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 내고도, 특허권 양도 "33년차 경찰 인생, 삼겹살 먹을 정도 벌면 그걸로 됐다"
아이디어 내고도, 특허권 양도 "33년차 경찰 인생, 삼겹살 먹을 정도 벌면 그걸로 됐다"
장수의자·LED 바닥 신호등·실종자 드론 수색 도입한 유창훈 포천경찰서 경무과장
"아이디어 현실화는 의지의 문제⋯시민과 눈 마주치지 말고, 같은 곳 봐야"

'발명가 경찰관'으로 불리는 유창훈 포천경찰서 경무과장. 막연히 생각했던 모습과 실제 그의 모습은 달랐다. 그의 이야기를 인터뷰에 담았다. 실제 장수의자에 앉아 보는 유창훈 경무과장. /박선우 기자
"여기 앉으면 10분 걸을 거, 20분 걸을 수 있어."
끈적한 더위로 온몸의 기운이 절로 빠지던 지난 8월 어느 날. 경기도 구리시의 한 횡단보도에 70대 노인이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었다. 노인이 앉은 의자는 일명 '장수의자'로 이 지역 횡단보도에 설치되어 있다. 다리가 불편하다는 이 노인은 신호등을 기다릴 때마다 의자에 앉는다고 했다. 그 잠깐의 휴식으로 조금 더 걸을 수 있다며, "편하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다리가 불편한 노인들이 신호를 기다리기 힘들어 무단횡단을 한다는 사연을 접한 유창훈 포천경찰서 경무과장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장수의자. 유 과장은 "다리가 아프면 쉬어 갈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에 횡단보도에 '진짜 의자'를 설치했다.
그런데 그가 바꿔 놓은 횡단보도 풍경은 장수의자뿐만이 아니다. 신호가 바뀔 때 횡단보도 경계 바닥에서도 이를 알 수 있도록 한 'LED 바닥 신호등' 도입에도 그가 힘을 보탰다. '발명가 경찰관'으로 불리는 그이기에, 공학을 전공하거나 '학구파'일거라 생각했지만 실제로 만난 유창훈 과장의 모습은 달랐다. 그는 오히려 "난 논리적이지도 않고, 생각이 깊지도 않다"며 아리송한 대답을 했다. 그의 이야기를 인터뷰에 담았다.
"어르신들이 무릎이나 허리 등이 불편해 서 있으면 힘들어한다. 이를 알게된 뒤 '횡단보도 부근에 의자를 설치하자'는 아이디어는 생각했는데, 어떻게 만들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런데 사람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하지 않나. 길에서 사람이 앉을 수 있거나 물건을 얹을 수 있는 것이라면 모두 보고 다녔다. 놀이터 운동기구에 달린 의자부터 화장실 유아용 의자 등을 보고 통행에 불편을 주지 않는 선에서 설계했다. 의자 하단의 지지대는 전봇대에 달린 작업대에서 착안했다."

그런데 정작 제작을 맡겠다는 업체가 없었다. 지인 소개로 한 업체와 손을 잡았지만, 이번엔 제작 비용이라는 벽에 가로막혔다. 결국 유 과장은 장수의자 특허권을 넘기는 조건으로 제작을 의뢰했다.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는, 장수의자 도입을 꼭 성공시키겠다는 생각이었다.
"특허권을 넘기긴 했지만, 그건 설계도를 더 구체화하고 설비 시스템을 만드는 비용이었다. 그러니 구입을 해서 설치하는 건 따로 비용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냥 달라고 할 수는 없지 않느냐. 그래서 재료 값 정도만 내고 의자를 구입해 설치했다. 장수의자에 붙이는 사용 요령 포스터도 사비로 제작한 뒤 설치했다."
"특허권에 대한 미련은 없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시민을 위해 사용되고, 그래서 국민 삶의 질에 보탬이 된다면 만족한다. 그게 공직자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라 생각한다. 내 허락을 받게 하거나, 사용 대가를 받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순수성이 희석되고 장사꾼처럼 느껴진다. 월급으로 삼겹살 사 먹을 수 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동네에서 보면 꼭 자식을 보는 느낌이다. 장수의자 등을 이용하는 그 순간, 시민들이 편리함을 느낄 거란 생각에 흐뭇하기도 하다. 다양하게 변형된 장수의자도 많이 나왔다. 지인들이 '짝퉁 나왔다'며 사진을 찍어 보내준 적도 있다. 그게 짝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개발한 것만 고집할 이유가 전혀 없다. 아이디어를 시작하는 단초가 됐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사용하다 보면, 소음이 발생한다. 의자가 접혀 있다가 닫힐 때. 그리고 알게 모르게 파손되는 부분도 있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씩 경기 남양주 별내신도시에 설치된 장수의자는 직접 관리하러 다닌다. 그곳엔 따로 관리하는 담당자가 없다. 시에서 좀 해주면 좋겠다(웃음)."

사실 세상의 빛이 되는 아이디어라도 현실화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그대로 묻힐 수밖에 없다. 유창훈 과장의 경우, 경찰이자 공무원이라는 직업 특성상 경찰청과 지방자치단체의 협조가 절실했다. 그가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이기도 했다. 이를 위해 사업 타당성, 예산 확보 방안 등을 분석한 자료를 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유 과장은 일단 부딪혔다.
"한국교통안전공단과 함께 LED 바닥 신호등을 구체화한 뒤, 당시 근무지였던 경기도 남양주시에 설치를 제안했다. 일단 사람은 설득했지만, 현실적으로 예산 문제가 있었다. 중간에 어려움은 있었지만, 그래도 시가 '시민들을 위한 것'이라는 취지에 공감해 설치비를 일부 지원해줬다."
"아무것도 안 했다. 사실 이 법, 저 법 너무 많이 알면 걱정돼서 아무것도 못한다. 나와 같은 실무자들의 역할은 국민을 위해 '이 사업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결정하는 것이다. 일례로, LED 신호등과 같은 건 교통 분야 공무원이나 자치단체장이 '하겠다'는 의지를 갖는 게 먼저다. 사실 따지고 보면 LED 바닥 신호등, 장수의자 모두 법적 근거가 없다. 그런데도 설치될 수 있었던 건 시민을 우선시한 실무자들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좋은 아이디어를 현장에 도입하기 위해선 '의지'가 우선이라는 유 과장. 지난 2015년, 실종자 수색에 전국 최초로 드론을 도입할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팀원이 취미로 드론을 하는 모습을 보고, 야산 등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을 수색할 때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경찰청에 드론을 실종자 수색에 활용하겠다고 보고했더니, 사생활 등의 법적인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 하지만 실종자 수색이 일분 일초를 다투는 것 아닌가. 법을 기다리다 보면 한도끝도 없다.
그러니 일선 경찰들이 현장에서 국민들을 위해 이렇게 아이디어를 내고 현장에서 발로 뛰면, 경찰청에선 이를 뒷받침할 법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여있는 집단 아닌가. 법률문제는 경찰청에서 해결해달라고 요청하고, 바로 드론을 수색활동에 도입했다. (돌이켜보면 무대포였긴 했지만) 경찰청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고 발 빠르게 협조해준 것 같다. 지금은 경찰청에서 드론 전문 인력까지 채용하고 있을 만큼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주택 배관에 특수형광물질을 바르는 아이디어였다. 평소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만지거나 밟으면 지문과 족적이 남는 물질이었다. 절도 범죄를 예방하는 데도 효과적이었지만 성범죄 예방에도 큰 효과를 봤다고 생각한다. 사실 경찰일을 하면서 가장 피해회복이 어려운 범죄라고 느꼈던 게 성범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를 예방해야겠다는 소명의식도 있었다."

당시 유 과장은 범죄를 시도하려는 이들에게 심리적인 압박을 주기 위해 시범 사업 지역에 '특수형광물질을 도포했다'는 취지의 경고판도 설치했다. 그 이후 약 1년간, 실제 해당 지역에서는 침입 절도와 성폭행 사건 등이 한 건도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활용한 부산동래경찰서의 경우, 지난 2015년 절도 사건이 잦은 곳에서 사업을 실시한 결과 절도 범죄가 44% 감소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아이디어는 도입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범죄 예방 효과를 인정받아 전국에서 활용되고 있다.
"사실 범인을 검거하는 게 성과를 보여주기는 쉽다. 범죄가 발생한 다음 잡기만 하면 되니까. 그런데 범죄 예방에는 범인을 잡는 것보다 더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든다. 예방 효과가 있었는지 측정 방법도 마땅하지 않다. 그런 탓에 예방 업무를 쉽게 시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특수형광물질 도포 사업 때도 마찬가지였다. 예산을 받는 게 쉽지 않았다."
"처음에 시에서는 '경찰 업무에 투입되는 예산을 왜 시에 달라고 하나'라고 했다. 복잡하긴 하지만, 경찰은 경찰청을 통해 국가 예산을 받아야 한다. 시는 지방자치에 해당해 별도의 예산으로 운영되긴 한다. 그러니까 시에서는 (경찰이 하려는 사업이니) 경찰청에서 예산을 받아다 썼으면 한다더라.
그런데 결국 경찰도, 지방자치 행정을 담당하는 시도 그 지역 시민을 위해서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내가 '자치 예산이든, 경찰청 예산이든 결국 구리시민에게 사용하는 것 아니냐'며 집요하게 설득했다. 그랬더니 시도 공감했고, 결국 예산을 확보해주더라."

유창훈 과장은 머릿속에 있던 아이디어를 시민들의 삶에 구체화하기 위해 몸소 발로 뛰었다. 지자체 관계자 등이 귀찮아할 정도로 설득했고, 때론 "시민을 위한 일인데, 국가기관으로서 한마음으로 도와야 하지 않냐"며 동참을 강력히 호소했다.
"누군가는 '국민들하고 눈을 맞추고 얘기하라'고 한다. 하지만 난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테이블에 종이컵이 놓여있다고 생각해보자. 한쪽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지만, 반대쪽에는 그림이 없다. 이런 경우, 한 쪽은 그림을 보고 이야기하지만 반대편에서는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때, 서로 눈만 맞춘다고 해서, 같은 생각을 하겠는가. 충분히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래서 국민이 보는 것을 같이 보고 얘기해야 한다. 모든 문제를 국민의 시선으로 봐야 한다. 그러다 보면 해결책이 눈에 보이기 마련이다."

인터뷰를 준비하던 중 지난 8월 인천 연수경찰서가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 보낸 커피차가 화제가 됐다. '페스티벌 끝난 뒤 음주단속 때 만나요'라는 재치 있는 문구로 기존에 딱딱했던 음주운전 캠페인의 틀을 바꿨다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이 아이디어는 일선 경찰서의 막내급 경찰이 '음주운전 예방'을 목적으로 제안한 것이었다. 이에 대한 '아이디어 뱅크' 유창훈 과장의 생각이 궁금했다.
"기사로 봤다. 시민들 입장에서 음주단속에 대한 거부감이 덜했을 것 같다.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이를 현장에 적용하는 건 좋은 현상이다. 사실 어느 조직이든 열려 있는 분위기여야 한다. (아직 부족하지만 경찰 조직도) 아이디어가 있으면 (이전보다는)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는 분위기인 것 같다 ."

"사실 생각해둔 아이디어가 있고, 경찰청에도 얘기를 해놓은 상태다. 그래도 퇴임 전까지 한 가지 정도는 더 하지 않을까. 또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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