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 증거를 잡으려다 절도범이 되었다면, 무죄를 받을 수 있을까?
불륜 증거를 잡으려다 절도범이 되었다면, 무죄를 받을 수 있을까?
주차 확인 후 현장 도착, 메모리칩 확보
정당행위 5요건 입증해 위법성 조각

불륜 증거 확보를 위해 차량 블랙박스 메모리칩을 가져간 남성에게 법원이 정당행위를 인정해 절도 혐의 무죄를 선고했다. /로톡뉴스
불륜 증거를 확보하려다 절도죄로 기소된 남성이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매제의 부탁으로 현장에 동행해 불륜 상대 차량의 블랙박스 메모리칩을 가져간 행위가 문제였다.
검사 출신 법무법인 한강 파트너스 장우진 변호사는 해당 행위가 형법상 정당행위 요건을 모두 충족해 위법성이 없다고 변론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이례적으로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유사 행위를 일반적으로 허용하는 것은 아니라고 경고했다.
여동생의 불륜 현장…증거 확보 나섰다가 '절도범'으로
A씨의 악몽은 매제의 다급한 전화 한 통에서 시작됐다. 매제가 아내의 불륜 상대를 뒤쫓아 주차장에 차를 세운 것을 확인한 후, '현장으로 와달라'는 연락을 한 것이다.
현장에 도착한 A씨는 매제의 아내와 상대 남성이 차량 안에서 성행위를 하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결정적 증거가 눈앞에서 사라질 수 있는 상황. A씨는 잠겨 있지 않던 차량 문을 열고 블랙박스 메모리칩만 조용히 꺼내왔다.
이후 그는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 요청에 따라 메모리칩을 기능이 온전한 상태 그대로 즉시 반환했다.
하지만 A씨에게 돌아온 것은 절도 혐의 기소라는 냉혹한 현실이었다. 억울함을 호소하던 그는 장우진 변호사를 찾아 나섰다.
절도죄인가, 정당행위인가…무죄 가른 5가지 기준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A씨의 행위가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에 해당해 위법성이 사라지는지 여부였다.
형법 제20조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는 처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타인의 재물을 동의 없이 가져온 행위는 형식적으로 절도죄에 해당하지만, 사회적으로 용납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범죄로 보지 않는다는 의미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정당행위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행위 목적의 정당성 ▲수단이나 방법의 상당성 ▲보호하려는 이익과 침해되는 이익의 균형(법익균형성) ▲행위의 긴급성 ▲다른 방법이 없는 보충성 등 5가지 요건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
A씨의 행위가 이 까다로운 기준들을 모두 충족함을 증명하는 것이 무죄의 관건이었다.
장우진 변호사, '정당행위 5요건'으로 무죄 변론 펼쳐
장우진 변호사는 A씨의 행위가 정당행위의 모든 요건을 충족한다는 점을 법리적으로 증명하는 데 집중했다.
먼저 이혼 소송의 기초 사실이 될 부정행위 증거를 확보하려는 목적의 정당성을 소명했다. 또한, 잠기지 않은 문을 열어 메모리칩만을 조용히 가져가는 평온한 방식을 사용했고 물리적 충돌이 없었다는 점을 들어 수단의 상당성을 강조했다.
특히 2015년 간통죄가 폐지되어 수사기관이 부정행위 증거를 직접 수집할 권한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다른 대안이 없었으므로 보충성 요건도 충족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취거한 메모리칩의 재산적 가치가 미미하고 즉시 반환된 점을 근거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을 경우 매제가 입을 회복 불가능한 법익 침해에 비해 침해된 이익이 경미해 법익균형성 역시 인정된다고 설득력 있게 변론했다.
법원 “예외적 무죄, 일반적 허용 아니다” 선 그은 이유
재판부는 장우진 변호사의 주장을 받아들여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부정행위가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긴급한 상황이었던 점, 평온한 방식으로 최소한의 침해만 발생시킨 점, 간통죄 폐지 이후 다른 증거 확보 수단이 마땅치 않았던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A씨의 행위가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번 판결이 불륜 증거 확보를 위한 절취 행위를 일반적으로 허용하거나 권장하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 이는 정당행위 인정이 이번 사건의 특수한 사정에 기반한 예외적 판단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
실제로 유사한 블랙박스 메모리칩 절취 사건에서도 취거 후 반환하지 않거나 다른 폭력적 행위가 결부된 경우 유죄가 선고된 바 있어, 섣부른 자력구제는 여전히 위험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