 부대. 입대한 지 갓 두 달이 된 신병 A씨는 심한 편도선염을 앓고 있었다.


목이 부어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철책 보강 작업에 투입된 그는, 무의식적이고 몽롱한 상태에서 갑자기 노랫소리가 들리던 북측 155GP를 향해 뛰어갔다.


동료들의 제지에 철조망에 걸려 넘어진 그는 소총마저 내버려 둔 채 갈대밭에 숨어 있다가 체포됐다.


영장 없는 구금과 각목 구타


체포된 A씨는 구속영장도 없이 군 보안부대 지하 조사실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수사관들은 A씨가 월북 의사를 인정할 때까지 각목으로 구타하며 협박했다.


결국 A씨는 "대남선전방송을 듣고 북한으로 넘어가려 했다"며 수사관들이 불러주는 대로 허위 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군사법원은 이를 근거로 A씨에게 적진도주미수, 국가보안법 위반, 군용물 절도미수 혐의를 적용해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항소심을 거쳐 징역 15년이 확정됐다.


"임의성 없는 자백, 위법수집증거"…39년 만에 씻어낸 누명


억울한 누명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로 반전을 맞았다.


위원회는 "불법구금 상태에서 구타와 가혹행위로 허위진술을 강요받은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라고 결론 내렸다.


이를 바탕으로 서울고등법원 제7형사부(재판장 구회근)는 지난 4월 29일, A씨에 대한 재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최종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의 판단 근거는 명확했다. 우선 강압에 의해 작성된 피의자신문조서 등은 임의성 없는 자백이므로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애당초 불법적인 체포·구금에서 비롯된 위법·부당한 심리적 압박상태가 재판 과정에서 해소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과거 재판에서의 법정 자백조차 유죄 증거로 쓸 수 없다고 봤다.


또한 엠16 소총 등 압수물 역시 위법수집증거로서 증거능력이 부정됐다.


사건 당시의 정황도 A씨의 무죄를 뒷받침했다. 부대원들은 "전입 온 지 일주일밖에 안 된 신병이 지뢰 매설 구역을 피해 북한으로 향하는 경로를 숙지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진술했다.


피고인을 체포했던 하사 역시 "겁에 질려 순간적으로 한 행동으로 보였고 진짜 월북 의사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재판부는 "추격당하는 과정에서 소총과 실탄을 버린 점을 볼 때 불법영득의사(남의 물건을 자기 것처럼 가지려는 의사)도 인정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39년의 억울함이 마침내 법의 이름으로 씻겨진 순간이었다.


[참고] 서울고등법원 제7형사부 2025재노34 판결문 (2026. 4. 29.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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