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0건 사투 벌이는 서울시 자살예방센터, 상담원 평균 근속이 3.3년인 이유
하루 100건 사투 벌이는 서울시 자살예방센터, 상담원 평균 근속이 3.3년인 이유
야간이나 주말·공휴일엔 5명이 밤새 100건 응대
쏟아지는 악성 민원에 전국 평균 근속 3.3년 불과

자살예방 상담원들이 야간·주말 인력 부족과 악성 민원, 불안정한 고용 속에서 하루 수십 건의 위기 전화를 감당하고 있다. /'서울시 자살예방센터 마음이음1080' 홈페이지 캡처
"나 죽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전화하는 겁니다."
뚝 끊긴 전화기 너머로 경찰에 위치 추적을 요청하는 상담원 손이 다급해진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이들의 최후 안전망, 하지만 정작 이들을 지켜줄 법적·제도적 안전망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어느 여름날, 마포대교를 걷던 한 남성은 벤치에 앉아 캔 음료를 마시며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행인들이 그를 힐끔거리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벤치 옆에 찌그러진 캔 몇 개가 놓여있었고, 하필 눈앞에 마포대교 난간이 있었던 탓이다. 풍경을 보던 그에게 한 노신사가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으며 물었다. "뭐가 힘드냐고."
그 순간 남성은 눈물을 흘렸다. "아, 누구한테는 이렇게 관심이 필요하구나. 연결이 필요하구나. 주변에 사람이 있어야 되는구나."
이 깨달음을 가슴에 품고 12년째 생명의 최전선을 지키고 있는 그는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의 정신건강전문요원 주상현 씨다.
주상현 요원은 3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현장의 긴박함을 생생히 전했다.
그는 "전화가 툭 끊기는 경우, 저희가 확인할 수 있는 건 경찰 위치 확인"이라며 "경찰이 안전하다고 보고해주면 천만다행이고, 실제로 가서 보니 시도하고 있는 상황도 있었다. 모든 전화의 위험성을 높게 판단하는 게 맞다고 본다. 차라리 장난전화인 게 더 안심된다"고 말했다.
야간·주말엔 5명이 하루 100건 감당⋯끊지도 못하는 악성 민원
이처럼 생명줄을 쥐고 있는 상담원들이지만, 정작 이들은 쏟아지는 업무와 악성 민원 속에서 무너지고 있다.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의 상담원은 20명 남짓이다.
3교대로 근무가 돌아가다 보니, 주간에는 서울시 25개 자치구 정신건강복지센터로 전화가 분산되지만, 야간이나 주말·공휴일에는 5명의 상담원이 서울 전역에서 걸려오는 하루 80~100건의 전화를 오롯이 감당한다. 대기 전화가 10통을 넘어가는 날도 허다하다.
주상현 요원은 "모니터에 대기 건수가 뜬다. 만약 대기 전화 안에 정말 고위험군이 있다고 하면 마음이 조급해진다"며 "빨리 구조화시켜서 끊어야 될 전화도 있는데 끊기 되게 어렵다. 먼저 전화 끊는 것도 민원이다. 왜 먼저 전화 끊냐(고 항의한다)"고 토로했다.
상담원들이 최선을 다했음에도 민원 때문에 지쳐 퇴사하는 경우도 빈번하다는 것이다. '목소리가 낮아서 기분이 나쁘다', '뭐가 신나서 톤이 높냐', '왜 대답만 하냐, 해결책을 내놔라' 등 민원 내용도 다양하다.
우리 법은 산업안전보건법을 통해 고객의 폭언 등으로부터 고객응대근로자를 보호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하지만 생명을 다루는 직무 특성상 상담원들은 전화를 임의로 피하거나 끊는 등의 방어권을 온전히 행사하기 어렵다. 악성 민원을 응대하는 동안 정작 구조가 절실한 이들의 전화를 놓칠 수 있다는 자괴감은 온전히 상담원의 몫으로 남는다.
전문성 요구되지만 고용은 '파편화'⋯평균 근속 3.3년
상담원들의 업무는 단순한 전화 응대에 그치지 않는다. 긴급 상황 시 정신응급합동대응센터와 연계해 현장 구조를 지원하고, 자살 고위험군 관리, 유족 지원, 사례자 모니터링, 자살 예방 교육까지 도맡고 있다.
높은 전문성을 요구받는 영역이지만 이들의 고용 형태는 불안정하기만 하다.
정신건강 업무는 보건복지부 지침을 따르지만, 지자체마다 직영이나 민간 위탁 등 운영 방식이 달라 처우도 제각각이다. 공무직, 무기계약직, 시간선택제, 임기제 등 고용 형태마저 파편화되어 있다.
트라우마를 일상적으로 겪는 고도의 감정노동에도 불구하고 고용 불안정성과 낮은 처우 탓에, 전국 정신건강복지센터 상근 인력의 평균 근속 연수는 3.3년에 불과하다.
누군가의 생애 마지막 순간, 가장 절박하게 누르는 번호. 그러나 그 전화를 받는 이들의 근로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의 자살 예방 최후 안전망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